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WCC 7월 첫째 주 세계인을 위한 공동기도문 발표

WCC가 6월 마지막째 주 세계인을 위한 공동기도문을 발표했다. NCCK가 번역한 이번 공동기도문의 대상국은 볼리바아, 칠레, 페루다.
 
볼리비아

볼리비아는 북동쪽으로 브라질, 남동쪽으로 파라과이, 남쪽으로 아르헨티나, 서쪽으로 페루와 칠레에 둘러싸인 내륙국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주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잉카(Inca) 문명의 번영에도 불구하고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늦게 독립한 스페인의 식민지 중 하나로, 많은 희생을 치룬 끝에 1825년 독립국이 되었다. 독립하면서 남아메리카 혁명의 대표적인 지도자 사이몬 볼리바르(Simon Bolivar) 장군의 이름에서 국호를 따왔다. 인디언과 메스티조 인구의 삼분의 이 가량이 해발 6천 미터가 넘는 볼리비아 안데스 산맥의 고원지대에 거주하는데, 이들은 이곳에 이만 년 전부터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 라파즈(La Paz)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이다.

볼리비아는 13세기부터 15세기, 스페인 군대에게 정복될 때까지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주변에 근거지를 두고 번성했던 잉카 제국의 영토였다. 스페인이 볼리비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볼리비아에 매장되어 있는 막대한 은(銀) 때문이었다. 실제로 1545년부터 1745년까지 이백 년 간 볼리비아에서 생산된 은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1825년 독립한 이후로 볼리비아는 계속적인 정치적 불안정을 겪어왔다. 170년 동안 250여개 정부가 들어섰고, 16번이나 개헌이 이루어졌다. 1932년, 파라과이와의 전쟁으로 인하여 9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200번에 달하는 군사쿠데타와 역 쿠데타는 극심한 정치적 불안을 가져왔다. 1952년, 인민혁명운동(National Revolutionary Movement, MNR)이 정권을 잡았다. 이들은 토지개혁을 단행하여 60만 명 이상이 정착하도록 하였고, 주석(朱錫) 산업을 국유화하였다. 이들의 가장 큰 성과는 원주민들과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것이다. 군사쿠데타는 1964년을 끝으로 종식되었다.

성공적인 개혁정책을 수행한 정치인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심각한 인권유린과 부정부패, 마약매매를 지원한 이들도 있었다. 1980년대 몇 해 동안 마약의 재료인 코카인을 공식적으로 수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볼리비아는 남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막대한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2006년 선출된 원주민 출신의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대통령은 모든 에너지 관련 산업시설을 국유화한다고 발표하였다.

볼리비아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빈곤하고, 가장 저개발 되고, 가장 높은 외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또한 현대적인 사업에 종사하는 도시인들과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난한 농부들 사이의 빈부격차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90퍼센트 이상의 어린이들의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 심각한 삼림파괴와 무분별한 토지 개발의 여파로 이 나라의 풍부한 천연자원들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16세기와 17세기 사이에 프랜시스회와 예수회는 볼리비아 전역에 걸쳐 많은 교회와 인디언 협동농장을 세웠다. 이들의 선교의 결과로 현재 볼리비아에는 소위 "대중적인 전통적 가톨릭교회”가 존재하는데, 16세기 스페인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당시의 토착종교들이 혼합된 형태이다. 사제들의 부족으로 인하여 이러한 교리와 전통들의 결합이 더욱 많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농촌지역에서 많이 일어났다. 인구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는 원주민들을 위하여 최근의 기독교회들은 보다 의미있는 신앙과 예배의 표현을 위하여 교리와 실천을 혼합하는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다. 1970년대 볼리비아 정부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Justice and Peace Commission)를 적대시한 이후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여전히 긴장 속에 있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비교할 때, 개신교회 선교사들은 상대적으로 늦게 찾아왔다.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가 현재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개신교회이다. 오순절 교회가 많이 성장하고 있지만, 다른 남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하면 느리게 성장하고 있는데, 아마도 도시화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56년 소개된 이래로 바하이교(Bahai)도 볼리비아 국민들 사이에 널리 전해지고 있는데, 특별히 케추아(Quechua) 인디언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칠레

칠레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태평양에 접한 가늘고 긴 국토를 가지고 있으며, 페루와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사실상 왕래가 어려운 장벽으로 삼면이 둘러싸여 있었던 까닭에 칠레의 중앙 계곡(Central Valley) 지역은 15세기 중엽, 잉카제국이 남아메리카 여러 지역을 정복하기 시작하던 무렵까지 외부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잉카제국의 군대는 오아시스에서 오아시스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8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사막지역을 횡단하여 마침내 중앙 계곡에 도달하는데 성공하였고, 그 지역에 살던 세 개의 인디언 부족들 중 하나였던 마푸체(Mapuche)족을 만나게 되었다. 잉카의 군대는 마푸체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크게 패하고 말았다.

1541년, 스페인 군대가 같은 경로를 따라 이 지역을 침공하였고, 그들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4백 년 동안, 잉카제국과 같이, 스페인 군대도 중앙 계곡을 중심으로 항상 방어막을 치고 있어야 했다. 마침내, 1817년, 7년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칠레는 독립을 쟁취하였다. 스페인 군대에 저항했던 마푸체족은 새로 세워진 독립 정부를 상대로 계속하여 저항운동을 벌였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이 사회적으로 작은 변화들을 가져왔지만, 칠레 사회는 여전히 식민지 시절의 사회 구조와 가족 정책을 유지하였다. 칠레는 직접 투표에 의한 민주주의와 다당제 정치구조를 정립하였다. 후에 정치권력이 좌파 정당으로 이동하면서 로마가톨릭교회는 정부와 상당한 긴장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긴장관계는 팔랑헤당(Falange)의 출현에 도움이 되었다. 팔랑헤당은 강력한 반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였고, 1950년대에 들어와 기독교민주당으로 발전하였다. 1964년 들어선 중도좌파 정부는 중요한 개혁정책을 계획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하였는데, 특별히 교육과 주택, 농업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70년, 칠레 사회당의 지도자였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과 칠레의 부유층, 그리고 군부는 경계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아옌데는 은행을 비롯한 몇몇 중요한 산업들을 국유화하면서 빈곤층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였다.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와 중앙정보국(CIA)은 아옌데 정부를 견제하기 위하여 칠레 군부와 우파 정치인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3년, 미국 CIA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가 아옌데 대통령과 지지자들 2천 명을 살해하고, 대통령궁을 방화하고, 수천 명을 체포하는 유혈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군부 세력은 국가안보를 최고의 이념으로 제시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내의 정치적 반대자들이 학교와 교회, 정당과 노동조합, 학생단체와 언론 등에 들어가 반정부 운동을 벌이는 것을 막는 것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았다. 군 장교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하였고, 선거를 중지하고 의회를 해산하였다. 그들은 피노체트를 대통령으로 세우고(피노체트는 16년 이상을 대통령직에 있었다), 정적들의 제거에 속도를 내면서 모든 단체들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였다. 군부 세력은 아옌데의 국민연합(Popular Unity)을 반드시 근절해야 할 대상인 것처럼 다루었다. 인권이 참혹하게 유린되었고, 수천 명의 시민들이 살해되고, 실종되고, 고문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하고, 강제추방을 당했다. 비밀경찰들이 피노체트에게 직접 보고하는 통로를 가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포의 시절을 살아야 했다. 그들은 대학을 정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억압하였고, 책들을 불살랐으며, 정당 활동을 불법화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금지하였다.

1970년대 후반 동안 칠레의 인권상황을 우려하는 로마가톨릭교회와 다른 교회들, 국제단체들은 이러한 폭력적인 조치들을 규탄하며 널리 알렸다. 칠레의 로마가톨릭교회는,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지만, 1975년부터 1985년 사이에 각 교구의 지역연대(Vicariate of Solidarity)를 통하여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그로 인하여 교회는 쿠데타 세력과 노골적인 갈등관계를 갖게 되었다.

국민연합은 지하로 들어가거나 망명을 떠나거나, 아니면 야만적인 억압에 고난을 당했지만 조직을 잘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에 가면서 극심한 내부분열 양상을 보이다가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국민연합은 독재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여론을 모아갔고 이는 피노체트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70년대 말에 들어오면서 기독교 민주당까지 독재에 반대하게 되었다. 피노체트와 군부지도자들은 군부세력이 입법부 역할을 맡으면서 피노체트 일인독재체제로 변화를 꾀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 모든 현직 장성들은 독재자에게 충성하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쿠데타 후 처음 삼년간 미국의 경제지원과 차관이 증가하였지만, 지미 카터(Jimmy Carter)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양국의 관계가 냉각되었다.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칠레 내부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국민들의 저항운동이 계속되었다. 1990년,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인정을 받는데 실패한 피노체트는 정당하게 선출된 파트리치오 아조카르(Patricio Azocar)에게 대통령직을 이양하였고, 민간통치가 회복되었다. 퇴임 후에도 피노체트는 군부와 의회 안에 자기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재임 기간 중 일어난 범죄행위에 대하여 남은 일생동안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특권을 승인받았다. 1990년대에 칠레는 경제적인 개혁조치들과 실질적인 성장을 즐겁게 누렸다. 오늘날 칠레의 사회운동가들은 과거에 일어난 인권유린 범죄의 진상을 밝히고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노체트는 아직도 그를 인권 범죄의 책임을 물어 법정에 세우려는 운동가들과 투쟁을 벌이고 있다(피노체트는 2006년 12월 10일, 급성 심장발작으로, 9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역주).

칠레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문자해독율과 최상의 건강보험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국민의 30퍼센트 이상이 극빈층이며, 극심한 계층 간 격차가 대단히 심각하다. 또한 테러주의자들과 마약중개상들을 상대로 하는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칠레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는 로마가톨릭교회이다. 1960년 이래 가톨릭교회는 철저한 자기개혁을 수행하였고, 여성공동체들에 대한 대규모 지원과 국가 차원의 사회경제 문제들에 대한 이해와 평가 작업을 강도 높게 진행하고 있다. 칠레의 가톨릭교회는 역사적으로 남아메리카 어느 나라들보다 일찍부터 사회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아옌데 정부 시절에는 정부와 대화하고 협력하는 길을 모색하는 동시에 이념적인 차이성을 분명히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73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참혹한 범죄들이 발생하자, 교회들(감리교회, 정교회, 루터교회, 장로교회, 오순절교회, 로마가톨릭교회)은 유대인들까지 포함하는 에큐메니칼 평화위원회(Ecumenical Peace Committee)를 조직하였고, 이 위원회는 군사정부 치하에서 억압받던 피해자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위원회는 전국적으로 칠레 국민들을 위한 법률적이고 인권적인 구호활동을 벌였다. 1975년 쿠데타 세력은 이 위원회를 폐쇄하였다. 위원회의 독일 루터교회 담당자는 입국이 금지되었고 직원들은 체포되었다.

개신교회들 역시 1970년대 이전부터 칠레 선교를 시작하였다. 개신교회의 성장은 느린 속도로 진행되어 현재 칠레 인구의 10퍼센트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오순절교회와 은사운동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데, 특별히 오랜 전통을 가진 교회들 안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한편 무종교라고 응답하는 사람들과 로마가톨릭교회를 이탈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페루

남아메리카의 태평양 해안에 자리한 페루는 북쪽으로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동쪽으로 브라질과 볼리비아, 남쪽으로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페루의 역사는 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안데스 산맥에 있던 여러 왕국의 후손들인데 가장 마지막 고대왕국이 잉카 제국(Inca Empire)이었다. 1520년대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이끄는 정복자들이 처음 잉카 제국을 정복하였다. 그 후 200년 동안 페루의 수도 리마(Lima)는 남아메리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경제적 중심지가 되었다.

1824년, 페루는 독립국이 되었지만 국경분쟁으로 인하여 20세기 대부분을 칠레와 에콰도르와의 전쟁으로 보내야 했다. 국내적으로는 계속되는 위기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과거 스페인이 개발하였던 금광과 은광이 많았지만,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인구의 삼분의 이 가량이 도시지역에 살고 있으며, 도시 인구의 사분의 일이 리마에 살고 있다. 페루의 땅값은 대단히 높은 편이지만, 경작할 수 있는 땅은 대단히 적으며, 내륙 지역은 험한 바위투성이 땅들이다.

1968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진보적인 장교들로 구성된 군부정권은 토지개혁, 모든 산업의 국유화를 실시했으며, 전국적으로 교육 기회를 확대하여 무상교육과 의무교육, 세속적인 교육정책을 실시하였다. 1985년, 젊고 카리스마를 가진 알란 가르시아(Alan Garcia)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는 미화 14억 달러에 달하는 페루의 외채를 갚는 상한선을 제시했는데, 일 년 수출액의 10퍼센트를 넘길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서 국제 경제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국제통화기금이 페루에 대한 더 이상의 금융지원을 중단하면서 페루 경제는 더욱 깊은 경제위기에 빠져들었다. 1980년대에는 모택동 노선을 따르는 무장 게릴라 단체 “빛나는 길”(Shining Path)이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여, 군부가 억압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민주적인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페루는 국민들의 저항운동과 파업, 정부의 부패에 대한 반대가 계속되었다. 1995년에는 과거 1980년부터 95년까지 군부가 개입한 인권유린 사건들에 대한 총괄사면이 이루어졌다. 1990년 알베르토 후지모리(Alberto Fujimori)가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게릴라 활동이 감소하는 큰 발전이 있었고, 경제도 많이 호전되었다. 그러나 후지모리의 권위적인 통치가 강화되고,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2000년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하였다. 

현재 페루의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실업률과 빈곤이다. 페루 인구의 삼분의 일 가량이 빈곤층 이하의 삶을 살고 있고, 해마다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마약의 원료가 되는 코카인의 불법적인 재배가 늘어가고, 마약 거래가 만연하고 있다. 열대우림지대와 기타 자연 환경의 파괴, 그리고 늘어가는 오염이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몇 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폭우와 홍수로 인한 피해도 커다란 위협이며, 지진의 공포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1546년에 리마가 태평양 연안을 관장하는 대주교 관구로 지정된 이후 오늘까지 로마가톨릭교회는 페루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단체이다. 1845년, 로마가톨릭교회는 공식적으로 국교가 되었다. 그러나 인접한 볼리비아의 경우와 같이, 인구 6천 명 당 겨우 한 명꼴인 사제의 부족이 심각하다. 최근 들어 로마가톨릭교회 사제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정의에 관한 문제들에 대하여 이전보다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페루에 가장 먼저 도착한 개신교회 선교사들은 1800년대에 찾아온 성서공회(Bible societies)의 대리인들이었다.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현재까지 계속 선교를 위하여 일하고 있지만, 선교 이론에 대한 노선 차이와 개인적인 갈등들로 인하여 적절한 선교의 시기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 오순절 교회는 페루에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추가정보

볼리비아 공화국 (Republic of Bolivia)

통계
인구 : 9백만 명
정부형태 : 민주공화제
언어 : 스페인어 외에 케추아어(Quechua), 아이마라어(Aymara)
문자해독률 : 남자 93%, 여자 81%
종교 : 로마 가톨릭 교회 81%, 소수 개신교회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볼리비아 복음주의 루터교회(Bolivian Evangelical Lutheran Church), 볼리비아 복음주의 감리교회(Evangelical Methodist Church in Bolivia)

칠레 공화국 (Republic of Chile)

통계
인구 : 1천 6백 십만 명
정부형태 : 민주공화제
언어 : 스페인어
문자해독률 : 남자 96%, 여자 96%
종교 : 로마가톨릭교회 72%, 개신교회 약 13%, 소수 바하이교, 유대교, 부족 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칠레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Chile), 칠레 자유 오순절 선교교회(Free Pentecostal Missions Church in Chile), 칠레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of Chile), 칠레 오순절교회(Pentecostal Church of Chile), 오순절 선교교회(Pentecostal Mission Church)

페루 공화국 (Republic of Peru)

통계
인구 : 2천 7백 5십만 명
정부형태 : 다당제공화제
언어 : 스페인어, 케추아어(Quechua), 아이마라어(Aymara)
문자해독률 : 남자 93%, 여자 82%
종교 : 로마가톨릭교회 87,8%, 개신교 3%, 부족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페루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of P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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