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선교신학적 입장과 노선에 대한 고찰과 평가
김명혁(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1.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설립 배경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19세기 선교 및 연합운동의 총 결산이요 20세기 선교 및 연합운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1910년 6월 영국 에딘버러에서 개최되었던 “세계선교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와 “모든 교회는 모든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천명하며 1921년 가을 뉴욕 주 모홍크 호수 가에서 개최되었던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의 선교적 전통을 이어 받아 1948년 8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조직되었다. “에딘버러대회”의 제1분과위원회는 세계선교의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협동과 연합이 중요함을 지적했는데 이는 결국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의 창설을 가져오게 했다. “국제선교협의회”는 제2차 예루살렘 IMC대회(1928), 제3차 탐바람 IMC대회(1938), 제4차 휫트비 IMC대회(1947)를 거치면서 세계교회의 연합과 동역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되었는데 1938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 임시위원회”(Provisional Committee of the WCC)를 구성했고, 1939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 임시위원회”와 ‘IMC 계속위원회” 간에 “합동위원회”(Joint Committee)를 조직하여 IMC와 세계교회와의 밀접한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며 공동 과업을 수행해 나아가기로 했다. 이와 같은 관심과 노력의 결과로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조직되었다. 그 이후 IMC와 WCC는 양 기구의 통합을 계속해서 논의하다가 1961년 뉴델리 WCC 총회에서 양 기구의 통합을 정식으로 채택했다.
2. 제1차 암스테르담 WCC 총회의 선교신학적 입장과 노선
1948년 8월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44개국 147개 회원 교회로부터 온 351명의 대표들과 다수의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Man's Disorder and God's Design)이란 주제를 가지고 제1차 WCC 총회를 개최했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러시아정교회는 대표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에디오피아교회나 시리아정통교회 같은 오래된 교회들과 한국장로교회 같은 신생교회들을 비롯한 앵글리칸교회, 침례교회, 회중교회, 칼빈주의교회, 루터교회, 감리교회, 퀘이커교회, 구세군 등 147개 교회들로부터 온 대표들은 전쟁의 쓰라림과 현대문명의 부조화를 통감하면서 세계교회들이 새로운 교제와 협력을 수립하여 세계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을 다짐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인류 역사상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위기의 순간에 탄생되었습니다. 좌절과 두려움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최근에 일어난 전쟁의 결과만은 아닙니다. 전쟁이전에도 문명은 이미 병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인간의 부조화에 대해 큰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현대의 절망적 세계에 있어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실재임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모였습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 총회는 다음과 같은 지극이 간단한 “협의회의 근거”(Basis of the Council)를 채택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모임이다.”
3. 제2차 에반스톤 WCC 총회의 선교신학적 입장과 노선
1954년 8월 15-31일 미국 에반스톤에서 161개 회원 교회들로부터 온 502명의 대표들과 다수의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 제2차 WCC 총회를 개최했다. “세상의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Christ the Hope of the World)라는 주제를 가지고 모인 제2차 에반스톤 총회는 기독교적 소망의 본질과 함께 교회는 정치 사회적 불의에 대항해서 싸우는 정치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세계교회간의 보다 긴밀한 연합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이 세상의 소망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 신앙을 모든 사람과 함께 공유하기를 소원한다. 그는 우리를 찾아 구원하시려고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 우리에게 오셨다. 대속의 죽음, 부활, 죄와 사망의 파멸, 승천, 성령에 의한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 선교의 명령, 재림에 대한 소망 이것이 모든 세대를 통한 하나님의 백성의 소망이다. 이 소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방법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각처에서 많은 대중들이 굶주리고 있으며 인간의 가치가 무시되는 상황에서 살도록 강요되고 있다. 당신의 교회는 이와 같은 불의에 대항하여 말하고 또 행동하고 있는가? 당신의 교회는 이와 같은 일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남을 선포할 용의가 있으며 그렇게 행동할 용의가 있는가?” “함께 머무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우리가 비록 현대의 심각한 정치적 분열에 의래 나뉘어있을지라도 우리가 여기 에반스톤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사실을 인해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로 하여금 분열의 죄악을 새롭게 인식하게 했다.”
4. 제3차 뉴델리 WCC 총회의 선교신학적 입장과 노선
1961년 11월부터 12월 5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197개 회원 교회들로부터 온 577명의 대표들과 다수의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 제3차 WCC 총회를 개최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Jesus Christ the Light of the World)이란 주제를 가지고 모인 제3차 뉴델리 총회는 교회의 증거적 및 봉사적 과업과 아울러 정치 사회적 책임 및 연합의 필요성을 새롭게 다짐했다. “우리는 여기서 깊고 보다 넓은 교제를 경험하게 된 것을 감사한다. 우리들은 다 함께 증거와 봉사와 연합에 대한 우리의 공동 소명을 이해하기 위해 힘썼다. 그리스도는 길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걸어가면서 그를 증거하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이것은 그의 명령이다. 모든 종류의 괴로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보다 더 크고 효과적인 봉사는 없다. 우리는 모든 인종에게 가해지고 있는 불의와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기독교 연합의 완성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뉴델리 총회는 선교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타 종교인들에 대해 관대하고 개방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다고 지적했다. “교회는 보냄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그를 증거하도록 섭리하신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화목이 모든 피조물과 모든 인류에게 미친다. 이 위대한 진리 때문에 우리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우리의 태도가 달라진다. 물론 그와 같은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Missio Dei)에 대해 가지는 관계와 반응이 어떠한지를 정의할 때 우리는 상반된 견해를 가진다. 오늘날 하나님이 다른 신앙 또는 무신앙의 인간들에게 주신 은혜와 사랑의 능력의 의미에 대해 교회들은 별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시대마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전달을 가능케 하시는데 그리스도의 증거를 전달하기 위해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방법들이 흔히 이상해 보이고 특히 전통적인 방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위험스럽게 보인다.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도자가 자신을 전도 대상자들과 동일시하려는 의도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화는 오늘날 매우 효과적인 복음전파의 방법이다.” 결국 뉴델리 총회는 제5차 빌링겐 IMC대회(1952)가 채용한 Missio Dei 의 개념을 채택하며 선교를 역사 안에서 일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활동(Missio Dei)에 참여하는 모든 일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보편적이고 개방적인 선교적 입장 때문에 WCC가 혼합주의 또는 범 종교주의로 기울어진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경향을 WCC의 총무 비셔트 후프트는 부인하지 않으며 그와 같은 범 종교주의 경향에 대한 비판이 정당함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신학적 상대주의 또는 심지어 혼합주의로 이끌고 갈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WCC 회원교회의 몇몇 인사들은 신학적 무관심주의 또는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에큐메니즘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아마 보수주의자들이 일으키는 타당한 질문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사회적 및 국제적 문제에 너무 많은 정력을 기울이고 선교와 복음전파의 우선적 과업을 등한히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아주 적절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WCC교회들과 복음주의교회들을 비교해 볼 때 후자가 더 많은 인력과 재력을 복음화와 해외선교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델리 총회는 암스테르담 총회가 채택했던 “협의회의 근거”가 너무 간단하여 부적당하다는 비판의 소리를 의식하며 다음과 같이 다소 보충된 “협의회의 근거”를 채택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고백하며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 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공동 소명을 함께 수행해 나아감을 힘쓰는 교회들의 모임이다.”
5. 제4차 웁살라 WCC 총회의 선교신학적 입장과 노선
1968년 7월 4일부터 20일까지 스웨덴 웁살라에서 235개 회원 교회들로부터 온 904명의 대표들과 다수의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 제4차 WCC 총회를 개최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Behold, I make all things New)라는 주제로 모인 제4차 웁살라 WCC 총회가 공식적으로 취한 선교신학적인 입장은 ‘인간화’를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은 것이었다. Missio Dei 의 개념에서 Humanization의 개념으로 진보한 것이었다. “우리는 인간화(humanization)를 선교의 목표로 높이 내 세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시대에서 인간화만큼 선교의 목적에 대한 의미를 더 잘 전달해주는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시대에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목표가 하나님이 사람에게로 돌아오는 것 보다는 사람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으로 잘 묘사되었다. 즉 선교의 목적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해 사람을 하나님에게로 데려가는 기독교화(Christianization)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근본적인 질문은 무엇보다 참된 인간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므로 선교적인 교회와 신자들의 주요 관심은 선교의 목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인간성을 가리키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Drafts for Sections prepared for the fourth Assembly of WCC). 물론 이와 같은 웁살라 총회의 선교신학적 입장과 노선을 웁살라 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이 모두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웁살라 총회에 정회원으로 참석한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나 존 스토트 박사나 래리 크리스텐슨 목사나 칼로스 오르티쯔 목사 등 복음주의자들은 웁살라 총회의 입장과 노선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WCC 회원교단에 속해 있는 독일의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WCC 총회와 이 총회의 ‘세계선교 및 전도분과위원회’가 취한 신학적 동향에 대하여 경악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노골적으로 하나님 대신 사람을 대치시킨 점이다. 선교의 목적을 새로 정의한 제네바초본은 분명히 ‘우리는 인간화를 선교의 목적으로 높이 주장한다고 선언했다. 바울의 중심과제였던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옳다 여김을 받게 되며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는가에 대한 문제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바울의 관심이 인간의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에 의해 보충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묵살되어 버린 것이다”(Missions: Which Way? P.85). 바이어하우스 박사의 평가는 정당했다. 왜냐하면 양자의 관계는 불가분적인데 역사적 기독교는 때때로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곤 했기 때문이다.
6. 제8차 방콕 WCC 세계선교대회의 선교신학적 입장과 노선
1973년 1월 태국 방콕에서 모였던 제8차 WCC 세계선교대회는 “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이라는 주제로 모였는데 이 모임을 지배한 선교신학의 방향은 한층 더 급진적으로 범 종교주의로, 정치적 행동주의로 흐르게 되었다. 세계선교전도위원회 위원장 에밀리오 카스트로 박사는 대회의 결과를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선교시대를 마지막 석양에 서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여명에 서 있다. 아프리카 문화를 긍정하는 일, 인도의 종교적 전통을 널리 보급하는 일, 그리고 사회 혁명을 이룩하기 위해 도전하는 일들이 세계선교의 새 시대를 향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방콕73」이 취한 범종교주의적 선교신학적 입장과 노선을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선교개념은 선교중단을 의미하고 타 종교 신봉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함께 일하는 것을 의미하며 구원이라는 개념을 모택동의 문화혁명과 남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친공적 해방운동에 적극 협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심각한 문제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금에 와서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The Challenge of Bangkok, pp. 2f.)
7. 제5차 나이로비 WCC 총회의 선교신학적 입장과 노선
1975년 11월 23일부터 12월 10일까지 케냐 나이로비에서 286개 회원 교회들로부터 온 747명의 대표들과 다수의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 제5차 WCC 총회를 개최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롭게 하시며 하나 되게 하신다.(Jesus Christ Frees and Unites)라는 주제로 모인 제5차 나이로비 WCC 총회는 ‘자유’라는 말을 대체로 정치 사회적 구조 악으로부터의 자유로 이해했다. 물론 나이로비 총회가 그동안 받아온 비판을 의식하면서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다소 취한 것은 사실이었다. 총회의 제1분과위원회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구원의 개인적인 면과 구원의 사회적인 면을 항상 갈라서 이야기함으로 복음 자체를 분열시키고 있고 인간생활을 부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복음은 항상 인간 전체를 위한 복음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죄와 악으로부터의 자유를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일과, 자유를 사적이며 영원한 차원으로 제한하는 것도 배격해야 한다.” 이와 같은 구절은 WCC가 복음주의적 방면으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복음주의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뿐이었고 마지못해 취한 타협적인 반응이었다고 하겠다. 제5 제6 분과위원회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이로비 대회 준비 교재” 중에서 두 곳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의 교회는 이 구조적인 악으로부터 인간과 사회를 해방시키는 것을 오늘의 구원의 구체적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해방의 복음은 이 구조적 죄와 사회 부정의 압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선포한다.” WCC 총무 필립 포터 박사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친교”라는 개회강연에서 여전히 구조 악 제거를 통한 사회구원과 인간회복, 그리고 대화를 통한 인간가족의 형성과 지상의 평화왕국 건설을 강조했다. 포터 박사는 인간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문제들을 분석하면서 환경의 오염문제, 기아와 기근의 문제, 인종차별의 문제, 인구팽창의 문제, 전쟁무기 증가의 문제 등의 사회구조악의 문제와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지적했다. 복음주의자들이 지적하지 못하는 중요한 문제들을 지적한 것은 올바른 지적이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현대인의 영적 기아상태에 대한 언급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하겠다. 그리고 필립 포터 박사가 사회구원과 인간회복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그 해결책은 상호 신뢰와 친교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 이와 같은 친교는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기도와 명상”을 통해 그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WCC 중앙위원회 의장 M. M 토마스 박사는 소위 “그리스도 중심적 혼합주의”(Christ centered syncretism)를 내세움으로 혼합종교의 정당성을 인정하려고 했다. WCC 프로그램 위원회가 복음화 문제의 대변인으로 선정한 아리아스 감독은 “새 인간”을 선포하는 복음전파가 교회의 급선무임을 역설하면서 “그 새 인간을 볼리비아 산간지에서 두더지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발견했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교회에 속하지도 않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지만 우리들보다 그리스도를 더 많이 소유하고 있다고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범종교주의적 및 인도주의적 선교의 입장을 내세웠다. WCC 총회 대변인 ‘로버트 브라운’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슬림, 힌두교, 불교, 공산주의자들의 말도 들을 수 있는 때가 왔다”라고 하였다. 존 스토트 박사는 나이로비 총회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복음주의적 입장을 강조했어야 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나이로비 총회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구세주를 인류에게 전하려는 복음주의적 관심보다는 범종교적인 인도주의를 선양하는 일과 정치 사회적 세상사 해결에 그 관심을 기울이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1) 인간의 죄 가운데 있는 상태에 대한 깊은 인식, (2)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 (3)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구주라는 확신, (4) 복음전파의 시급성, (5)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
8. 제6차 밴쿠버 WCC 총회의 선교신학적 입장과 노선
1983년 7월 24일부터 8월 10일까지 캐나다 밴쿠버에서 300개 회원 교회들로부터 온 930명의 대표들과 다수의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Jesus Christ-the Life of the World)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제6차 WCC 총회를 개최했다. 필자는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밴쿠버 WCC 총회에 충실히 참석하며 총회의 동향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24일 주일 오전 9시 30분에 개최된 개회예배는 여러 나라의 언어와 의상과 음악이 풍부하게 나타난 에큐메니칼한 축제였다. 다문화적 축제 의식가운데 거듭해서 나타난 단어들은 가난, 불의, 착취, 폭력, 고문, 투쟁 등 정치 사회적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들이었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거행된 개회 축제에는 3천여 명의 회의참석자들과 1만 2천여 명의 방문자들이 퍼시픽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가운데 진행되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메시지도 영감도 없는 춤과 음악과 낭독의 의식으로 엮어진 종교적 연출 같았다. 울긋불긋한 옷을 입을 소녀들의 계속되는 춤을 바라보던 내 옆에 앉은 어떤 독일 목사는 “가엾은 소녀들!” 이라고 중얼거렸다. 25일(월) 오전 9시 전체회의에서 WCC 중앙위원회 의장 스코트 대주교는 “의장의 보고”를 통해 현대인을 사로잡고 있는 물질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속박을 깨트리고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과의 바른 관계에 근거하는 삶의 부요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25일 11시에는 희랍 정통 신학자 스틸리아노 감독과 남아프리카의 흑인 신학자 알란 보삭의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에 대한 주제 강연이 있었는데 알란 보삭의 인종차별주의와 독재 군국주의의 불의를 고발하는 정치 강연은 청중의 열광적인 기립 박수를 7번이나 받았다. “폭력과 탐욕과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악마적 파괴가 세계와 그의 백성들을 계속 파괴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착취와 인종차별주의가 온 세계에 횡행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생명이라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정말 이것을 믿을 용기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생명이신 것을 고백한다면 우리는 침묵을 지킬 수 없습니다. 이 총회는 밖으로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이 두 주간 동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생명이신 것을 겸손과 기쁨과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함께 인정하십시다.”
26일(화) 오전 9시 WCC 총무 필립 포터는 “총무의 보고를 통해 밴쿠버 총회와 WCC의 원리와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비교적 온건한 성경해석적인 강연을 했지만 여전히 범종교주의적 인류공동체 형성을 지향하는 WCC 신학에 근거한 강연을 했다. “교회는 다른 종교 및 이데올로기의 사람이나 신앙이 없는 사람과도 대화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존경하는 것처럼 우리가 대화하는 사람들을 존경해야 한다. 깊은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임재 하신다.” 대화와 존경의 필요성을 지적한 말은 옳은 말이지만 균형을 잃고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문제였다. 오전 11시에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 대한 도전”이란 주제로 모인 소그룹(120명) 모임은 반전 성토모임으로 이어졌다. 26일 오후 4시30분 전체회의 시간은 WCC의 범종교주의적, 휴머니즘적 및 보편주의적 신학을 노출시킨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이란 주제로 루터교 감독과 스코틀랜드의 핵물리학자와 아프리카의 여성과 캐나다의 인디언 원주민과 불교도와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와 유대주의자가 각각 발표를 했는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는 발표하기 전에 소리를 내어 염불을 했는데 900여명의 대표와 2천여 명의 참석자들이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루터교 감독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세계가 오늘날 하나님을 반역하는 악의 세력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으므로 악의 세력과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투쟁에 개인하신다고 지적했다. 핵물리학자는 과학의 힘을 모아 가난한 자를 먹이고 병든 자를 치료하는 엄청난 과업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고 지적하면서 우리의 과업이야말로 생명의 잔을 넘치도록 우리의 손으로 붙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프리카의 흑인 여성은 어린 애기를 안고 나와서 그 애기가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캐나다의 인디언 추장은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은 그들의 땅을 소유하기 위한 캐나다 정부와의 투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불교도는 불교는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며 불교의 목적은 모든 생물을 생명의 비참에서 구제하여 평화의 기쁨에 도달하게 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힌두교도는 창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바로 주님이고 하나님은 진리요 양심이요 기쁨이라고 말했다. 이슬람교도는 이슬람 종교도 생명은 전능한 신인 알라의 창조이며 선물임을 가르친다고 지적했다. 유대교 랍비는 모든 인류의 가치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인정하는 점에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함께 뭉쳐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타 종교들과의 대화는 총회의 여러 모임들 가운데서 활발히 진행되었다.
27일(수) 오전 11시 “생명에 대한 기독교와 모슬렘의 이해”라는 주제로 모인 그룹 발표 및 토론 시간에 “타 종교와의 대화분과” 위원장인 물더는 “불신자들이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그런 하나님은 매력이 없는 하나님이 되고 말 것이다.” 라고 지적하며 범 종교주의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세계 모슬렘대회”의 총무인 카한은 “기독교와 모슬렘이 다 같이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종교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라고 가르치는 성육신 교리는 모슬렘의 교리와 뚜렷하게 다르다”라고 지적하면서 기독교의 정통 신앙을 부인했다. 27일 오후 2시 30분 “타 종교 신앙인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모인 그룹 발표 및 토론 시간에는 “타 종교와의 대화분과” 임원들이 “대화는 복음전파나 개종의 목적 없이 내 자신을 이웃에게 드러내놓고 내 자신을 이웃과 관련시키는 행위라고 주장했는데 상당수의 복음주의자들의 질문과 도전이 있었다. 그러나 임원들은 여전히 어떤 사람을 내가 전도하고 내가 개종한다는 자체가 잘못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27일(수) 오전 9시 전체회의 시간에는 “죽음을 대면하고 극복하는 생명”이란 소주제로 6개의 페이퍼가 발표되었는데 페이퍼들이 다룬 문제들은 거의 전부가 독재적 군정 및 전쟁에 의한 육체적 죽음의 비극이었다. 본질적 죽음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호주의 콜디코트 박사는 핵전쟁의 참상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에베르토바 여사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현대의 원수는 군국주의의 세력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박형규 목사는 자신이 참여한 1973년 부활절 데모 사건을 기술하며 그 당시의 ‘잔인한 죽음의 세력’인 군사독재 세력을 극복하기 위해 데모행진에 참여했다고 진술했다. 30일(토) 오전 9시 전체회의 시간에는 태평양 섬 주민들이 그들이 당면한 죽음의 문제들을 발표했는데 태평양 섬들이 핵폭발의 실험장이 되고 나서부터 그곳 주민들은 말할 수 없는 신체적, 심리적 및 경제적 피해를 입어왔다고 구체적인 비참한 실례들을 들어가며 고발했다. 필자는 그 고발의 소리들을 들으면서 그 고발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공감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WCC가 지향하는 방향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인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이고 경제적이고 지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필자는 밴쿠버 WCC 총회는 “땅의 신학”을 주창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와 같은 정당한 인도주의적 고발이 결국 그룹 다이내믹의 수단을 통해 하나님과 성경을 배제하는 ‘땅의 신학’을 강화해 나아가는데 사용되고 있음을 목격할 때 새로운 도전을 받으며 의분과 탄식을 아울러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밴쿠버 총회에 참석한 인사들 중에는 복음주의자들도 다소 섞여 있었다. 따라서 전체회의나 소그룹 모임에서 복음주의적 발언이 때때로 들리기도 했다. 밴쿠버에 참석한 복음주의지도자들 30여명이 몇 번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눈 일이 있었다. 그런데 글래서 교수, 코스타스 교수, 스카트 교수 등은 비교적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고 바이어하우스 교수, 존스톤 교수, 영불러드 교수, 쿠즈믹 박사, 필자 등은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8월 6일과 8일 두 종류의 “복음주의자들의 공개편지”와 “복음주의자들의 평가”라는 문서가 발표되었다. 씁쓸한 일이었다. 지면상 관계로 밴쿠버 총회가 마지막 3일 동안 채택한 세계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와 8개의 이슈페이퍼의 내용을 여기 옮기지 못한다. 밴쿠버 총회는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 군사 경제 인종적인 불의를 바로 고발하며 지적했고, 타 종교와의 대화의 필요성을 바로 선양하며 지적했으나 “땅의 신학”을 주창하는 방향과 범 종교주의 및 보편주의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졌다고 하겠다.
9. 제7차 캔버라 WCC 총회의 선교신학적 입장과 노선
1991년 2월 7-20일 호주 캔버라에서 316개 회원 교회들로부터 온 947명의 대표들과 다수의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 제7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를 개최했다. “오소서, 성령이여-만물을 새롭게 하소서”(Come, Holy Spirit-Renew the Whole Creation)라는 주제로 모인 제7차 캔버라 WCC 총회가 성령을 주제로 다루되 범 종교주의적인 입장에서 다룬 것이 특징이었다. 주제 강연자로 나선 한국의 정현경 교수는 성령의 오심을 몸의 움직임과 춤으로 표현하려고 했고, 성령은 한 맺혀 죽은 인간들의 영들과 연대하여 나타난다고 말하면서 한 맺혀 죽은 영들을 부르는 ‘초혼’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정교수는 무속적 정령신앙을 따라서 불의하게 죽임을 당해 한 맺힌 수많은 영들과 심지어는 삼림의 영과 땅과 공기와 물의 영까지를 불렀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착취당한 애굽의 흑인 노예 하갈의 영이여 오소서. 밧세바에 대한 다윗 왕의 탐욕 때문에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한 군인 우리아의 영이여 오소서. 입다의 딸의 영이여 오소서. 예수 탄생 시 죽임을 당한 어린 아기들의 영이여 오소서. 잔 다르크의 영, 십자군 전쟁 때 죽은 백성들의 영, 식민시대 희생당한 원주민들의 영, 가스실에서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영, 원자폭탄에 의해 죽임을 당한 히로시마의 영, 일본 군대에게 끌려간 한국 여인들의 영, 월남인들의 영, 간디의 영, 마틴 루터 킹의 영, 말콤 엑스의 영, 로메로의 영, 체르노빌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 광주의 영, 천안문의 영들이여 오소서. 인간의 탐욕으로 죽어가고 있는 아마존 삼림의 영, 땅의 영, 공기의 영, 물의 영, 바다 생물의 영이여 오소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고문을 받아 죽임을 당한 우리의 형제 예수 해방자의 영이여 오소서” 정현경 교수는 불의하게 죽임을 당한 한 맺힌 영들이 지금 회의장에 임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교수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 회의장에 임재하고 있는 영들은 성령의 형상들이다. 성령은 이와 같은 한 맺힌 영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이 영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못하면 우리는 성령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정교수는 성령을 창조의 영으로 보지도 않았고 피조 세계와 구분하지도 않았다. 우주 안에 내재하는 하나의 생기로 보았는데 이는 창조주 삼위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부인한 것이었다. 필자는 그것을 민중 신학과 무당신앙을 접목한 것이라고 평했는데 변선환 교수는 후에 나에게 “정현경은 무당이야” 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성령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솔직하게 고백했는데 그것은 자기의 신학훈련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 자기의 깊은 내장의 느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관음보살의 형상에서 왔다고 고백했다. “관음은 자비와 지혜의 여신으로 동아시아 여성들이 숭배하는 신이다.” 정교수는 이어서 땅의 신학을 주창했다. “우리가 죽어가는 이 지구에서 살아남기 원한다면 세 가지 가장 긴급한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첫째는 인간중심주의에서 자연생명체중심주의로, 둘째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상호 연관적 사고로, 셋째는 죽음의 문화로부터 생명의 문화로의 전환이다.” “땅은 죽은 것이 아니다. 땅은 살아있다. 창조적 에네르기를 가지고 살아있는 것이다. 땅은 하나님이 숨 쉬는 곳이고 하나님이 융합되어 있는 곳이다.” 이와 비슷한 땅의 신학을 이미 밴쿠버 총회가 주창했는데 정현경 교수는 범종교주의적 땅의 신학을 무당신앙의 옷을 입혀서 내세운 것이라고 하겠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캔버라 총회에 참석한 4천여 명의 세계교회 대표들이 한 젊은 여자 교수의 강연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캔버라 총회에서 또 하나의 주제 강연을 한 사람은 크리스터 스텐달 교수였는데, 하버드 대학의 신약학 교수를 역임한 사람으로 WCC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이었다. 그는 성령을 인격을 가진 분이라기보다는 온 우주에 생병을 부여하는 하나의 에너지로 보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성령을 어떻게 경험하느냐고 질문한다면 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에너지로 경험한다는 것이다. 오, 오소서. 성령 에너지여 온 우주를 새롭게 하소서.” “성령을 아버지나 남성으로 묘사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는 성령에 대해서 말할 때 그것(It) 이라고 부르겠다.” 스텐달 교수는 삼위일체의 교리와 아울러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했다. 스텐달 교수는 성령이 모든 피조물을 새롭게 하는 에너지이며 그리고 온 인류와 종교를 하나로 묶는 일을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다른 신앙들의 통찰력과 미와 진리들을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과 경건이 약화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기독교의 진리와 모슬렘의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현경 교수 바로 전에 주제 강연을 한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의 희랍 정교회 주교 파르테니오스였는데 파르테니오스 주교는, 게오르게스 테트시스가 대독한 주제 강연에서 성령은 신비인데 성 삼위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는 성 삼위 하나님의 한 분이라는 정통적인 입장을 강조했다. “성 삼위 하나님과 분리된 성령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안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을 분리하지 않는다. 우리의 하나님은 한 분이다. 우리의 신조가 말하는 대로 성부 성자 성령은 한 분이시고 분리되지 않고 분리될 수 없고 불변하신다.”
10. 1998년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소망 중에 기뻐하라”(Turn to God-Rejoice in Hope)는 주제로 모인 제8차 하라레 WCC 총회와 2006년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은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세계 변혁”(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이란 주제로 모인 제9차 포르토 알레그레 WCC 총회에 대한 평가는 시간상 지면상 관계로 생략한다.
11. 위에서 살펴 본 “세계교회협의회의 선교신학적 입장과 노선에 대한 고찰과 평가”를 요약한다.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조직된 WCC는 1910년 에딘버러에서 개최되었던 “세계선교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와 1921년 모홍크에서 개최되었던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의 ‘선교적 전통’을 이어받아 조직되었다. 암스테르담 총회의 참석자들은 전쟁의 쓰라림과 현대문명의 부조화를 통감하면서 세계교회들이 새로운 교제와 협력을 수립하여 세계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간단한 “협의회의 근거”(Basis of the Council)를 채택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모임이다.” 제3차 뉴델리 총회는 다소 보충된 “협의회의 근거”를 채택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고백하며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 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공동 소명을 함께 수행해 나아감을 힘쓰는 교회들의 모임이다.” WCC 총회가 정식으로 채택한 “협의회의 근거”는 성경적이고 복음적이었다.
그런데 WCC 총회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선교적 관심”을 지나치게 정치, 사회, 군사, 환경, 인권 문제에 기울이게 되었고 범종교주의적인 대화와 포용의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Missio Dei’ 의 개념을 채택하며 선교를 역사 안에서 일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활동(Missio Dei)에 참여하는 모든 일로 간주하게 되었고 제4차 웁살라 WCC 총회(1968년)에서는 ‘인간화’(Humanization)를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게 되었다. WCC 총무 비셔트 후프트는 이미 제3차 뉴델리 총회(1961년)때 그와 같은 범종교주의적인 경향과 정치 사회 군사적인 경향에 대한 비판이 정당함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신학적 상대주의 또는 심지어 혼합주의로 이끌고 갈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WCC 회원교회의 몇몇 인사들은 신학적 무관심주의 또는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에큐메니즘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아마 보수주의자들이 일으키는 타당한 질문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사회적 및 국제적 문제에 너무 많은 정력을 기울이고 선교와 복음전파의 우선적 과업을 등한히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아주 적절한 질문이다.” 그러나 제5차 나이로비 총회(1975년) 때 WCC 총무 필립 포터는 구조 악 제거를 통한 사회구원과 인간회복 그리고 대화를 통한 인간 가족의 형성과 지상의 평화왕국 건설을 강조했다. 포터는 인간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문제들을 분석하면서 환경의 오염문제, 기아와 기근의 문제, 인종차별의 문제, 인구팽창의 문제, 전쟁무기 증가의 문제 등의 사회 구조악의 문제와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지적했다. 복음주의자들이 지적하지 못하는 중요한 문제들을 지적한 것은 올바른 지적이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현대인의 영적 기아상태에 대한 언급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하겠다. 그리고 WCC 중앙위원회 의장 M. M 토마스는 소위 “그리스도 중심적 혼합주의”(Christ centered syncretism)를 내세움으로 혼합종교의 정당성을 인정하려고까지 했다.
제6차 밴쿠버 WCC 총회(1983년)는 보다 급진적인 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주제 강연자 알란 보삭의 인종차별주의와 독재 군국주의의 불의를 고발하는 정치 강연은 청중의 열광적인 기립 박수를 7번이나 받았고, “타종교와의 대화분과” 위원장인 물더는 “불신자들이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그런 하나님은 매력이 없는 하나님이 되고 말 것이다”라고 지적하며 범종교주의적, 휴머니즘적 및 보편주의적 신학을 여지없이 노출시켰다. 결국 밴쿠버 WCC 총회에 참석해서 총회의 진행 과정을 세밀하게 살피고 나서 필자는 밴쿠버 총회가 “땅의 신학”을 주창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제7차 캔버라 WCC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주제 강연자의 한 사람인 희랍 정교회 주교 파르테니오스는 성령은 신비인데 성 삼위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는 성 삼위 하나님의 한 분이라는 정통적인 입장을 강조했지만, 주제 강연자의 다른 한 사람인 정현경 교수는 성령의 오심을 몸의 움직임과 춤으로 표현하려고 했고 성령은 한 맺혀 죽은 인간들의 영들과 연대하여 나타난다고 말하면서 한 맺혀 죽은 영들을 부르는 ‘초혼’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정교수는 무속적 정령신앙을 따라서 불의하게 죽임을 당해 한 맺힌 수많은 영들과 심지어는 삼림의 영과 땅과 공기와 물의 영까지를 불렀다. 정현경 교수는 범종교주의적 땅의 신학을 무당신앙의 옷을 입혀서 내세운 것이라고 하겠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캔버라 총회에 참석한 4천여 명의 세계교회 대표들이 한 젊은 여자 교수의 강연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그것을 민중 신학과 무당신앙을 접목한 것이라고 평했는데 변선환 교수는 후에 나에게 “정현경은 무당이야” 라고 말했다.
그러면 여기서 WCC에 대한 세계 복음주의자들의 입장과 자세를 살펴본다. 일부 세계적인 복음주의자들은 WCC 총회에 참석해서 WCC의 급진적인 방향을 비판도 하고 그들의 복음주의적 입장을 피력했다. 제4차 웁살라 총회에 정회원으로 참석한 피터 바이어하우스, 존 스토트, 래리 크리스텐슨, 칼로스 오르티쯔 등 복음주의자들은 웁살라 총회의 입장과 노선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취하며 그들의 복음주의적 입장을 피력했다. 제6차 밴쿠버 총회에 참석한 복음주의지도자들 30여명은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눈 일이 있었는데 글래서, 코스타스, 스카트 교수 등은 비교적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고 바이어하우스, 존스톤, 영불러드, 쿠즈믹, 필자 등은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제7차 캔버라 총회에 참석한 조지 오스틴, 짐 휴스톤, 피터 쿠즈믹 등 30여명은 “캔버라에서의 복음주의적 관점”이란 글을 발표했다. “우리는 우리가 이번 총회에서 받은 도전과 우리가 배운 교훈과 관찰을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우리가 대화에 참여해서 모든 분야에 구체적으로 공헌하도록 우리를 환영해주었고 우리들의 의견을 경청해주었다. 이번 총회에 참석한 우리들의 경험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성경 계시에 뿌리를 두면서 현대적인 문제들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 따라서 하나님이고 구주라고 고백하며 성령의 인격과 사역을 바로 고백하는 고백과 WCC의 정당한 관심사들과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우리는 물론 공의, 평화, 피조 세계의 보존, 복음의 상황화, 종교적 다원주의 등에 대한 관심에 공감한다. 이와 같은 신학의 결함이 WCC 사역에 해를 끼칠 뿐 아니라 WCC 회원 교회들 간에 갈등을 조장할 것이다.”
제8차 하라레 WCC 총회에 참석한 복음주의자들도 “복음주의 참석자들의 응답” 이란 글을 발표했고 “세계복음주의 협의회”(World Evangelical Fellowship)는 다음과 같은 복음주의적 입장이 담긴 공식적인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나는 WEF의 인사를 전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즘과의 관계의 두 면을 상기하기를 바란다. 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복음주의자들은 WCC와 관련된 에큐메니칼 모임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는 복음주의자들이 WCC 관련 단체의 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총회에 참석한 대표들 중 12명 이상은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자처한다. 그러나 양자 간의 분명한 차이점은 존재한다. 차이와 긴장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선교에 대한 이해와 접근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복음주의자들은 총체적이고 전인적인(holistic) 선교에 헌신한다. 선교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중심적 관심은 개종에 대한 부름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주님에게로의 개종에 대한 부름이다.”( WEF George Vandervelde)
제9차 포르토 알레그레 WCC 총회에는 “세계복음주의 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의 국제 대표인 터니 클리프가 다음과 같은 감사의 인사와 함께 WCC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내용의 입장을 발표했다. “WEA는 WCC가 우리에게 제9차 포르토 알레그레 WCC 총회에 참석해서 진행과정을 관찰할 수 있도록 초청해준데 대해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이 총회가 제기한 많은 주제들에 대해 공감하는데 특히 세계적인 빈곤, 에이즈, 불의, 아동 폭력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참여는 우리들의 총체적인 선교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온다. 「총체적이고 전인적인 선교란 복음을 선포하고 나타내는 것인데, 그것은 전도와 사회 참여를 따로따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개와 사랑을 선포하는 복음전도가 사회참여를 가져오고 사회 참여가 복음전도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정의와 칭의, 예배와 정치적 행동,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개인적인 개종과 구조적인 변화는 함께 속한다.」(미가선언). 여기 포르토 알레그레 WCC 총회에 많은 중류의 복음주의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들이 총회의 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마치게 되기를 바란다. 고통과 증오와 투쟁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변혁적인 은혜 안에서만 그 해결책이 있다는 것이다.”
12. 2013년 제10차 부산 WCC 총회에 대한 입장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와 지도자들이 세계복음주의 교회와 지도자들이 취한 태도와 자세를 취하면 좋을 것이다. 일부 세계복음주의 교회와 지도자들이 WCC 총회에 참석해서 WCC의 급진적인 입장을 비판하면서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나타내 보인 것처럼, 한국의 일부 복음주의 교회와 지도자들도 부산 WCC 총회에 참석하여 WCC의 급진적인 입장을 비판하면서 복음주의적인 입장을 나타내 보이면 될 것이다. 그리고 로잔 언약(1974년)이 세계 복음주의 교회들이 그 동안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며 사회 참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참회(penitence)했던 것처럼,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사회 정치 참여를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타종교에 대한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지 못했다면 그런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뉘우치며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의 일부 복음주의적인 교회가 부산 WCC 총회 개최에 대해서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나타내 보일 때 한국교회 안에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수도 있고, 그리고 그 결과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불신자들에게 세력 다툼하는 강한 모습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복음주의적인 입장에 서 있는 통합교단의 김삼환 목사님, 순복음교단의 조용기 목사님, 기장 교단의 박종화 목사님 등이 앞장서서 유치한 부산 WCC 총회를 부정하며 반대하는 것은 예의에도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한경직 목사님이나 정진경 목사님이 살아계시다면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 동안 누구보다도 WCC의 선교신학적인 입장을 강하게 비판했고, 강원용 목사님, 박종화 목사님, 조용기 목사님 등의 입장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시간이 감에 따라 강원용 목사님, 조용기 목사님, 박종화 목사님을 인정하고 존경하며 배우게 되었고, WCC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천주교와 불교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필자의 생각이 지나치다면 바로 가르쳐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누구나 죽을 때까지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란다.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극치를 나타내 보여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몸에 지니고 모두를 품고 모두를 녹일 수 있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한다.
출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자료실
출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자료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