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노숙자 밥 챙기는 광야쉼터 체험해 보니…

영등포역 노숙자들 1천여명 찾아..때론 부족하기도

▲점심께, 노숙자들이 식사를 위해 광야심터로 모여들고 있다 ⓒ김진한 기자
9일 오후 1시 영등포역 광장에 부시시한 머리를 한 노숙자들이 역전파출소 쪽으로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기자도 그 틈에 끼어 역전파출소 골목길을 지나 긴 행렬이 이어진 한 임시천막 앞에 다다랐다. 천막 안에선 “건더기도 많이 주고 그래..모자라면 또 가져오면 되잖아”하는 말과 함께 바쁜 손놀림으로 밥을 퍼주고, 국을 퍼주는 이들이 있었다.

점심 한 때만 500여명 이상의 노숙자들이 끼니를 해결하려 찾아온다는 이곳은 임명희 목사가 관리하고 있는 광야의 쉼터. 이곳에서 배식을 하고 있는 이들은 한 때는 다들 노숙자였다. 그러나 쉼터에서 신앙적으로 치유 받은 뒤 이젠 과거 노숙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매일 같이 노숙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기자 역시 끼니를 떼우지 못한 터라 노숙자들 틈바구니에 끼어 배식을 받았다. 배고픔에 장사없다더니, 음식을 보니 반가움이 밀려왔다. 수북히 얹어주는 밥과 반찬 그리고 국물엔 풍성함이 베어있다. 옆에 앉은 한 노숙자는 하루 종일 굶었는지 숟가락을 들자마자 정신없이 밥과 국을 떠 먹었다. 종국에는 쌀 한톨이라도 남기지 않으려고 숟가락으로 식판 구석구석을 요란하게 긁는 소리가 인상 깊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노숙자들은 또 삼삼오오 모여 영등포역 광장 여기 저기로 흩어졌다.

식사를 마친 뒤 배식하는 사람을 붙잡고 “이곳에서 하루에 식사하는 노숙자들이 몇명이나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한 1천명 쯤 될 겁니다. 더 될 수도 있구요. 요새 경기가 안좋아서 어떨때는 (노숙자들이)너무 많이 와서 (음식이)모잘라 못 줄때도 있어요”

광야교회 지기남 사회복지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광야쉼터에서 끼니를 떼우는 노숙자들은 1,300여 명. 이들 대부분은 1평 남짓한 쪽방촌에 살고 있는 기초수급대상자들이지만 요즈음은 서울역이나 용산역 그리고 지방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무료급식이 실시되고 있는 서울역이나 용산역에서 오는 사람들은 저녁 때면 빠지지 않고 영등포역 광야쉼터로 모여든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에선 세끼 식사를 모두 제공하기 때문.

▲노숙자들은 20대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했고, 더러는 여자 노숙자들도 눈에 띄였다 ⓒ김진한 기자

“평균적으로 아침엔 300여 명 점심땐 600여 명 저녁엔 400여 명의 노숙자들이 찾아와 끼니를 해결하고 있어요” 광야교회의 부설 광야쉼터는 하루에 1,300끼씩을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배급해 왔다. 하루에 1,300끼씩을 제공하면 한달이면 4만 여끼식을 제공한 셈. 한끼 식사를 1천원 정도로 환산하면 약 4천만원의 비용이 든다. “경기도 어려운데 후원 현황은 어떤가”라고 물으니 “경기가 어려워 힘들지만, 우리 사회엔 아직도 얼굴 없는 천사들이 많아 힘을 얻는다”고 지기남 복지사는 전했다.

광야교회의 쉼터는 100% 후원에 의해 운영된다. 때문에 후원이 끊기면 배식도 끊기고 하루하루 끼니 떼우기가 어려운 노숙자들의 배고픔으로 이어진다.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 운영이 좀 더 수월할텐데 임명희 목사는 한사코 정부의 지원을 거절했고, 앞으로도 거절할 것이란다.

지기남 복지사는 “정부의 보조를 받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헤이해 질 수 있다”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루하루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진실한 도움을 받을 것이란게 임 목사님의 생각”이라고 했다.

광야쉼터는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노숙자들의 재활을 위해서도 봉사하고 있다. 광야쉼터엔 사회 적응 등 재활 치료를 받고자 현재 105명의 노숙자들이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며 다시금 사회로 진출할 희망을 키우고 있다. 그 중에는 과거 사장 소리를 듣던 사람도 있고, 시간 강사이지만 대학교수 출신도 있었으며 20대 노숙자들도 있었다.

어제만 해도 4명의 입소자 가운데 한 사람이 20대 노숙자라고 전한 지기남 복지사는 이들이 노숙자가 된 원인으로 게임 중독, 알코올 중독 등을 꼽았다. 현재 광야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숙자들 중 10%가 20대 노숙자라고 한다. 단순히 예배와 찬양만으로 이런 중독자들을 치유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던 광야쉼터는 최근엔 이들을 전문적으로 케어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자는 데 뜻을 모으기도 했다.

교회가 봉사에 힘을 쏟다 보면 목회자는 바쁘기 마련, 이날도 임명희 목사는 노숙인들을 전도하고자 광야교회 본당에서 예배를 드린 데 이어 지역 교회들을 방문해 노숙자들을 위한 후원활동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하며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얼마전엔 고맙게도 강변교회 원로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가 광야쉼터를 방문, 손수 맛있는 음식들을 마련해 와 직접 배식을 해주며 광야쉼터의 봉사자들을 격려해 주기도 했다. 지기남 복지사는 “이런 작은 관심과 도움이 정말로 큰 힘이 된다”며 “이웃을 돌보려는 이런 나눔의 정신은 사회의 활력소가 된다”고 했다.

무료 배식을 시작한지 20여 년이 넘는 광야쉼터. 광야쉼터의 사람들은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살기 힘들더라도 나눔의 정신과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사회 구석 구석이 풍성해 질 것이란 기대감 속에 오늘도 변함없이 사회 내 약자들을 섬기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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