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사형제도의 역사적 고찰
1. 형벌의 역사 속에서의 사형제도
고대사회를 유지하는 조건은 애니미즘, 정령신앙 그리고 금기(Tabu) 계명이었다. 이것을 위반하면 사형에 처해지는 일이 있었다. 고대사회에서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 범죄자에 대한 보복으로 사형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고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의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이 적용되는 사형제도가 있었다. 탈리오 법칙은 고대 바빌로니아 법률에서 범죄자에게 피해자가 받은 상처와 피해 정도와 똑같게 벌을 주도록 한 원칙이다. 이러한 동해보복의 법 정신이 성문화한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성문법이 함무라비 법전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8세기 바빌론의 제 1왕조 6대 왕인 함무라비 왕위 재위 기간(BC 1792-1750)에 만들어진 성문법이다. 이 법조문은 바빌로니아 국신(國神)인 마르둑(Marduk)신전에 있는 설록암의 원주에 조각되어 있다. 282개 조항의 조문이 새겨진 함무라비 법전은 함무라비의 절대왕권 사상을 표현한 법전으로 동해보복형의 법조문이다. 192조 ‘자유인의 눈을 상하게 한 자는 그의 눈을 상하게 한다’, 200조 ‘자유인의 이를 상하게 하는 자는 그의 이를 상하게 한다’는 동해보복을 표현하고 있다. 총 282조의 법조문 중에서 37개조에 걸쳐 사형 규정이 나타나 있다. 살인, 강간, 폭행, 절도, 강도, 간통, 위증, 노예 은닉, 연소자 유괴, 왕명 불복종 등에 대해 사형에 처하고 사형의 방법으로 화형, 수장, 신체 절단 등을 사용하였다.
로마시대(BC 753-1453)에도 ‘십이동판법’ 등에서 사형이 인정되었다.
사형제도는 서양에서 이미 희랍 철학자들의 형법과 관련된 견해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는 형벌제도를 통한 정당한 보복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플라톤은 형벌제도를 신의 명령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형벌의 근본 목적은 범죄 때문에 손상된 신적인 조화를 회복하고 보복하는데 있다. 플라톤은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 국가 반역죄, 폭력적인 위헌의 시도, 계획된 살인 등에 대하여 사형을 시킬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벌은 ‘범죄로 인하여 발생한 불평등을 조정하는 것’이고, ‘범죄자로부터 그 부당한 이득을 빼앗아 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유괴, 강도 등을 계속하는 경우 사형에 처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벌의 실체에 대하여 명확한 이론을 확립하였다. 형벌은 정의의 기능을 지니고 있고 형벌제도는 손상된 평등을 복구하는 의미와 아울러 개선, 경각심, 예방의 목적을 지닌다고 보아 오늘날 형벌제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4세기에는 보통 범죄에 대해서도 사형으로 처형하였고 죽이는 방법도 더 잔인하였다. 이 시대를 일컬어 “서구문명에서 화형, 독살, 수장 등 인간을 죽이는 새로운 방법을 강렬하게 개발한 시대”라고 하였다. 헨리 8세의 치하(1509-1547)에서는 약 7만 2천명의 절도범이, 엘리자베스 치하(1558-1604)에서는 8만 9천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근대에 와서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존엄, 자유, 천부인권사상 등이 강조되었다. 볼테르 등 계몽사상가들은 “왜 국가가 형벌을 가해야 하고 국민들이 그 형벌에 복종해야 하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합리적 해답을 찾으려고 하였다.”
홉스, 몽테스키외, 루소, 칸트, 헤겔, 밀은 사형존치론을 주장하였다. 칸트는 응보(Vergeltung)의 사상과 탈리오의 법칙에 따른 정의를 위해 사형은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범죄에 대해 그와 동일한 형벌로 응보 해야 한다고 하면서 형벌은 일종의 정언명령이라고 하였다. 형벌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기 목적적이라는 것이다. 형벌은 범죄자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의가 사라진다면 인간은 더 이상 땅 위에 살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헤겔도 사형의 필요성에 대하여 역설한 칸트의 의견에 동의한다. 헤겔의 형벌이론은 응보사상에 근거하여 있다. 헤겔은 범법자가 형벌을 받는 것이 정당하며 이성적 존재자로서 범법자의 권리이며 범죄자가 영예로워지는 길이라고 하였다. 헤겔은 칸트와 같이 응보주의의 입장에 서 있으나 형벌의 본질을 정의의 명령이라 하지 않고, 형벌은 침해된 법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다. 범죄는 법의 침해이고, 형벌은 침해의 침해이며 부정의 부정이다. 범죄는 범죄에 의해 상쇄된다고 하였다. 헤겔은 정당한 형벌은 동해보복의 탈리오의 법칙에 의하지 않아도 되며 등가적 가치에 의하면 된다는 등가치 응보론을 말하였다.
칸트와 헤겔의 이러한 생각은 개신교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중국의 경우 한나라 때와 진나라 때에도 사형이 집행되었다. 특기할 것은 당나라 현종 때(712-756) 초기에는 잠시 동안 정치적 안정을 이루어 사형집행이 일시 중단된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고조선의 8조 법금(法禁)에도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조문이 나와 있다. 조선시대에 능지처참 부관참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행되었고 목을 매는 참수형 목을 매달아 죽이는 교수형(絞首刑)이 시행되었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교수형과 총살형(군형법)이 남아있다. 근대 사형제도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것은 ‘녹두장군’ 전봉준이다.
현행헌법은 5개 죄에 관하여 사형을 규정하고 있고 관련 법조문은 16개의 조문에 이른다. 소년법에서는 범죄행위 시에 18세 미만의 소년에 대하여는 사형을 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현행형법은 국사범과 살인 및 중대한 범죄의 사실 중에 치사사건 등의 사형을 규정하고 있다.
형법이 법정형으로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범죄에는 내란죄(제87조), 내란목적살인죄(제88조), 외환 유치죄(제92조), 여적죄(제93조), 모병 이적죄(제94조), 시설제공 이적죄(제95조), 시설파괴 이적죄(제96조), 간첩죄(제98조), 폭발물 사용죄(제119조), 방화치사죄(제164조), 살인죄(250조), 강간 등 살인죄(제301조의 2), 강도살인죄(제338조), 해상강도살인·치사·강간죄(제 340조)가 있다. 그러나 이 이외에도 특별법에 의해 사형 범죄의 범위는 현저히 확대되고 있다. 특별법에서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범죄로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의한 단체조직(제4조)·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약취 유인죄(제5조의 2)·도주차량운전자(동조의 3)·상습강도(동조의 4)·강도상해 강도강간의 재범(동조의 5)·통화위조(제10조)·마약법위반(제11조) 등이 있으며, 이 이외에 ‘국가보안법’과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도 사형을 규정하고 있다.
1945년 이후 1634명에게 사형을 집행하였으며 2001년 8월 말 현재 사형선고가 내려져 사형이 확정되고 아직 집행되지 않은 사형수가 51명이라고 한다. 한때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재임 5년 동안(1998.2 - 2003.2)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고 그 뒤에 집권한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한 이후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다. 2007년 12월 30일, 10년 동안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서 국제사면위원회로부터 ‘사실상 사형폐지 국가’로 분류되어 국제사회에서 인권국가로 인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