자료실

[이형기]WCC 중심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와 신학 (3)

 

6. ‘삶과 봉사’(‘교회와 사회’, 혹은 ‘JPIC’) 전통에 나타난 교회의 공적 책임수행

이어서 우리는 신앙과 직제 운동을 통해서 발견되는, 기독론적이고 삼위일체론적인 복음을 믿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에큐메니칼 교회는 ‘삶과 봉사’ 운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세계(God's World)’에 대한 공적책임을 수행해 왔는가에 대하여 알아보자. 물론, ‘삶과 봉사’ 운동은 1925년 웁살라 세계 제1차 총회로부터 서울 JPIC와 오늘에 이르지만, 지면 관계로 필자는 1968년 웁살라 WCC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삶과 봉사를 통한 에큐메니칼 교회의 공적책임수행에 대하여 예증할 것이다.

 

1) 웁살라 제4차 WCC 총회(1968)

1968년엔 “하나님의 선교”가 절정에 도달하였고, 교회의 공적인 사회적 책임수행이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첨예화되었다. 1968년엔 마르크시즘과 같은 사회학적 통찰이 기독교 신학에 적극 수용되기 시작하였고(1968년 메델린(Medellin) 가톨릭 주교회의), 적절한 폭력사용까지 정당화되었으며, 선교의 개념이 “인간화”와 동일시되는 측면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1948-1960년대 초까지의 “책임적 사회”(responsible society)가 “세계적 크기의 책임적 사회”로 확장되었고, 바야흐로 “해방신학”이 웁살라 WCC에서 싹터 올랐다. 이미 웁살라의 “개발”(development) 개념은 단순히 강대국이 저개발 국가들에게 “자본과 기술”을 이전하는 도움을 의미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구티에레츠(Gustavo Gutierrez)도 주제연설을 했던 1968년 메델린(Columbia)의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총회를 “해방신학”의 태동기로 보고, 1971년 구티에레츠의 “해방의 신학”(The Theology of Liberation)을 해방신학의 고전으로 볼 수 있지만, 이미 웁살라의 보고서는 해방신학적 요소들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웁살라는 1960년대 말 “신앙과 직제”의 “창조세계” 보전에 대한 신학에는 거의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정의와 평화와 같은 “역사”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였다. 1960년대의 세계사적(역사) 격변 때문에, “창조세계”에 대한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2) 나이로비로 가는 길목에서

1970년대에는 웁살라의 사회정의, 경제정의, 평화 이외에 창조세계의 보전문제가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나이로비 WCC 총회(1975)의 “기조연설: 기도에로의 초대”는 인간이 환경파괴로 인하여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으니, 이를 위해서 기도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교회와 사회”는 제네바 대회(1966)를 이어받아 웁살라와 나이로비 사이에 두 가지 분야의 일을 했는데, 하나는 1969년에 시작된 5년 연구 프로그램인 “과학에 기초한 기술세계 속에서 인간과 사회의 미래”였고, 다른 하나는 “폭력-비폭력”의 문제였다. 바야흐로 WCC는 새로운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제기되는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이슈들을 다룰 신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을 함께 불러 모았다.

1970년 “기술, 신앙 그리고 미래사회”라는 개척연구 제목으로 제네바에서 모인 대회에서 자연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사회를 위해서 자연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들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1971년 이태리의 네미(Nemi)에서 열린 “교회와 사회” 확대회의는 새로운 에큐메니칼 초점을 위해서 회집되었고, 신학자들, 자연과학자들, 자연과학자들에 대한 비평가들 및 제3세계의 경제학자들을 포함하는 경제학자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바로 이 대회에서 유전공학에 관계된 윤리적 이슈에 대한 연구계획이 세워졌고, 인간환경의 악화와 환경파괴에 대한 최초의 에큐메니칼 토론이 있었다. 그리고 특기할 사항은 MIT에서 온 과학자들 팀 중 한 과학자는 “제한성장”(Limits to Growth)을 주장했고, 제3세계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였다. 1972년 로마 클럽의 “제한성장”과 헬싱키의 “유엔인간환경 대회”는 창조세계 보전 문제에 대한 첫 이정표였다.

 

3) 나이로비 제5차 WCC총회(1975)

나이로비 총회는 긴장과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분출시켰던 웁살라와는 달리 “확고히 지반 굳히기”(consolidation)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나이로비가 단순히 옛것들을 되풀이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이로비는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과 사회 및 정치적 참여는 불가 분리한 것으로 주장하면서 종전의 인권 투쟁과 불의에 대한 항거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이로비는 1969년 이래의 해방신학 전통을 자기 것으로 삼으면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중반의 복음주의자들의 목소리를 감안하여 웁살라의 과격성을 조정했다. 나이로비는 온 교회(the whole Church)와 전 인격(the whole Person)이 전 복음(the whole Gospel)을 전 세계(the whole world)에 전하고 증거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이로비가 공헌한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한 주장은 JPSS(a 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Society)에 잘 나타나 있다. JPSS는 결코 우연히 선택된 주제가 아니다. “정의”(Justice), “참여”(Participation), 그리고 “지탱”(Sustainability)은 삼위일체적으로 서로 맞물려 있는 것으로서, 정의와 평화는 이미 에큐메니칼 의사일정에 올라 있는 것들이다. “정의”는 WCC창립 이래 에큐메니칼 관심사로서 WCC 헌장에 명시되어 있는 WCC의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제네바의 “교회와 사회”세계대회(1966)와 웁살라 때 “정의” 추구의 긴급성이 일어났고, 정의문제는 “해방신학”을 거쳐 1970년대로 넘어왔다. 나이로비는 “정의”를 “개발”(제3세계)의 주된 목적으로 보았고, 조직적 혹은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대립개념으로 보았다. 또 이 같은 부정의한 상황이 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에 항상 평화개념을 요청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정의”와 “참여”를 인종주의, 여성차별, 인권문제 등에 관련시켰다.

끝으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은 과학과 기술의 오용과 남용으로 지탱되기 어려운 인간사회가 “제한 발전”, “제한 성장”, 그리고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발전”에 의해서 지탱 가능한 사회로 바뀔 수 있음을 말한다. 이미 나이로비는 “창조세계의 보전”을 “정의”와 “평화”와 맞물린 것으로 보는 1990년 서울 “JPIC”(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 대회와 “지탱”(sustainability)과 “개발”을 창조적 긴장관계로 본 1992년 리우(Rio)의 “유엔지구정상”(the Earth Summit)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다.

 

4) 밴쿠버로 가는 길목에서

나이로비의 JPSS는 밴쿠버 WCC총회(1983)에서 JPIC로 바뀌었고, 공산 동구권과 구소련의 붕괴이후, 서울 JPIC대회 “창조보전”(IC: Integrity of Creation)이 급부상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캔버라 WCC총회(1991)의 전체주제 “성령이여, 오소서. 전 창조의 세계를 새롭게 하소서.”와 제1분과의 주제 “생명의 수여자시여, 당신의 창조세계를 지탱하소서.”에서 “창조보전” 문제가 강조된다. 그리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신앙과 직제” 제5차 세계대회(1993) 이후, WCC의 JPIC(Unit Ⅲ)는 “생명의 신학”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5) 나이로비에서 밴쿠버에 이르는 길목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MIT “교회와 사회” 세계대회(1979)와 암스테르담의 “핵무기와 군비축소에 대한 국제적 공청회”(1981)였다. 이 둘은 모두 오늘날 인류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는 환경문제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고, 밴쿠버 이래로 이 환경문제가 정의와 평화문제와 맞물릴 것을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선진 강대국들의 과학 기술의 발달은 제3세계의 경제와 개발문제에 직결되기 때문에 제1세계가 제3세계를 과학기술은 물론, 경제와 정치에 있어서도 자신들에게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밝혀내었다. 그래서 이미 나이로비의 JPSS는 교회개발참여위원회(CCPD)와 교회국제위원회(CCIA)에게 어떤 방향제시를 해야 했고, 1980년대의 밴쿠버의 JPIC 역시 제3세계의 정의와 개발 문제에 골몰해야 했다.

 

6) 밴쿠버 제6차 WCC 총회(1983)

밴쿠버 총회의 전체주제 “예수 그리스도 - 세상의 생명”과 그 소주제들 ⑴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 ⑵ 죽음에 직면하여 죽음을 극복하는 생명, ⑶ 충만한 가운데 있는 생명, ⑷ 일치 속의 생명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생명” 문제가 크게 부상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특히, 밴쿠버는 MIT의 결과를 ⑴.세계의 무기경쟁, ⑵ 경제적 지배와 착취, ⑶ 생태계의 위기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JPIC를 역설하고 있다.

밴쿠버가 JPSS에서 JPIC에로 전환하게 되는 데에는 오타와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총회(1982)가 크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이 총회의 “오늘날 복음증거를 위한 소명”은 서울 WARC 총회(1989)의 제3분과의 JPIC를 위한 신학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서울 JPIC대회(1990)를 준비하였다. 밴쿠버는 MIT 교회와 사회대회(1979)의 결과를 수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점을 역설하였다. ⑴ “하나님, 인류, 그리고 자연의 상호관계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일치하고 있다.” ⑵ “과학은 가치중립적이 아니고, 윤리적 결단들과 가치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⑶ “신학과 과학이 계속적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밴쿠버는 JPIC가 단순한 사회윤리 차원의 과제가 아니라, 전 WCC 회원교회들과 기독교 단체들, 나아가서 모든 비 WCC 교회들과 비 WCC 기독교 단체들 및 온 인류의 과제라고 천명하였다.

 

7) 밴쿠버에서 서울 JPIC대회에 이르는 길목에서

이 길목에는 D.P. 나일즈가 제시한대로 20개 이상의 교회들의 지역별 혹은 세계적인 JPIC대회들이 있었는데, 기술로 인한 재난(체르노빌), 태평양에서의 핵실험, 중독성 산업 쓰레기, 핵에너지, 이상기온과 적도지역의 원시림 파괴 등 자연 파괴의 문제가 두드러졌다. 이들 가운데 1988년 노르웨이 그렌볼렌에서 모인(개신교, 정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 등) “창조 보전 협의회”가 지적한 “창조신학”에로의 접근과 이 신학에 대한 태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5가지 잘못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중에 셋만 열거하면, ⑴ 복음을 개인의 영혼구원에만 국한시키고, 세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관련시키지 않는 것. ⑵ 생태학적 위기가 과학기술적 문제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기술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 ⑶ 생태학적 위기를 회개와 개선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기보다는 이 세계의 종말로 보는 신 묵시주의.

 

8) 서울 JPIC

서울 JPIC에서, “개발”을 끝낸 제1세계는 "IC"와 평화 문제에 집중했고, 개발을 계속적으로 필요로 하는 제3세계는 “정의”와 “발전”문제에 부심하여 서로의 의견이 충돌했다. 이 대회 직후 WCC의 JPIC분과(Unit Ⅲ)는 JPIC 문제가 향후 세계교회가 감당해야 할 21세기의 과제라는 점을 확실히 하였다. “생명이 지탱되는 미래사회”를 지향하는 JPIC의 과제는 “생명의 부여자시여, 당신의 창조세계를 지탱하소서.”라고 하는 기도에 대해서 응답하는 경제, 정치, 사회, 및 생태학적 구조의 변혁이다. 이는 전 WCC, 아니 전 인류의 과제로서, 우리는 모더니즘의 가치관들을 가지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의 재구조화를 요청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9) 캔버라 WCC 제7차 총회 (1991)

캔버라 총회 제1분과에 나오는 “창조의 신학 : 우리시대의 도전”이 주장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무엇보다 창조세계 속에 현존하시는 “성령”에 대한 주장은 “창조의 신학”과 “생명의 신학”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캔버라 WCC를 위래 쿠알라룸푸르 준비대회가 밝힌 “성령”과 창조세계와의 관계는 “창조신학”에 새로운 비전을 열어 보여 주었다. 그리고 캔버라 역시 “세계적인 생태학적 위기”가 “세계적인 사회정의의 위기” 및 “세계적인 경제정의의 위기”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서 캔버라는 세계교회의 JPIC에 대한 책임을 논하면서, “교회의 신앙, 정치 및 구조”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해야 하고, “교회의 정책들, 과제들의 우선순위들 및 프로그램의 재조정”을 촉구하고 있으며, “교회의 성경공부, 교리교육, 찬송, 예전, 기도, 성례 및 증거”에도 JPIC, 특히 "IC"에 대한 책임이 반영될 것을 촉구하고 있다.

 

10) 산티아고 “신앙과 직제” 제5차 세계대회(1993)

이 대회에서 “신앙과 직제”와 “JPIC”분과(Unit Ⅲ)는 매우 가까워졌다. 즉, “신앙과 직제”의 문서인 “교회와 세계: 교회의 일치와 세계의 갱신”(1990)은 교회의 사회참여를 주장하였고, “신앙과 직제” 및 “JPIC”측의 공동연구의 결과물인 “값비싼 일치”(Costly Unity)”가 코이노니아를 바탕으로 교회의 사회참여를 주장함으로써, 이 두 운동의 합류가 가시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JPIC와 같은 인류사회 및 창조세계 문제를 논하지 않는 교회 일치론은 어디까지나 값싼 일치운동라고 하는 자각에 이른 것이다. 산티아고 이후, 에큐메니칼 교회론과 에큐메니칼 사회윤리학은 매우 근접하고 있다. 그래서 1995년의 “The Ecumenical Review”는 그 특집 주제를 “교회론과 윤리학”(Ecclesiology and Ethics)으로 하였다.

 

11) 1995년 할키 세미나 역시 큰 교훈을 준다. ⑴.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자연과 인간을 섬기기 위해서 부름 받았다. ⑵. 인간중심적 세계관은 극복되어야 한다. ⑶. 자연파괴와 자연보전 모두에 있어서 실용주의적 가치관은 포기되어야 한다. ⑷ 우리는 자연의 성스러움을 인정해야 한다. ⑸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위한 제사장이다. ⑹ 구원은 인류뿐만 아니라, 나머지 창조세계에도 일어나야 한다. ⑺ 소비지향적 삶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1997년에 열린 소코니(Sokoni) “JPIC”(UnitⅢ) 대회는 JPIC프로그램이 향후 생명과 문화, 영성과 윤리, 그리고 지구촌 경제 문제를 계속 연구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12) 하라레 WCC 제8차 총회(1998)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모인 WCC 제8차 총회는 “도시에 평화를” 캠페인과 관련된 노력들에 감동을 받고 교회가 힘을 합해서 세계적, 지역적 차원에서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사실에 함께 대처해야 할 것을 절감했다. 그리하여 총회 대표들은 “폭력극복 10년: 화해와 평화를 일구어 가는 교회, 2001-2010”을 제안하게 되었다. 하라레에서 2001-2010부터 시작하기로 결의한 “폭력극복 10년”은 ‘경제적, 생태학적, 정치적 폭력’을 문제 삼고 있다. 이 운동은 JPIC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2001-2010까지 이어지는 유엔의 “평화의 문화” 운동(the International Decade for a Culture of Peace and Non-Violence for the Children of the World)에 보조를 맞춘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운동이 대한예수교총회(통합)가 2002-2012년 까지 펼치는 “생명 살리기 운동 10년”의 배경이다. 그리고 2006년 포르트 알레그로는 이에 더하여 빈익빈 부익부를 가져오고 환경파괴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시장경제의 지구화(neoliberal globalization)에 대한 문제에 더욱 집중하였으며, 아울러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문제 등 생태학적 위기를 더욱 의식하고 있다. WARC는 2004년 아크라 총회이래로 경제정의와 지구환경에 대한 정의 문제를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에 총 집중하고 있다. 2006년 12월 (vol. 56) “Reformed World” 지는 그 주제를 “제국”(the Empire)이라 하여, 주로 부시 정권 하의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본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1-12”에서 주로 “삶과 봉사”, “교회와 사회”, 혹은 “JPIC”계통의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논했다. 이러한 교회의 사회참여는 “신앙과 직제”전통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실상, “신앙과 직제” 대표들과 “교회와 사회” 대표들은 세계교회 차원에서 함께 일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1938년 위트레히트에서 WCC를 구성하였던 것이다. 그 후 이 두 운동의 관계가 좀 소원하기도 하고 별거의 관계이기도 하였으나, 1960년대부터 “신앙과 직제”와 “교회와 사회”는 계속하여 상호 접근하는 관계를 지향해 오다가, 산티아고 신앙과 직제대회(1993)에서는 그 거리를 매우 좁히고 있다. 교회의 사회참여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구도는 “신앙과 직제”전통이 “JPIC”(UnitⅢ)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의 근본 성격을 규정하는 “신앙과 직제” 운동, “JPIC”(IUnit Ⅲ) 운동, 그리고 “선교”(CWME) 운동은 서로 삼위일체적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본회퍼의 성찰적 신앙은 '사회성 신학'으로부터"

독일 나치 정권에 저항하며 행동하는 신앙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본회퍼의 삶을 다룬 영화가 상영 중인 가운데 신학계에서 본회퍼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의롭다 함을 얻은 백성은 이웃사랑에 인색해서는 안돼"

한국신학아카데미 2025년 봄학기 '혜암 이장식 교수 기념 학술세미나'가 11일 오후 서울 안암동 소재 세미나실에서 '구약 율법과 신약 복음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16세기 칼뱅은 충분히 진화론적 사유를 하고 있었다"

이오갑 강서대 명예교수(조직신학)가 「신학논단」 제117집(2024 가을호)에 '칼뱅의 창조론과 진화론'이란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