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박사 ⓒ베리타스 DB |
4) 메시아, 그리스도, 다윗의 후손: 예수가 활동하던 시절에 유다인들에게는, 다윗의 가문에서 위대한 인물이 나와 도탄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해주고 다윗 왕 시절의 영광을 되찾아 주리라는 기대가 팽배해 있었다(메시아 대망待望사상). 그 참에 놀라운 능력을 가진 예수가 등장했으니 구약성서에 예언된 메시아로 추대되었을 법하다(마르 10,48;11,1-11 등). 따라서 예수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당연히 그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만 했다(마태 1-2장). 그러나 예수는 정치적인 메시아 격인 다윗을 훨씬 능가하는 인물이며, 오히려 다윗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다윗의 주님’이기도 하다(마르 12,35-38a). 히브리어 메시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고,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그리스어 번역이다. 구약성서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는 원래 하느님의 택함을 입은 자들의 총칭이나 복음서에서는 ‘다윗을 잇는 왕’이라는 제한적인 의미로 쓰인다.
5) 하느님의 아들, 아들 : 이 호칭은 복음서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데, 구약 성서에서 따온 개념으로 하느님과 가까운 이들, 예를 들어 왕이나 사제,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을 통틀어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렀다(시편 2,7 등등). 그러나 복음서에 씌어진 ‘하느님의 아들’은 예수와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저 ‘하느님의 사람’ 정도에 머무는 구약성서의 쓰임새와는 무척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예수가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고 뭍에 올라오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는 너를 어여삐 여기노라”(마르 1,11) 하는 하느님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오고, 하느님의 외아들로 고백되기도 한다(요한 3,16).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호칭 속에는 부자간의 돈독한 관계 외에도 아들(예수)이 아버지의 전권을 물려받았으며,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아들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예수의 ‘하느님의 아들’이심은 오히려 귀신들이 잘 알아본다(마르 3,11).
6) 인자, 수난 당하는 인자: 예수 당시에, 썩어빠진 이 세상이 멸망하고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리라는 현세 부정적인 묵시사상이 기세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심판의 날에 하느님을 대신해 세상을 멸하러 올 이가 바로 ‘인자’이다. 예수는 ‘인자’로서 이미 세상에 내려왔으나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처형했다. 즉, 예수는 수난을 당하는 인자인 셈이다(마르 8,31;9,30-32;10,32-34). 그러나 예수가 두 번 째로 세상에 올 때에는 결코 첫 번처럼 무력하게 당하지 않고 강력한 군사력(천군천마)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자들을 뿌리째 솎아낼 것이다. 무력한 인자가 아니라 강력한 인자로서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재림)이라는 말이다.
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