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K 신앙과 직제위원회 주최 ‘에큐메니컬 신학에 대한 대토론회’ 발제문
-김상복(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 세계복음주의연맹(WEA) 회장)
작년 WCC가 2013년 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키로 결정했다는 뉴스가 들리자 한국교회는 열렬한 환영과 강력한 반대가 일어나면서 상당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WCC 총회 한국 유치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한국교회가 어느 정도 화합의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어서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기도해 오던 사람들은 희망과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WCC가 논쟁의 초점이 된 것은 작년 성결교 총회 때였다. 기독교성결교단의 NCCK 가입에 대한 교단 내의 찬성과 반대 논쟁에서 점화 되었다. 격렬한 찬반 논의 끝에 성결교단은 앞으로 5년 동안 NCCK 가입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 중에서 NCCK 가입을 반대한 측은 WCC 와 NCCK의 신학과 정치와 선교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며 WCC와 NCCK가 추구하는 선교가 성결교가 추구하는 선교와는 다르고 종교다원주의적 Mission Dei와 좌파적 이데올로기를 반대의 이유로 내세웠다(옥일환, 남미복음신문, 2009년 6월 27일; 박명수, 아이굿뉴스, 2009년 5월 19일). 찬성 측에서는 반대 의견은 WCC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했으며 WCC와 NCCK를 통해 성결교단의 국제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결국 반대 입장이 우세해서 NCCK 가입은 무산되고 말았다. 반세기 전에도 기성과 예성의 분열은 WCC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이었다.
WCC 대회의 한국유치가 결정되자 NCC측은 한국의 G20회의 유치와 비교하면서 “기독교 올림픽 WCC 총회유치 성공”이라 축하했다. 이에 반해 WCC 대회 유치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 장로교 합동측, 고려측, 고신측, 합신측, 개혁측과 같은 교단에서는 WCC 대회 부산 유치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이유를 내놓았다. 이유는 성결교의 이유보다 더 구체적이었다. “저개발국가 혁명 옹호, 공산권 교회들과 공산주의주자들의 WCC 대거 가입, 인종차별 투쟁 사업에 무기 지원, 로마 교황청과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의 회의 참석, 종교다원주의 인정, 집회 장소에 내건 캐나다 원주민들의 우상, 하갈을 착취당한 인물로 묘사한 기도문, 교수 연사의 초혼제와 풍물 발표, 타종교와의 일치와 대화, 궁극적으로 로마가톨릭과 이방 종교마저도 하나가 되는 것” 등을 들어 반대를 하고 있다(서정배, Life, 2009년 11월 4일). 이 세미나 이전에도 몇 번의 세미나를 통해 WCC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 했으나 전혀 넓혀지지 않고 현재까지는 견해의 차이가 분명함을 보여주고 있다.
WCC와 한국교회의 악연
50년 전에 한국 최대의 교단인 장로교가 WCC 때문에 통합 측과 합동 측으로 분열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는데, 그 상처가 거의 치유되어가는 도중에 이제 또 다시 WCC가 이슈가 되어 양측은 한국교회에 갈등을 재현하게 되었다. 찬성과 반대의 옳고 그름을 떠나 WCC는 어찌했든 한국교회를 분열시키는 악연을 갖고 있는 것 같다. 50년 전 분열 이후 양측은 분열의 당사자들이 거의 다 세상을 떠나고 두 세대를 지나가면서 지난 날 상호간 받았던 아픔들을 덮고 거의 치유와 회복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한국교회의 세 가지 입장
WCC 총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반응은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적극적 찬성이다. 주로 NCCK 가맹교단들이다. NCCK는 WCC 총무 직을 얻지는 못했으나 WCC 총회 한국유치에는 성공했다. NCCK 측은 50년 전 치렀던 전쟁에서 드디어 승리한 개선장군의 기분으로 크게 축하를 했다.
둘째, 적극적 반대이다. 합동 측과 함께 하는 교단들의 느낌은 정반대였다. 한국교회를 분열시킨 WCC의 지난 반세기의 발자취는 신앙적 혼란을 조성하였을 뿐 달라진 것이 없는데 이제 와서 승자처럼 돌아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듯하다. NCCK측은 정부와 국회까지 동원하여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원했으나 오히려 결과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셋째, WCC 한국 대회를 기회로 삼아 WCC가 비판 받아온 부정적인 면들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한국교회의 열정적 신앙과 영성으로 도와주자는 견해이다. WCC 안에도 건전한 복음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로잔언약을 초안한 영국의 존 스토트, 독일의 선교학자 피터 바이어하우스, 미국의 신학자 아더 글라스, 영블라드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WCC 안에는 한국교회 보다 더 보수적인 희랍정교회도 들어있다. 신학적인 문제가 보이면 그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WCC의 교회론을 만들던 에반스톤 총회에서 교회론 문서에 희랍정교회는 서명을 거부했었다. WCC 안에는 다양한 신학이 함께 있다.
통합 측 장로교 전국장로연합회 선언서
작년 9월 예장 통합 전국장로연합회가 NCCK 신학에 이의를 제기하며 “기독교 정체성 무너뜨리는 행태 엄중히 경고”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신앙 및 신학방향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란 제목으로 신앙선언을 발표했다. 전장련은 이 선언에서 “NCCK의 신학과 신앙입장을 차제에 밝히고 성경을 벗어난 신앙과 신학은 성경에로 다시 돌아올 것을 우리는 간곡히 촉구하면서 성경적 기독교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그 어떤 행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이번 선언은 “우리는 최근 NCCK에서 홈페이지에 게재한 ‘생명의 강 살리기 종교여성 공동기도문’(구미정), ‘한국목회자 1000인 시국 선언’(2009.6.18) 등을 접하고, 기독교 정통 신앙을 고백해 온 각 교회의 지도자들로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공동기도문’과 ‘시국 선언문’에서 기독교 신앙의 근본 진리를 왜곡하고, 한국기독교를 혼합주의의 한 종파로 전락시키며, 교계 지도자들을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들로 폄하하는 글귀들을 봤다. NCCK의 에큐메니칼(Ecumenical) 정신을 존중하고 협력해 온 전국장로회연합회 소속 교회의 지도자들은 NCCK의 신앙 및 신학적 방향과 사업노선에 대해 심한 염려와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세계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에큐메니칼 신학’에서 21세기 ‘종교다원주의신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선상에서, NCCK가 간과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진리를 다시금 대천명하여, 왜곡된 ‘에큐메니칼 정신’을 수정하고, 다가오는 ‘종교다원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한다. 우리는 WCC의 창립정신에 공감하며 교회연합운동에 적극 지지해 왔으나, 최근 WCC와 NCCK의 일부에서 제기된 혼합주의 내지 종교다원주의적 신학편향과 그들의 신앙실천은 성경과 우리의 신앙입장과 배치되는 것임으로 우리는 이들의 신학과 신앙적 입장에 크게 우려를 표명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한편 연합회가 지적한 공동기도문과 시국 선언문의 글귀 내용은 “나무아비타불, 아멘” “하늘에 계신 하나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와 소태산 대종사님” “죽음의 굿판 대신…살림의 굿판이 벌어지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이명박 정부와 함께 기독교는(도) 참으로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어가는 작금의 현실은 너무 부끄럽고 통탄스럽습니다” “부엉이 바위에 묻어 있는 핏자국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진 예수의 죽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라는 하늘의 명령 앞에서 한 없이 게으르고 무능했던 우리의 죄악이 너무 큽니다” 등이다. 장로교 통합 측 NCCK 회원교단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장로교연합회가 이 정도로 염려를 하는데 이런 것을 지적하는 타 교단들과 연합회를 단지 “무지와 오해”라고 변명함으로서 쉽게 제쳐버릴 수 없다. NCCK는 문제가 되고 나서야 변명을 하려 했다. 한국교회를 잘 아는 WCC와 NCC는 좀 더 중앙으로 옮겨와야 한다. WCC총회 유치에 대한 거부감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NCCK교단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침묵하거나 그저 쉽게 변명하거나 간단하게 무시해서 될 일이 아니다.
WCC 총회에 대한 대처 방안
첫째로 WCC 총회가 이미 결정되었고 전 세계로부터 수천 명의 최고 지도자들이 한국을 찾아오는데 한국인의 긍지를 위해서라도 최대의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그 분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국교회의 내적인 갈등을 세계 앞에 내걸지 말아야 한다. WCC총회 유치를 반대하면 결정되기 전에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어야 한다. 반대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한국 유치를 하지 않게 했어야 한다. 그 때에는 아무런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가 결정이 되고 발표된 후에야 반발하다 보니 서로 간에 곤란하게 되었다.
WCC 총회의 찬성자나 반대자를 막론하고 한국교회는 약간의 차이들이 있으나 교단 간 큰 차이 없이 절대 다수가 전통적, 성경적, 복음주의적 신앙과 신학과 영성을 유지하고 있다. WCC 총회 유치만 아니었더라면 우리들 사이에는 얼마 전까지 비교적 원만한 교단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처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120여 년 전에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드린 피선교국가인 한국이 복음주의적 신앙과 신학 때문에 오늘의 교회성장을 했고 오늘 제2의 선교국가가 되어 선교에 있어서 세계교회의 부러움이 되어 있다. 반대 측도 이미 취소될 수 없는 대회이기 때문에 국제적 손님들을 불편 없이 회의를 잘 하고 가도록 예의를 갖추는 것이 옳다.
둘째, 그러나 한국 NCC 교단들은 한국의 좋은 신앙과 영성을 대표할 분들을 선정하여 WCC총회 프로그램 위원회에 파견하여 캔버라 대회 때에 복음주의자들이 강하게 반발했던 원주민의 우상 내걸기나 무당의 초혼식 같은 순서가 한국에 와서는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교단을 막론하고 신앙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한국교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혼합주의적 신학의 모습을 자극적으로 보일 때는 WCC가 한 번 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한국교회에 심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셋째, 이번 WCC 한국대회를 계기로 한국교회의 열정적 신앙과 영성으로 총회의 참석자들이 깊은 감동을 받고 가도록 방법을 연구하여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란다. WCC 창설 이래 많은 논쟁을 일으켜 왔던 신학적, 사회적, 선교적 방향을 좀 더 건전한 방향으로 쇄신하는데 한국교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WCC가 비판을 받는 것은 비판자들의 단순한 무지와 오해 때문이라고 그저 무시하거나 빈정대지 말고 경청하고 겸손하게 자신을 살피는 기회를 만들면 서로 간에 가까워질 수 있다. 불 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이유가 없다. 일일이 다 나열할 필요는 없으나 오랜 세월 동안 복음주의자들이 용납하기 어려운 일들이 창립 이래 많이 있었다. 특히 1960-70년대 공산주의와 민주진영, 자유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신학,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갈등 등이 극심했던 시대, 심지어 死神의 신학, 세속 신학, 혁명적 해방 신학 등이 난무했던 시대에 과격한 행동들이 있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공급해 주는 일들이 있었다. 폭력을 공식적으로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말과 21세기로 들어오면서 국제적,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과격한 신학운동은 현재 거의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NCC계의 전통적 교단들이 계속 약화되고 성도들이 이탈하는 데는 목회자들의 자유주의적 경향과 이에 대한 성도들의 불만이 크게 작용하였다. 평신도들이 목회자들과 신학자들보다 훨씬 더 성경적이고 복음적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로 인해 자유주의적 교회들은 힘을 잃고 있고 복음주의적 교회들은 성장을 계속해 왔다. 미국 NCC 전도국은 ”Why Conservative Churches Growth" (Morton Smith)라는 미국 교회의 성장과 쇠태에 대한 연구서를 출판하며 NCC 회원 교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적도 있었다.
WCC에 대한 무지와 오해
WCC와 NCCK가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협력을 얻으려면 한국뿐만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지적과 비판을 받아온 신학적, 목회적, 선교적 좌경 역사를 어느 정도라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적 정체성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 계속 반대자들에게 무지와 오해와 왜곡만으로 덮어씌우려고 하면 WCC 총회를 계기로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더욱 더 요원하게 될 것이다. 요원한 정도가 아니고 잘 가던 한국교회를 흔들어 50년 전 불행을 재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WCC에 대한 심각한 염려와 회의를 표현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WCC를 지지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보다 어느 면에서나 무지하거나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도 같은 글을 읽고 보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는 WCC에게 계속 비판을 가해 온 것이다.
WCC 총회 한국 유치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한국교회는 지금과 같은 갈등은 없었다. 비교적 조용하던 한국교회가 결정 이후 화해와 연합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과 갈등만 증폭될 것이기 때문이다. WCC에게는 이번 총회가 절호의 기회이다. 온건한 전통적 기독교의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한국교회에 분명히 보여줌으로서 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진보 측은 우향우를 하고 보수 측은 좌향좌 해서 중간에서 열린 진보와 열린 보수가 만나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화해롭게 세워가야 할 것이다.
교회의 하나 됨과 교회의 분열
신앙과 직제의 문서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신정통주의적 색채가 있으나 거의 성경적이고 건전한 문서들이다. 특히 교회론에서는 성경의 내용을 철저하게 사용하여 보수주의자들이 만든 문서처럼 보인다. WCC의 교회론을 가장 잘 표현한 문서는 1954년 에반스톤 총회 당시 “교회와 직제” 위원회에서 발표한 문서인 “Our Oneness in Christ and Our Disunity as Churches"이다. 그 이후의 문서들은 이 문서의 해설이나 부분적 반복에 불과하다.
이 문서에서 “비가시적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분리할 수 없는 단일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이것을 근거로 WCC 에큐메니칼 운동은 반세기 이상 꾸준히 하나인 비가시적 교회를 하나의 가시적 교회 조직으로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이것이 실현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와 개신교회의 모든 교단들이 다 하나의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가시적 교회는 이미 하나이다. 이 땅의 순례 기간 동안에는 조직상 다양한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인간의 한계요 차이이다. 바나바와 바울의 2차 선교 때 마가 때문에 두 팀이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는 나누어진 적이 없다(고전 1:13),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는 뗄 수 없는 하나 됨이 영원히 있다. 그리스도만이 오로지 주님이시고 구원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 분에 속해 있다. 그 분만이 교회 일치의 중심이다”라고 한 것은 정확하다 (엡 1:10, 22; 요한 14:20; 17:4 f.; 고전 6:16 f.).
신앙과 직제 제1장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하나 됨과 교회로서 우리의 분리됨”이라는 문서는 WCC 교회론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인 것처럼 보인다. 그 골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하나 됨은 교회로서의 하나 됨을 요구 한다” (Our Oneness in Christ demands our oneness as churches)는 것이다. 이 문서에 그리스정교회는 동의하지 않았고 토의 중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과 조직교회로서 하나가 되어야 함을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다. 교회 안에도 사실상 두 가지 기독교인들이 있다. 거듭난 기독교인과 거듭나지 않은 기독교인이 있다. 이들은 교회 안에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하나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하나 됨, 하나 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 신약에서 교회의 일치는 사회학적 일치가 아니고 예수님과 분리할 수 없는 영적인 하나 됨을 의미 한다 (고전 Cor. 12:12; 요 15:1ff). 교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하나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표는 하나의 가시적 교회를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의 참된 영적인 비가시적 교회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모든 참된 기독교인들은 비가시적 교회에 모두 하나로 속했다. 이것은 교단이나 교파나 지역교회가 제거할 수 없는 영원한 하나 됨이다.
WCC는 세계적인 하나의 교회 설립 추구
“우리는 WCC 안에서 함께 모여 우리가 ‘교회로서 하나 되지 못함’(our "disunity as churches")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이 하나 됨은 단순히 감상적 하나 됨이 아니다.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이 하나 됨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성령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이다.”
WCC의 이 선언은 너무도 성경적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만이 하나이다. 신앙과 불신앙, 기독교인들과 비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아니다. WCC대회에 참석자들 가운데도 믿음에 있어서 하나가 아닌 사람들이 있음을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알 수 있다.
United Evangelical Action 지의 편집자인 James DeForest Murch는 1954년 10월 1일 보도자료 중에 Evanston대회 참석자 중 미주리 출신 한 분의 말을 실었다. “우리는 ‘세상의 희망, 그리스도’라는 주제를 선택하고 재림에 관한 논쟁을 하고 있다. 미주리 주에서 온 나의 견해는, 나는 처녀 탄생에 대해 의문이 많다. 나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재림 사건“은 완전히 바보 같은 소리이다. 어떻게 지성적 솔직함을 가진 한 인간이 그런 난센스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가?” WCC 총회 참석자이지만 이 사람은 처녀 탄생과 육체적 부활과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도 가룟 유다와 나머지 제자들 간에도 갈등이 있었고 조직적으로는 다 예수의 제자 그룹에 들어 있었으나 하나가 아니었다(눅 22:24 이하, 막 10:35). 바울과 바나바도 마가 때문에 두 팀으로 선교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베드로와 바울도 어떤 이슈에서 하나가 아니어서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적도 있었고 함께 사역을 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였다. 조직적인 기구의 하나 보다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축하하고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는 것이 더 급선무이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기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3, 13).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함께 성장하는 것이고, 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아는 지식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반드시 조직상 하나가 아니더라도 믿음과 지식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일에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각 마디마다 각 지체마다 장로교는 장로교대로, 감리교는 감리교대로, 성결교는 성결교대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 연결하고 상합하는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 기초적인 단계에서부터 다른 교단이나 그룹은 인정하지 않고 외인 시 하는 것을 먼저 회개할 필요가 있다.
WCC는 조직적 일치를 너무 강조하고 집착하고 있다. 예배와 성찬도 교단 간에 차이 없이 서로 인정하고 받아드리면 된다. 사실상 쉬운 것이다. 강단교류를 교단에서 인정한 교단과만이 교류를 한다. 이런 것부터 버려야 한다. 교단의 차이가 있어도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이미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것, 그저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인정하는 것부터 실천해 가면 된다. 할렐루야교회에는 14교단에서 온 34명의 목회자가 있다. 복음주의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 있다. 함께 동역하는데 문제가 없다. 왜 그런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분들은 다 형제요 자매라는 기본적 신념 때문이다.
WCC는 “분리되지 않은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현존한다. 그 분의 생명을 우리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안에 부어주고 계신다” (The "undivided Christ is present among us, pouring his life into us all, in spite of our divisions")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도 사실이다. 비가시적 우주적 교회의 관점에 교단의 차이는 별것 아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가시적 조직의 하나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가시적 조직적 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압력을 모두에게 가하고 있다. 이미 하나임을 쉽게 인정하고 이에 따라 움직이면 큰 문제가 없다.
사실상 다양성은 성령의 은사이다. 조직적, 기구적으로 WCC라는 서클 안에 들어와 있지 않으면 악한 분열의 죄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그 서클 안에도 신앙과 불신앙이 함께 내재하고 있다는 자체가 하나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요 그 자체가 다양성이다. 그 서클 밖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분열의 죄인으로 본다. 안에 들어오면 용납되고 가치가 있지만 밖에 있으면 악하고 분열적이라고 보고 있다. 너무 조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에는 단 한 가지 이단이 있을 뿐이다. 분열의 이단이다. 잘못된 교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나 관심이나 경고조차도 하지 않는다. 교회를 잘못된 교리에서 보호해야할 필요에는 무관심하다.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그 신앙에 충실해야 한다는 요구도 없다. 그저 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될 따름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미 다 하나가 되어 있다. 다른 교단, 다른 지역, 다른 교회에 속해 있을 뿐이지 그들은 인정하거나 말거나 영원히 뗄 수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이 영원한 하나 됨은 성령의 은사이다. 우리는 하나 된 것을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이미 하나가 되어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직교회로서 하나가 되기 전에 하나된 것은 서로 간에 인정하는 것이 더 급선무이다.
기구적 연합의 시도
에큐메니칼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처음부터 오늘까지 강조하고 나라마다 시도하여 캐나다나 호주처럼 몇 개의 교파들이 합해서 Uniting Church or United Church들이 생겼다. Consultation On Church Union(COCU)가 2002년에 해체되었으나 미국에서도 열 개의 교단을 하나로 합치려고 1962년부터 40년간 노력을 해왔다. 처음에는 네 교단, 후에는 10개의 교단이 하나의 조직된 교회로 만들려고 노력하던 중 Evangelical and Reformed Church와 Congregational Christian Churches를 합해서 The United Church of Christ가 태어났다. 1962년 장로교 총회장이었고 미국 NCC회장이었던 Eugene Carlson Blake 목사가 초대형 개신교 superchurch를 만들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1966년에 댈러스에서 모인 COCU 모임에서 13년 후에 하나의 연합교회를 창설하자고 시간계획마저 발표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1969년에 교단들이 거부해 실패하자 COCU는 다시 "intercommunion"이라는 새로운 안을 만들어 다른 교단의 성례나 사역을 그대로 다 인정하면서 새로운 "catholic, evangelical, and reformed church"를 만들자고 나섰다. 그러나 그것도 PCUSA와 Episcopal Church가 원치 않아 결국은 2002년까지 계속 노력하다가 해체되고 말았다. 그러자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하고 Churches Uniting in Christ(CUIC)를 또 조직해 놓은 상태이다. WCC와 각 나라 NCC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해 하나의 superchurch를 만들려고 해왔다. WCC의 에반스톤 교회론을 보면 조직적으로 하나 된 교회를 추구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uperchurch에 대한 비판이 심해지자 그렇지 않다고 천명하고 있다. 가시적 교회의 분열을 가장 악한 죄로 보고 있다. “Thus, there is to be one church, the divisions are to be healed, and it is to be done in the name of truth.” 하나의 교회가 에큐메니칼 운동의 최종 목표이다.
존 에이 맥카이 박사의 역설적 이중화법
그러나 한편 WCC의 중요한 기구인 IMC 회장 존 에이 맥카이 박사는 1954년 10월호 Theology Today 잡지에 “개혁교회의 증거”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우리는 법적으로 그리스도의 우주적 교회를 위해 헌신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교회가 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 됨을 위해 최대한도의 가시적 표현을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구조는 교회의 핵심은 아니다. 성령은 제가 믿기로는 아직 교회적 구조들을 다 보여주지 않으셨다. 우리는 우리의 전력을 다해 두 가지를 거부해야 한다. 우리가 거부해야 하는 것은 장로교 역사가 말하고 있는 교회적 부족주의로서 교회의 가시적 실체가 부족이나 혈족 또는 종족이나 국가의 정신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동시에 하나의 수퍼교회(a super-Church) 아이디어를 거부해야 한다.” “하나 됨을 최대한도의 가시적 표현을 할 의무”는 있으나 성령께서 “아직은 교회의 구조를 다 보여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역설적 이중화법(dialectical double talk)이다. 한편에는 가시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면서 하나의 superchurch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가시적 하나를 추구하고 있다. “아직은 아무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가시적 일치를 위한 조직적 표현을 제공해 줄 구조의 형태를 구상해 보지 못했다. 우리가 순종의 길을 가면서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었을 때만이 그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 그 동안에는 로마교회화 된 개신교는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superchurch의 어떤 아이디어나 유사한 것도 증오한다.”
맥카이 박사의 논리에는 모순이 있다. 하나의 세계적 교회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하나의 세계교회를 증오한다고 말하고 있다. 애매한 이중성이다. 신앙과 직제의 교회에 관한 문서는 하나님을 향한 헌신으로 결론을 맺는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함께 성장하도록 도우신다.” 어디까지 성장하는가? 가시적 세계교회, 그리스도의 조직된 “기구적” 몸이다. 이 목적을 위해 WCC 지도자들은 말했다. “우리는 변할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하나의 superchurch를 위해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켜 거기에 맞도록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가시적 조직 보다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를 믿은 그 시간부터 다른 지체들과 영원히 하나가 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다른 교단, 다른 교회, 다른 기독교인들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자유롭게, 조직은 하나가 아니더라도 하나인 듯 교제하고 교류하고 협력하며 사랑하여 이미 하나인 것을 상호 간에 느끼도록 가시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조직의 하나보다 더 급선무이다. 최소한도 할 수 있는 것은 유사한 교단들 사이에 하나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기성과 예성이 하나가 되고 개혁주의 장로교단들은 서서히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개혁 측 장로교파들도 하나가 될 수 있다. 감리교는 하나의 조직이고 침례교도 한국 내에서는 남침례교와 성서침례교가 하나가 되면 좋을 것이다. 당장 이러한 일이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제나 서로 간에 강한 형제의식을 갖고 유연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하나된 것을 누리며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건전한 신앙적 영향
WCC 찬성자나 반대자를 막론하고 한국교회는 교단의 차이 없이 절대 다수가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전통적, 성경적, 보수적, 복음주의적 신앙과 신학과 영성을 유지하고 있다. 130년 전에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이 반세기 사이에 제2의 선교국가가 되어 세계복음화에 있어서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번 WCC대회를 계기로 한국교회의 영성과 신앙으로 WCC 총회를 도와 WCC 창설 이래 많은 논란이 되어 왔던 신학적, 사회적, 정치적, 선교적 방향을 좀 더 건전한 방향으로 쇄신하는데 한국교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지난번 호주 캔버라 WCC 대회 때처럼 한국교회가 절대로 받아드릴 수 없는 무당의 초혼식과 같은 혼합주의적 행사를 한국에 와서까지 또 반복한다면 WCC는 한국에서 설 자리를 잃을 수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에큐메니칼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반대자들이 WCC와 NCC에 대한 몰이해, 무지, 오해 때문이라고 계속 주장해 왔고 지금도 주장하며 찬성과 반대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가고 있다.
WCC와 NCCK가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협력을 얻으려면 한국뿐만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지적과 비판을 받아온 신학적, 목회적, 선교적 역사를 어느 정도라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며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적 정체성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 계속 반대자들에게 무지와 오해와 왜곡만으로 덮어씌우려고 하면 WCC 총회를 계기로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요원하게 될 것이다. 요원한 정도가 아니고 잘 가던 한국교회를 흔들어 50년 전 불행을 재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WCC에 대한 심각한 염려와 회의를 표현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WCC를 지지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보다 어느 면에서나 무지하지 않다. 무지해서 지적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는 WCC에게 비판을 가해 온 것이다. 계속 비판자들을 무지와 오해와 왜곡이라는 말로 변명만을 계속 한다면 WCC 총회가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오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한국을 위해서는 나을 것이다. WCC 총회 한국유치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비교적 조용하던 한국교회가 결정 이후 화해와 연합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과 갈등만 증폭될 것이기 때문이다. WCC에게는 이번 총회가 절호의 기회이다. 온건한 전통적 기독교의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한국교회에 분명히 보여줌으로서 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어야 할 것이다.
WCC가 발표한 교회론 자체는 비교적 온건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WCC의 교회론을 가장 잘 표현한 문서는 에반스톤 총회 당시 “교회와 직제” 위원회에서 발표한 문서인 “Our Oneness in Christ and Our Disunity as Churches"이다. 그 이후의 문서들은 이 문서의 해설이나 부분적 반복에 불과하다.
비가시적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분리할 수 없는 단일성을 갖고 있음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비가시적 교회의 단일성을 가시적 교회의 조직적 단일성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실현되는 것은 마지막에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와 개신교회의 모든 교단들이 다 하나의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표는 하나의 가시적 교회를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의 참된 비가시적 교회와 동일시하고 있다. 비가시적 교회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모든 참된 기독교인들이 속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하나 됨으로 교회로서 우리의 하나 되지 못함을 극복하려고 한다.
분리된 형제들이여 돌아오라
로마가톨릭 언론은 에반스톤 총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세밀하게 추적했고 작은 것까지도 코멘트를 실었다. 1954년 9월 10일, 금요일, The Star Herald, 뉴저지 캠든 교구의 공식 신문인데 길리스 신부의 질문을 실었다: “그리스도께서 163개의 교회를 세우셨나?” “대표들이 개회 때부터 바로 서로 물었어야 하는 질문이 있다. ‘왜 우리는 「163개의 교단들」인가? 그리스도께서 163개 교회를 세우셨나? 아니면 그 분이 하나의 교회만을 세우셨나?’ 문제는 간단한다. 해답도 그만큼 간단하다: 처음부터 ‘한 주님, 한 믿음, 한 세례’를 선포한 유일한 교회로 돌아오라.” 로마교회는 결국 로마교회에서 분리한 가장 악한 죄인 개신교의 분리를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종용하며 기다리고 있다. 로마교회는 Unity Octave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운동의 의장은 “일치와 사랑을 신도들에게 제시하며 교회의 회원들은 분리된 형제들(the separated brethren)이 하나의 우리로 돌아오기를 위해 함께 기도한다” (for the return of the separated brethren to the one fold)고 말하고 있다. 이 방향으로 WCC가 가려고 하는 것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1955년 1월 2일자 Ecumenical Press Service에 따르면, WCC의 지도자들이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주도하는 "Octave of Christian Unity"라고 부르는 축제에 같은 주제와 같은 시간에 함께 참여하기로 했고 가톨릭교회의 표현을 그대로 WCC 안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가톨릭교회의 탄원기도(Litany)는 “교회는 하나라야 하고 분열은 치유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 됨은 진리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탄원기도를 WCC가 가톨릭교회와 함께 사용하고 있다(There is to be one church, the divisions are to be healed, and it is to be done in the name of truth). WCC가 가는 길은 환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해하지 못할 만큼 분명한 것은 WCC와 가톨릭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것은 재 연합된 교회이다. 그리고 “모든 크리스챤들”이라 할 때 누구를 말하는지 의심할 것이 없다. Ecumenical Press Service는 구체적으로 말한다. “이번 기도주간을 가톨릭과 개신교의 교회들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키고 있다.” 그 기도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함께 성장하도록 만들어 주시라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성경의 권위와 의미의 불일치
WCC 문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우리 주님 한 분께 우리의 분열 가운데서도 함께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실행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는 아직도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힘들어하고(struggle) 있다.” WCC 안에서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의미에서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의 의미와 권위에 대한 합의가 없다. 그러나 조직에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WCC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고 성경의 가르침을 중요시 여겨 신앙과 직제의 문서에는 성경적 뒷받침을 충분히 하고 있다. 성경의 권위와 의미에서는 합의를 못하면서도 성경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공식적 교회론 문서에서는 WCC가 전통적 기독교 신앙 안에 있으려 함을 볼 수 있다.
결국, 현재 논쟁의 초점은 WCC 총회이다. 이것 때문에 한국교회가 갈등을 하고 있고 논쟁 중에 있다. WCC는 거부해야할 이단인가? 그렇게 볼 수는 없다. 1948년에 발표한 헌장에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부활, 성령, 성경, 교회 등에 대한 성경적인 고백을 하고 있다. WCC는 최대의 관심인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해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나 너무 가시적 조직 교회에 집착한 나머지 비가시적 우주적 교회의 하나 됨을 고백하면서도 그것이 가시적 땅의 교회로 표현되도록 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신학적, 성경적, 선교적, 정치적 과격주의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하나 된 가시적 교회에만 매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 성경중심적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것들을 간과하고 있다. 이번 WCC 총회가 한국에 오는 계기를 통해 한국교회의 좋은 영성과 열정적 신앙의 영향력을 발휘하여 깊은 영적인 영향을 WCC에 끼칠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WCC 총회를 도와주는 것이 가장 좋은 접근으로 여겨진다. 손님을 정중하게 맞아야 한다. 한국을 다녀간 WCC가 한국교회 때문에 감동과 은혜를 받아 과거에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들을 반복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는 과거보다 더 건전하고 복음적이어서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환영 받을 수 있는 운동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출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자료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