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감리교 변선환 박사가 교단의 보수진영에 의해 종교재판을 당하고 축출됐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0년 9월 27일, 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학장으로 몸담았던 감신대에 모였다.
95년에 작고한 변선환은 기독교와 타 종교의 대화를 시도한 신학자였다. 1960년대에 토착화신학자 유동식, 윤성범을 중심으로 유불선에 대한 원칙적 포용 자세가 나타났다면, 1970년대에는 변선환을 중심으로 불교를 포섭하려는 신학이 등장했다. 그는 기독교와 타 종교는 휴머니즘의 영역에서 대화와 협동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전통적인 교회중심적·그리스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신 중심적 종교해방 신학’으로 나아갈 것을 제시했다. 그러다 1990년 발표한 ‘불타와 그리스도’라는 글이 감리교 보수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어 “이단사상자” 라는 오명을 안고 축출당했다.
▲故 변선환 박사 15주기 추모예배에서 그를 따르는 후학들이 추모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지수 기자 |
그러나 현재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작고한 한국의 어느 신학자보다도 많다. ‘한국적 생명신학’을 주창한 이정배를 비롯해, 넓게는 개신교 신학 배경에서 불교학을 하는 길희성,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구조적 상통성을 연구하는 이찬수 등 많은 학자들이 그의 계통에서 파악된다.
이날 ‘변선환 박사 15주기 추모예배’에는 감신대 김홍기 총장, 추연호 전 감신대 총동문회장 등 100여 명이 모여 그의 뜻을 기렸다.
참석자들은 5가지로 변선환을 기렸다. 변선환은 “구도적 삶을 사신 사색가”, “자유의 길을 가는 나그네 신학자”, “사회적 성화를 위한 웨슬리 신학자”, “아시아 신학을 위한 종교해방 신학자”, “제자들을 사랑한 휴머니스트”라고 평했다. 송대선 목사(시온중앙교회)는 추모사에서 “종교재판이 열리는 재판장에서 재판위원들에게 끝까지 신학책을 들이대며 여기를 읽어보라고 하신 선생님은, 버림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주장이 진리였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셨다”고 낭독했다.
2부 출판기념회에서는 토착화신학 2세대인 이정배와 3세대 신익상이 출판논문을 고인에게 헌정했다. 신간 <제3세대 토착화론>에 대한 서평에서 권진관 성공회대 교수는 “제2세대에 이어 제3세대 토착화신학이 탄생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