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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선 칼럼]이웃집 아이들을 생각하는 어린이 날

  ▲서광선 고문
5월이다. 지난 3월 말에서 4월 한 달 동안 천안함 침몰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았다. 폭발로 두 동강 난 군함에서 구사일생 살아 나온 장병들, 그리고 못내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해군장으로 장례를 치러야 했던 꽃 같은 젊은 해군 장병들, 우리 가슴에 사무쳐 잊을 수가 없다. 졸지에 아들을 보내야 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버지와 할아버지, 젊은 남편과 사별해야 하는 아내들,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어 버린 아이들의 눈물, 그리고 결혼을 며칠 앞두고 헤어져야 했던 애인들, 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아직 침몰의 진상은 모연하다. 우리 군함이 왜 그리고 어떻게 두 동강이 났는지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어뢰를 맞았는가, 기뢰를 건드렸는가, 아니면 좌초했던가? 어뢰라면 누가 쏘았는가? 기뢰라면 누가 부설했던 것인가? 누가 어떻게 왜 터졌는지 확실하게 말해 주는 사람이 없다. 우리의 슬픔, 우리의 분노, 그리고 우리의 의혹들은 모두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 영영 묻혀 버리고 말게 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망각 속에 쓰라리고 잔인한 2010년의 4월은 차디 찬 꽃샘 바람과 함께 사라져 가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그래도 세월은 야속해서 5월이 돌아 왔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어머니 날을 꼽으며 5월 한 달은 가정의 달로 벌써 몸과 마음이 들떠 있다. 올해는 아이들에게 푸짐한 선물을 살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약속한 나들이를 어디로 갈 것인가. 아이들을 어떻게 즐겁게 해 줄 수 있을 까. 커 가는 아이들에게 몸에 맞는 옷이라도 사 주어야 하나. 부모들의 주머니 사정과 시간 사정으로 걱정이 태산 같다. 아이들의 선물이나 나들이 걱정에 앞서 과외 공부다, 입시 준비에다, 학교 성적에다 내신 성적, 어린이 날이 따로 없다, 중학교를 선택하는 일,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일, 대학 보내는 일, 부모들에게는 매일 매일이 어린이날이나 다름 없이 고민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어버이 날은 어떤가? 어느날이 어버이 날인지 기억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글을 쓰는 아버지이며 할아버지인 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 달력을 보았더니 5월 8일 토요일이 어버이날이라고 적혀 있다. 물론 공휴일이 아니다. 11일은 입양의 날이고 15일은 스승의 날,  17일은 성년의 날이고 21일은 부처님 오신 날인 동시에 부부의 날이라고 우리 집 달력에 적혀 있었다. 어버이 날을 기억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면서 "효도 관광"을 계획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효도관광은 못해 드려도 하루 모여 앉아서 옛날 이야기도 하고 저녁 식사라도 대접하자고 하는 아들 며느리가 얼마나 있을까? 아니면 아이들이 모여 앉기만 하면, 아버지 유언장에 재산 상속은 어떻게 하느냐는 토론이나 싸움이나 벌리지는 않는지 모를 일이다. 아이들은 80노부모가 60대 자식들을 걱정해서 집을 나갈 때 마다, 운전 조심해서 다니고, 길 건널 때 자동차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것을 "잔소리"정도로 밖에 생각 못하고 귀찮게 생각하니, 부모 공양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게 된 것이 오늘의 사정인 것 같다. 이제 한국 사회도 고령화 시대에서 초 고령화 시대가 되고, 세계에서 1,2등 하는 저출산 시대가 되면, 부모님 모시고 살 던 세상은 옛날 이야기가 된다고 한다. 아마 얼마 안가서 "어버이 날"을 폐지 하자는 여론이 일어 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윤리 의식은 유교에서 물려 받은 삼강오륜의 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다. 오륜, 즉 다섯 가지 인간 관게와 윤리에서 두 가지--군신간의 충성, 친구간의 의리를 빼면 나머지 세 가지는 주로 가족 관계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 부부 사이, 그리고 형제 사이 등 집안 사람들 사이의 윤리와 예의 범절을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의 윤리 의식은 가정이나 가족 안에서만 통하는 것 같다. 우리 집안 식구들 끼리만 잘 하면 된다는 가족 중심주의 아니면 심하게는 가족 이기주의에 빠지기 쉽다. 우리 사회의 많은 비리와 부정의 근원을 따지고 보면 가족 이기주의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누라 호강 시켜 주고 싶어서, 아이들 외국에 유학 보내고 싶어서, 가족 식구들 취직 시켜 주어야 하기 때문에 하면서 부정한 돈을 받거나 권력을 이용해서 친척들에게 특혜를 주고 아들 병역은 기어코 면제시켜 주어야 하는 비리들은 역시 가족 이기주의에서 나온 것들이다.

가정의 달, 생각하면서 맞이하면 좋겠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윤리 의식--사랑과 존경과 돌봄과 위함의 가치와 윤리를 곰곰히 생각하며 점검하며 되새기는 시간들을 가지고 싶다. 우리 집안은 웃음이 넘치는 집안인가? 우리 집 식구들은 대화를 좋아 하는가? 우리 집안에 아직 분노와 폭언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가? 우리 집안은 깨끗한 집안인가? 화목한 집안인가? 서로 믿고 의지 할 만한 집안인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우리 집 사람들은 우리 집 사람들만 생각하는가? "우리 집 사람들 끼리 만 잘 살면 된다" 우리는 우리 집 식구 밖에 몰라"라든가 하는 가족 이기주의, 가족 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한번 살펴 보고 싶다. 우리 집 밖의 세상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가정. 이웃이야 어떻게 살던 아랑 곳 하지 않는 식구들. 우리 집 아이들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들을 버리고 세상을 향한 사랑, 우리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면서 더 풍요로워 지는 행복한 가정 생활을 그려 본다.

가정의 달, 이 찬란한 5월에 다시금 어린 자식들을 차디 찬 서해에 묻고 통곡하고 가슴을 치던 천안함 가족들의 눈물을 아프게 기억한다. 그러면서 두 동강 난 군함 속에 갇혀 있는 아들들의 생사를 발을 구르며 안타깝게 기다리던 부모들의 이웃 사랑을 기억한다. 귀한 아들들을 깊은 바다 속에서 찾으려고 목숨을 걸고 뛰어 들어 간 잠수병이 죽어 갈 때, 실종자 엄마 아빠들은 더 이상의 희생이 없도록 실종자 수색을 중단해 달라고 해군 당국에 요청했다는 보도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나아가서 이북의 만행이라고 해도 더 이상의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천안함 희생 장병의 부모들의 동족 사랑과 이웃사랑의 뜨거운 가슴을 헤아리게 한다.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에 기억해야 할, 가슴 아프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아들 잃은 어버이의 사무친 분노를 이웃 사랑과 평화의 염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에 천안함의 젊은 영령들과 아들들을 떠나보낸 어버이들을 위로하며, 다시는 전쟁 없는 평화의 바다와 통일된 한반도의 5월을 기원한다.
 

서 광 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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