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만우 송창근 목사의 납북 6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고자 주재용 박사(한신대 전 총장)의 기고글 ‘만우 송창근의 성빈의 삶과 사상’을 총 12회에 걸쳐 연재한다. 경건과신학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한 주 박사는 그의 제자 장공 김재준과는 달리 연구 및 평가에 있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송창근을 오랜 기간 연구, 지난 2008년 말에는 송창근 평전 『벽도 밀면 문이 된다』(송우혜 저·생각나눔)을 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Ⅰ. 서 론
▲주재용 한신대 명예교수(전 한신대 총장) |
과거의 역사적 인물 가운데서 특정한 인물에 관해서 흥미를 가진 것은 오늘의 시대와 무관할 수가 없다. 즉 오늘의 시대가 그와 같은 인물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역사가의 역사 비판에 의한 것이다. 가치관이 무너지고 사회의 방향이 정립되지 못한 혼란기 또는 전환기에는 새로운 역사 창조를 갈망하게 되고 종말론적인 희망을 갖게 되는데, 이와 같은 시대에서는 더욱 역사적 인물에서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위기 가운데서 가장 심각한 것은 민족이 정체성 상실(identity crisis)과 정체위기에 직면하면 그 민족은 멸망의 위기를 만나게 되는 것이고, 교회가 그 정체 상실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 교회는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이나 기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체 위기를 극복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근거’(foundation)의 재발견이며, 재해석이다. 교회가 그 정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근거자’(The Founder)인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어느 기관, 어느 교파의 정체 위기 극복도 그 기관, 그 교파의 창설자(설립자)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여기 ‘근거자’ 또는 ‘창설자’의 재발견이라 함은 단지 ‘이름’의 재발견만이 아니라 그의 이념, 정신, 철학 등의 재발견을 뜻한다. 어느 기관이면 그 기관의 설립목적이 있고 이념이 있다. 이 목적과 이념이 변질되는 것이 곧 정체 위기이기 때문에 정체 위기 극복은 목적과 이념의 재발견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재발견은 과거의 단순한 문자적 율법주의적 반복, 재생(再生)을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는 철저하게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역사주의 입장에 있지 않는 한 그와 같은 반복, 재생은 불가능하다는 데 이론이 없을 것이다. 모든 유기체적 공동체(organic society)의 본질은 형태변화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개혁이라 할 수도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신의 하나가 “교회가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도 교회가 유기체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발견이란 재해석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재해석은 E. H. 카가 역사를 말할 때 쓴 표현이지만 “현재와 과거와의 부단한 대화”를 통해 가능하다. 재해석은 과거가 있고 오늘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재해석은 오늘이 있어 과거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재해석은 과거에서 오늘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오늘에서 과거 사실에 대한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 의미 찾음이 해석이고 그 해석의 현실화가 역사다. 역사를 해석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크리스토퍼 블레이크(Christopher Blake)는 역사의 출발은 해석의 해석이라고 했다.
“그(역사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base fact)에서 출발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코 그 같은 출발은 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차라리 그는 해석에서 시작하여 그 해석을 다시 해석한다는 쪽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이것은 역사는 해석에 의해서 항상 새롭게 쓰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태리 역사가 크로체(Benedelto Croce)는 “역사의 현재성”, 즉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를 주장한 바 있다. 괴테는 말하기를:
“세계의 역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롭게 쓰여져야만 한다는 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사건들이 새롭게 발견되었다는 사실로부터 그러한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필요성은 새로운 견해가 등장했다는 사실에서, 즉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사람들은 과거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며 새로운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라고 하였다.
괴테의 말은 역사가 다시 쓰여져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과거에 대한 재해석으로 가능하다는 것이고 재해석은 새로운 관점에서의 평가며 따라서 과거는 고정된 과거일 수가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칼 호이씨(Karl Heussi)는 “우리들이 특별히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과거의 수많은 사건들도, 미래에는 상황에 따라서 중요한 결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과거는 고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하는 어떤 것이다.”라고 하였다.
만우 송창근(晩雨 宋昌根)에 대해서 고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오늘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기독교장로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한국교회에서 보기 드문 선각자요 신학자며 목회자로서 거목이었다. 그의 지도와 영향을 받은 사람 중에는 한국 교회와 신학계에서 큰 지도적 인물이 된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면 목사가 된 사람들은 정대위, 조선출, 김정준, 황성수, 엄요섭, 김태묵, 강원룡, 조향록, 박봉랑, 이일선, 이장식, 양정신 등이며, 공덕귀 여사와 소설가 황순원, 시인 김현승 등이 모두 그의 제자 또는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송창근 박사의 생애에서도 언급되겠지만, 장공 김재준 박사는 만우 송창근 박사에 의해서 발굴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우 선생은 지금까지 진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더욱 송창근은 필헌 김대현과 장공 김재준과 더불어 한신대학교(조선신학교의 후신)의 세 사람의 창설자 중 한 사람이며, 한국 기독교장로회의 모 교회 중 하나인 서울성남교회(처음에는 성바울 전도교회)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는 한신대학교에서는 그에 대한 연구를 마땅히 했어야 했고, 그의 뜻과 사상을 재해석했어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장공 김재준의 연구와 평가는 비교적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만우 송창근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다음의 두 가지로 그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만우 송창근은 많은 글을 남길 수가 없었다. 지금 남아 있는 그의 글들은 대부분 모두가 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의 글들이고 해방 후의 그의 신학적 작품은 거의 찾을 수가 없다. 해방 후 격동기적이며 전환기적 사회 속에서 교회의 분열을 막아야 했고 교회 정치적 일과 학교의 기초를 놓는 학교 경영의 업무로, 게다가 6․25 전쟁 때 납북되었으므로 그는 글을 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까지는 그에 대한 연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장공 김재준이 교단, 학교, 한국 신학계,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에 끼친 영향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만우 송창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만우 송창근에 대한 연구를 필요로 한다. 지금의 시대가 그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신대학교와 한국 기독교장로회는 새 천년(new millenium)을 전망하면서 정체성 재확립을 해야 할 상황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대기적인 시간이 흘러가면 정체성이 퇴색되거나 변질될 가능성이 있게 되는데, 이때가 위기의 때요 동시에 재도약의 때가 되는 것이다. 한신대는 그 설립 목적과 이념에서 이탈해서는 안 될 것이며, 기장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망각하고 가나안 땅에서 바알신을 섬기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하나님과의 계약과 출애굽의 사건을 재해석하였듯이 우리는 장공 김재준과 더불어 만우 송창근의 삶과 사상을 재해석해서 그것을 우리의 방향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역사 기술이 과거의 재해석을 통해 미래를 창출하기 위한 현실극복의 작업이라면, 만우 송창근은 비록 한 시대를 살고 갔으나, 그의 생각과 이상은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민족사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고 또 역사의 전환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