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공동체 만드는 스님“비우면 가능하다”

생명과 평화의 길을 묻다, 도법스님 즉문즉설

▲질의에 응답하고 있는 도법스님 ⓒ오유진 기자

생명평화결사가 4일 개최한 ‘생명과 평화 길을 묻다’ 다섯번째 즉문즉설에는 도법 스님을 초청되었다. 이번에도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 즉문즉설로 진행되었으며, 도법 스님은 다양한 질문들에 일목요연하게 답변을 전개해 나갔다.

다음은 청중들과 도법 스님이 나눈 질의응답 요약.

- 실상사에서 지역공동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탁발순례와 연관지어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실상사에서 살다가 탁발순례를 하며 길거리에서 5년을 살았다. 장소는 달라졌지만, 같은 사람이 사는 삶인데 무엇이 달라졌겠는가? 그동안 고민하고 모색했던 일을 계속 할 생각이다. 스님들과 공부하는 것, 불교적 대안 모색, 그 외 사회적 대안으로는 마을공동체를 모색해왔다. 이런 활동들을 발전시켜서, 생명평화공동체라고 표현해도 좋을 대안사회의 모델을 만들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키우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마을이 희망이다’라는 관점으로, 마을 전문가를 키워내는 교육기관을 만들려고 한다. 또 현 불교계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며 획기적인 모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함께 도울 것 같다.”


“비움, 낮아짐 있다면 멋진 공동체도 가능해”

- 현실적으로 공동체가 가능하겠는가?

“가능하다고 본다. 중생이 부처도 되는데 뭔들 못하겠는가? 다만 실현 가능한 조건을 못 만들어 내는 것 뿐이다. 우리는 버려야 할 것이 많다. 그것들을 버릴 때, 멋진 공동체가 실현된다고 본다. 비움, 버림, 낮아짐, 나눔을 통해서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먼저 소유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을 추구하는 한 우리의 꿈은 영원히 실현될 수 없다. 또 그런 삶은 고통을 재생산할 수 밖에 없다. 그 고통은 기쁨으로 승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낮아짐에서 오는 고통은 미소로 승화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삶으로 보여준 것이 예수의 삶이고 부처의 삶이다.”

-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앎이 참되면 행동이 참되다. 예수는 사랑의 길만이 진짜이며, 다른 그 어떤 것도 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 것 아닌가? 예수는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박혔다. 비폭력주의의 예수는 진실과 사랑을 추구하는 삶을 보여준 것이다. 행동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앎이 참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삶에 대한 뼈아픈 깨달음이 필요하다.”

- 누구보다 얼굴 표정이 좋아 보인다. 처음부터 그랬나? 아니라면 변화된 계기가 있는가?

“나는 남보다 낫다고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 인생에 대한 고민은 누구보다 많았던 사람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것을 인식한 뒤, 허무함으로 인해 삶의 모든 이유를 잃어버렸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미부여를 하지 못하며 자기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회의와 고뇌가 있었다. 찌들어 살았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지금도 그런 문제의식과 아픔은 여전히 있다.

그런데 변화하게 된 것은 내가 부딪혔던 근원적 회의에 대해 나름대로 논리적인 해답을 정립하고 많은 것을 달관하게 됐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체념, 포기, 버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을 홀가분하게 했다.

또 5년 간의 순례 생활이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누구나 가능하다고 본다. 침묵 속에 걸음을 생활화하는 것이 가장 큰 비법이었다. 순례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내 삶은 괜찮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만큼 홀가분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탁 내려놓고 순례를 하는 것이 삶의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한다.”

▲참석자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도법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오유진 기자

“일생을 바친 돈, 명예, 권력… 죽음 앞에선 얼마나 허무한가”


- 스님이 자기 고뇌로부터 얻은 달관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고나니 세상 사람들이 제 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일생을 바쳐 쌓아올렸던 권력, 돈, 명예, 사랑 등이 죽음 앞에서 상실될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허무한 인생을 위해 할 짓, 못 할 짓, 다 해가며 사는 것이 이해가 안됐고 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 인생에는 어떠한 희망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뼈에 사무쳐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인생의 어떤 것도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참선에서 도통해야 한다 하길래 선방에 가서 10년동안 지냈다. 그런데 들었던 것처럼 잘 안됐다. 자기 모순들이 있는 것을 보고 뛰쳐나와 내 방식대로 경전을 보는 등 이성적 사고를 가지고 끊임없이 정리해왔다. 그 정리과정을 통해서 쓸데없는 환상으로부터 깨어나기도 하고, 부질없는 것들을 내려놓고 포기하고도 하고, 어떤 부분은 사실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 선방에서 10년 이상 수련하다 뛰쳐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선방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지 않을 뿐, 간화선 신념 체계는 가지고 있다. 앉아서만 해야하는 수련은 아니다. 선방에서 나온 이유는, 경전이나 선사들의 저술에서 보고 들었던 내용과 선방의 실제적인 내용들이 별로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르침과는 정 반대의 경우도 많았고 모순이나 비설적 요소들도 많았다. 이런 것들로 인해 거기에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뛰쳐나왔다.

석가모니 부처가 새로운 불교 역사를 연 것을 위대한 탄생이라고 한다면, 대승불교의 탄생도 그 못지않은 위대한 탄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대승불교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불교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승불교의 핵심은 본래 부처론이다. 부처론을 실천하는 것은 선수행과 보살행 두가지고 표현할 수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보살행적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자기 수행이라는 점에서는 간화선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이 길이 가장 불교 사상과 정신에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누구에게나 좋다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좋다는 말이다.”

- 한국 불교는 왜 대승불교에서부터 멀어져있는가? 현재 한국 불교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비판하자고 한다면 비판할 것이 너무나 많다. 대승불교에 대해 맹목적으로 대승불교가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승불교적이지 않다고 본다. 또 한국 불교가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초기 불교만 옳고 대승불교는 잘못된 것이라고 가볍게 취급하는 것도 불교를 잘 모르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 불교의 본질적인 문제는 불교사상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이해가 가장 원천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성찰과 자가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사상적 자기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다보니, 자기 개인의 생활과 사찰의 운영방식 등에도 불교적이지 못하고 수행전통에 어긋나는 문제들이 야기되는 것이다.

비판하자고 한다면 비판할 것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핵심만을 짚어 말하자면, 자기사상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근본이 되어 다음 문제들이 야기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불교계가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스님의 입장은 밝혀달라.

“개인적으로 황우석 교수를 잘 모른다. 줄기세포나 생명공학은 더더욱 모른다. 다만 생명공학은 생명을 인위적으로 선진하는 것 아닌가? 어떤 목적으로든...

불교 세계관과 철학으로 생명공학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가 종단적으로 먼저 정리돼야 한다고 본다. 이 문제를 정리하지 않은 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황우석 교수가 불교신자이기에 지지하는 행동은 옳지 않다고 본다. 해야할 일을 먼저 해야한다. 불교 세계관이나 철학과 일치하기 때문에 지지한다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선행 작업없이 유명한 사람이니까 지지하는 것에 대해 그동안 나는 문제 제기를 해왔다. 먼저 생명공학에 대한 불교 입장을 정리했으면 좋겠다.

한국 불교계가 왜 나서서 황우석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부각시키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지키고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했는가? 그가 불교신자라는 이유일 것이다. 유명인사가 아니었다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불교, 해방 이후에 기독교와 천주교에 피해의식 있다”


또 하나는 한국 불교가 갖고있는 아픔이다. 불교는 조선조 500년동안 탄압받은 어마어마한 멍에가 있다. 국가 사회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다. 일제 36년에도 굴절되는 아픔을 겪었다. 해방 이후에도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기독교와 천주교만 급성장하며 피해의식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타 종교 쪽에서 황우석이 불교신자이기 때문에 죽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계에서는 그에 맞먹는 행동들을 한 것이다. 물론 비판을 해야겠지만, 한국 불교의 아픔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불교이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이 스스로 새로운 활로를 열어가는데 무겁게 짖누르고 있는 장애로 작동하고 있다.”

-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생명평화의 이념이나 사상을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겠는가?

“옷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으면 다음 단추를 아무리 끼워도 끝까지 어긋난다. 또 어긋난 단추가 너무 많으면 다시 바로잡기가 힘들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무리 바쁘고 다급하다 할 지라도,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그냥 놔두면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 현실은 매우 다급하고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문제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들이 시급하다고 해서, 잘못끼워진 첫 단추를 놔둔 채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소위 임시로 떼우는 것일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고 침착하게 문제의 본질을 보고 차근차근 해결해나가야 한다.”


 “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경제타령은 늘 있었다”


-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국가가 나서 도와줘야 하는데 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위기시대의 대안으로 늘 국가나 사회가 거론된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어느 한 시대에도 경제 타령을 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경제 타령은 점점 심해지고만 있다. 최근엔 더 심해졌고, 이제 누구나 할 것 없이 경제 타령만 하고 있다. 경제 타령이 우리 문제에 해답이 될 수 있겠는가?

삶은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해야한다. 국가도, 정부도, 종교도, 이념도, 그 누구도. 말은 나만 믿어라 할 수 있지만, 대신 살아줄래야 살아줄 수가 없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지금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기조 위에, 그래도 약자나 가난한 자들을 돕고 보살피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다른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첫번째로 전제돼야 하는 것이 전제되지 않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삶을 내가 책임지고 살아내겠다는 스스로의 결심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돕겠는가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겠다.”

한국불교개혁과 생명평화운동의 상징적인 도법 스님은, 1990년 올바른 승가상 확립을 위해 승가결사체인 선우도량을 만들어 청정불교운동을 이끌었다. 90년대 중반 문명위기, 생명위기에 대한 대안의 하나로 귀농운동을 시작했고, 1995년 지리산 실상사 주지로 부임한 이래 귀농학교·대안학교·환경생태운동·지역복지 운동 등을 통해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운동을 펼쳤다. 2001년에는 종교계,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생명평화 민족화해'를 기원하는 지리산 1000일 기도를 한 뒤 그 뜻을 이어 생명평화결사를 창립하고, 이듬해인 2004년부터 5년째 생명평화탁발순례를 하는 중이다. 저서로 [화엄의 길 생명의 길], [내가 본 부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인드라망과 생명평화사상을 담은 [그물코 사랑 그물코 인생]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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