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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식 칼럼]세계교회협의회 용공시비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남한에서 정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 가운데 가장 애매한 말은 좌익, 친공 그리고 용공이라는 말이다. 이 말이 다 공산주의에 대한 태도나 관계를 말하는 것인데 공산주의자라는 말 다음으로 공산주의자에 가까운 말은 용공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용공이라는 말도 애매한 말이다.

한국의 보수주의 또는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WCC(세계교회협의회)가 용공단체이므로 기독교회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WCC는 그 구조나 이념이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중 어느 것과도 관련된 것 없이 순수하게 기독교 교회들의 친교와 협력을 성서의 말씀에 일치되게 실천하는 단체이다.

WCC를 그리고 그 단체에 가맹한 교단을 용공이라고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제3차 WCC 총회가 인도 뉴델리에서 열렸을 때 러시아의 정교회를 WCC의 회원교단으로 받은 때부터였다. 즉 공산주의 국가에 있던 교회를 회원으로 받은 것은 WCC가 용공단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정교회는 공산주의 혁명 이후 근 반세기 동안 공산주의의 온갖 박해에 시달리고 외부의 서방교회와의 친교가 완전히 차단되었다가 제2차대전의 종전 후 동서관계의 해빙기가 되어서 그 교회가 WCC에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서방의 교회들은 러시아의 교회와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염려하였을 뿐 조금도 도움이나 위로를 줄 수 없다가 이제 조금 자유롭게 된 그 교회와 형제사랑을 회복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 것이었다. 이것을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지 그들을 영접한 사람들을 용공주의자라고 정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아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북침으로 일어났느냐 아니면 남침으로 일어났느냐의 시비가 국제적으로 일어났고 WCC 회원교단들 사이에도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때 공산중국의 삼자교회(공산국가가 인정한 교회)가 WCC의 회원교단이었는데 그 삼자교회의 대표이자 WCC의 중앙위원의 한 사람이었던 조자진이 6.25 전쟁은 남한의 북침으로 일어났다고 역설하였고 반면에 한국교회의 대표인 강원용 목사는 전쟁의 원인이 남침이었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심각한 대립이 WCC 회원교단들을 곤욕스럽게 만들고 있었을 때 1950년 7월 WCC는 캐나다에서 중앙위원회를 열고 6.25 전쟁을 북한의 남침이라고 선언하였다. WCC 중앙위원회는 반공도 용공도 아닌 중립적 입장에서 진실을 밝힌 것이었으나 아무튼 이 선언으로 인하여 WCC가 용공, 즉 공산주의를 편드는 단체가 아님이 분명해졌다. 그 후 중국 삼자교회는 WCC에서 탈퇴했다.

WCC가 러시아정교회를 회원교단으로 받아들인 것을 용공이라고 말한 것은 정직한 주장이 아니고 다른 이유로 WCC를 부인하면서 곁들여서 용공이라고까지 말한 정치적 사고에서 나온 말이다. WCC 제3차 총회 때 처음으로 가입된 러시아교회의 대표 니코딤(Nikodim) 감독이 총회장에서 말하기를 “국가는 교회에 간여할 필요가 없고 교회는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다”고 하였다. 러시아교회가 공산국가에서 왔다고 해서 공산주의 정권의 대변자도 선전자도 아니다.

지금 남한의 교단들이 진보파나 보수파나 할 것 없이 다 북한 교회를 도와주고 그리고 친교하며 각종 회의도 같이 개최하고 참여한다. 이것을 용공이라고 하여 정죄하는 보수주의 교파나 복음주의 교파라 없다. 공산주의 아래서 박해 받는 북한 교회를 도우며 북한에 선교하고 전도하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WCC를 용공단체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지금의 남한교회는 그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용공교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교회들이 북한교회를 도우면서 북한교회와 교인들을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이 북한 공산정권의 하수인이거나 기독교인으로 위장한 공산주의자들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그러나 그것을 확인할 길도 없는데 의심하는 것은 쓸데 없는 일이다. 씨를 뿌리는 농부가 그 씨가 땅에서 돋아날까를 의심하면서 뿌릴 수 있지만 뿌릴 바에는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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