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만우 송창근 목사의 납북 6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고자 주재용 박사(한신대 전 총장)의 기고글 ‘만우 송창근의 성빈의 삶과 사상’을 총 1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경건과신학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는 주 박사는 그의 제자 장공 김재준과는 달리 연구 및 평가에 있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송창근을 오랜 기간 연구, 지난 2008년 말에는 송창근 평전 『벽도 밀면 문이 된다』(송우혜 저·생각나눔)를 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편집자주
Ⅲ-2. 말씀의 신학
▲주재용 한신대 명예교수(한신대 전 총장) |
송창근은 1933년 발표한 “오늘 조선교회의 사명”에서 “말씀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즉 교회는 철저히 ‘말씀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교회는 사회문제, 노동문제, 평화문제, 국제문제 등을 논하거나, 인간의 지식이나 사상을 논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중심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이요 중생의 복음인 이 말씀이 교회의 중심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읽어야 하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결코 사회, 노동, 평화, 국제, 인간의 지식이나 사상에 대해서 교회는 무관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 당시 사회문제, 노동자, 세계평화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또 그를 위해 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는 것은 교회의 모든 사회적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말씀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는 것이 사명이지 철학이나 정치, 경제학을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말씀’이 없고도 교회가 있을 수 있다면 그 교회는 거짓 교회요 생명이 없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 말씀 없는 교회는 교회 아닌 교회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아닌 교회, 즉 ‘말씀’이 없는 교회는 존재할 권리가 없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송창근은 사회 현실 문제에만 너무 관심을 갖고 사회운동을 곧 신앙운동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신앙운동은 철저하게 성서를 근본으로 한 운동이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사회개량이나 민족운동이나 문화 사업을 조건으로 하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 사회나 농촌이나 민족 운동은 예수를 믿는 것의 목적이 아니요 결과입니다.”
송창근에게 있어서 ‘말씀’은 신앙 자체였다. 즉 우리의 신앙은 말씀의 신앙이었다. 말씀이 없으면 신앙도 없다. 이 말씀은 영원불변하고 생명 있는 말씀이다. 따라서 말씀을 떠나서는 신앙은 생명을 잃게 된다. 생명이 없는 말씀에 근거한 교회는 교회일 수가 없다. 교회가 있는 곳에 믿음이 있고 믿음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게 된다. 말씀이 없는 신앙은 “소위 이상주의 철학의 속류(俗流)와 합동 운동이 되기 쉽고, … 자기의 경험이나 체험, 자기 주관에 기초한 신앙이 되기가 쉽다.” 그러므로 말씀이 있는 곳에 건전한 신앙이 있을 수 있고 말씀에 근거한 신앙만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인 것이다.
송창근이 이렇게 말씀을 강조하는 이유는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역사적 전통적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하는 말씀이요 신, 구약에서 구체화한 인격자인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신, 구약을 생명의 말씀의 책으로 믿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 그리스도는 곧 말씀이니 … 우리의 신앙 자체인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는 다만 역사적 인물, 예언자, 랍비가 아니라 그 자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예수입니다.
예수는 살아계신 인격자, 구약을 통하여 신약에서 구체화한 예수입니다. … 성경이 귀하고 가치있다 함은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됨을 증거하는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성경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기 때문에 성경을 더욱 귀히 여기고 생명 같이 사랑하는 바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송창근의 신학이 개혁파신학전통(The Reformed Theological Tradition)에 철저히 근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개혁파신학은 철저히 ‘말씀의 신학’이었다. 너무 지나치게 말씀만을 강조한 까닭에 축자영감론까지 주장하게 되었지만, 말씀과 설교를 강조하는 것은 개혁파교회의 특성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이렇게 성서, 곧 말씀을 강조하면서도 송창근은 축자영감론에 빠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책으로서의 성서, 문자로서의 말씀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으로서의 말씀, 하나님의 생명 있고 역사적인 계시로서의 말씀을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고 거기서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말씀에 근거한 신앙을 그는 개혁자들이 절규한 “성서적 신앙”이라 하였다.
이 성서적 신앙은 성령의 해석에 의해서 성서를 근본으로 하는 신앙인 것이다. 칼빈의 용어를 빌면 “성령의 내증”에 의해서 성서를 깨달은 신앙인 것이다. 이와 같은 신앙에 근거한 설교자라야 참된 설교자요 그가 곧 진정한 신학자인 것이다. 그는 평양신학교 졸업예배에서도 우리 사회에 요구되고 있는 지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권위와 예수 자체에 대한 높고 맑은 이해를 가진 설교자”라고 설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