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5월의 어느날 손바닥만한 사진기를 목에 두른 젊은 외국인 목사가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만 해도 동아시아 빈국 중 하나였던 이 조그만 나라에 복음을 전파하고자 부흥사로서 방문한 것이다. 집회를 무사히 마친 그는 능숙한 솜씨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는 한국 땅 곳곳을 찾아다니며 사진기에 담았다. 어느 여행에서든 사진과 영상은 그에게는 마치 둘도 없는 친구와 같았다.
그렇게 한국 땅을 떠난지 6주 뒤 한국전쟁 발발 소식을 들었다. 전쟁 통에 고아가 되거나 과부가 된 한국인들이 굶주려 죽어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곧 전시 중 종군기자 자격으로 한국을 되찾았다. 전시에 찍힌 그의 사진들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도시들은 저마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있었고, 곳곳에는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 가족을 잃은 미망인들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국 땅에서 평시에는 복음 전도자로 전시에는 종군기자로 활약한 그는 당시 한국의 현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으며, 성서 위에 손을 얹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겠다’는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시작한 것이 월드비전의 모체라고 알려진 다비드 모자원(대한민국 최초 모자보호시설) 설립(1951)이었다.
▲6일 오전 10시 월드비전 건물 9층 홍보관에서 월드비전 창립자 밥 피어스 목사의 딸 마릴리 피어스 던커의 방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녀는 월드비전 창립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했다. ⓒ월드비전 제공 |
월드비전 창립자 밥 피어스 목사에 관한 얘기다. 그 딸 마릴리 피어스 던커가 월드비전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방한했다. 6일 월드비전 센터 9층 홍보관에서는 마릴리 피어스 던커의 방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1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는 그녀는 인사말에서 아버지 밥 피어스 목사의 한국 사랑, 한국민 사랑을 재차 강조했고, 유족들 역시 그와 같다고 덧붙였다. 마릴리 던커는 "아버지는 한국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비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라며 "한국은 아버지가 새로운 인생,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어주었고, 아버지는 평생 한국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 그리고 애정을 갖고 사셨다"고 밝혔다.
월드비전 설립자 밥 피어스의 딸이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세계의 아픔을 전하고 있는 그녀는 작가로서, 강연가로, 또 라디오진행자로서의 활발한 경력을 쌓다가 2001년에 들어서야 자신의 아버지가 반세기 전에 열정적으로 사역했던 월드비전에서 일하게 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녀는 먼저 주최측이 준비한 질문들에 답했다. "많은 직업들이 있었음에도 어떻게 월드비전에서 일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짧게 답했으며 "교회가 국제 사회 이슈들에 민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했지만 동시에 약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그들을 돌보는 일도 계속했다. 국제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것들에(예를 들면 빈곤, 에이즈, 여성 인권 문제) 교회는 관심을 갖고, 구체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실천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이어 기자들의 질의가 시작됐다. 지속 가능한 기부 문화 조성에 관한 질문에 마릴리 던커는 "전 세계 빈곤 문제의 심각성을 계속해서 알려야 한다"면서 "세계 절반의 인구가 먹을 것, 마실 것으로 고통 받는 현실을 그리고 우리의 작은 나눔이 세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을 전하고 또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점차 개인주의 경향을 보이는 한국사회 젊은 세대를 우려하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는 "우리는 지구촌 사람이다. 나의 1만원, 2만원이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 죽어가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젊은 세대들 또한 적극적으로 기부 문화에 동참할 것이다. 그들도 논리가 있고, 이성이 있다. 기부 문화 조성에 있어 큰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했다.
세계 곳곳의 여성과 아동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옹호자로 헌신하고 있는 그녀는 특히 월드비전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가난과 에이즈, 폭력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하는 소모임과 컨퍼런스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모임에서 그녀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까?
마릴리 던커는 "자신이 (빈곤)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라며 "그리고 나서 하는 얘기가 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신은 빈곤 현장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되물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월드비전의 구호 활동이 빈곤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음도 알려줬다. 사회 정의 실현과 관련한 질문에 그녀는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경제적, 정치적 불평등에 놓인 계층(인디언 등)들이 있다"라며 "월드비전은 국가의 정책적인 측면에 시민 사회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지속적인 로비 활동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