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만우 송창근 목사의 납북 6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고자 주재용 박사(한신대 전 총장)의 기고글 ‘만우 송창근의 성빈의 삶과 사상’을 총 1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경건과신학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는 주 박사는 그의 제자 장공 김재준과는 달리 연구 및 평가에 있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송창근을 오랜 기간 연구, 지난 2008년 말에는 송창근 평전 『벽도 밀면 문이 된다』(송우혜 저·생각나눔)를 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편집자주
Ⅲ-4. 민중신학
▲주재용 한신대 명예교수(한신대 전 총장) |
한국의 민중신학은 세계적으로 한국적 신학을 대표하고 있는 신학의 하나이다. 이 신학은 1970년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 생활이 전 현장에서 억압받고 소외된 계층(민중)을 새롭게 발견하고 형성된 신학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삶의 현장에서 성서를 다시 읽었고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을 성찰했으며 예수를 재발견하였다.
그런데 70년대 한국 교회가 창출했다고 생각한 민중신학을 우리는 1920년대 송창근의 글에서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23년에 『신생명』에 “사회 문제에 대한 예수의 기여”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이 글은 그의 민중신학의 대표적인 글이다. 이 글에서는 ‘민중예수’를 부각시키고 있지만, 그는 단지 논리적 이론적 민중신학자가 아니었다. 이미 위에서 밝혔듯이 특히 부산에서 그는 ‘거지대장’을 하면서 민중신학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는 실천적 민중신학자였다.
송창근은 복음서에서 “유대적, 중세적, 교회적 형이상학적 그리스도”가 아니라 “민중 사이에서 민중을 위하여 생활하신 위대한 인격자 예수” 를 발견하였다. 그는 독일의 신사회운동가이며 목사인 나우만의 말을 인용하면서 예수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민중의 사람’”이라고 한다. 예수가 남의 집 마구간에서 나신 것도, 남의 십자가 이외에서는 죽으실 만한 자리가 없었던 것도, 남의 무덤 밖에는 장사될 곳이 없었던 것도, 머리 둘 곳도 없었던 그의 삶은 성빈의 삶이요 민중의 삶이었다. 송창근은 예수가 “일개 프롤레타리아, 일개 평민, 일개 노동자, 일개 무산자”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표현은 현대 민중신학에서도 사용하기를 주저하는 것들이다. 지난날 보수계통의 교회와 정부가 민중신학을 남미 해방신학과 동일계통으로 보면서 그것을 혁명신학, 공산주의적 신학이라고 비판했을 때, 한국의 민중신학자들은 의식적으로 민중은 프롤레타리아와 다르다고 주장했었다.
송창근은 예수의 교훈 가운데 농업, 노동의 비유가 있고(마 13:3-30, 막 4:26-29, 마 13:31-32, 47-50), 가난한 과부의 헌금의 가치(눅 21:1-4)를 말씀하신 것은 평민으로서 예수가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한 경험에서 나온 교훈이며,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농민들은 예수의 교훈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사명은 세상에서 학대받고 소외당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마리아는 그의 찬가에서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시고 높고 권세 있는 자들을 끌어내리시고 낮은 자를 높이시며 주린 자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자를 빈손으로 가게 했다”고 표현하였으며(눅 1:51-53), 예수 자신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이 자기에게 성취되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희년의 선포이기도 하지만, ‘해방자 예수’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눅 4:18-19).
송창근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의 대답, 즉 “맹인이 보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된다”(마 11:2-5)는 대답이 곧 예수의 사회적 활동의 요청이었다고 하면서 예수의 산상설교 핵심도 가난한 자의 축복이었다고 하였다. 그는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이 거리의 가난한 자, 불구자, 맹인, 절뚝발이 등이었다는 사실(눅 14:15-24)에 주목하였다. 예수 주변의 사람들은 정치가도, 학자도, 종교지도자도 아니었고 “사람들”, “무리들”이었다.
그러나 송창근은 예수가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의 위로자이며 부자와 권력자에 대해서는 비판자였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예수를 단지 ‘극단적 사회혁명가’로만 보려는 입장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예수는 결코 “편파 정치가”도 아니었고 “무정부주의자”도 아니었으며, “유신론적 사회주의자”도 아니었다. 예수가 가난한 자를 동정하고 부자를 비판하고 탄핵한 것만으로 그를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너무 피상적 결론일 수 있다. 그리하여 송창근의 결론은 예수의 교훈과 삶에 사회적인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한 면에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인류사회의 개조보다도 인간의 영혼 구원이 예수의 최대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분명히 정치, 경제 등 사회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 경제 전문가적으로 그 문제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정치, 경제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인간 자체에 관심을 두고 사회문제에 접근하였다. 송창근의 이와 같은 민중신학의 성서적 근거는 마태복음 22:37-40의 말씀이라고 할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으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은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그러므로 그의 민중신학은 ‘사랑의 신학’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