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만우 송창근 목사의 납북 6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고자 주재용 박사(한신대 전 총장)의 기고글 ‘만우 송창근의 성빈의 삶과 사상’을 총 1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경건과신학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는 주 박사는 그의 제자 장공 김재준과는 달리 연구 및 평가에 있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송창근을 오랜 기간 연구, 지난 2008년 말에는 송창근 평전 『벽도 밀면 문이 된다』(송우혜 저·생각나눔)를 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편집자주
Ⅲ-5. 민족교회의 신학
▲주재용 한신대 명예교수(한신대 전 총장) |
송창근의 뜻은 늘 ‘조선교회’에 있었다. 그가 남달리 ‘조선’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미 앞서 그의 생애에서 언급했듯이 지리적으로 독립우국지사들을 많이 대할 수 있었던 마을(웅상)에서 태어났으며 실제로 간도에 가서 독립운동가 이동휘 문하생이 되었을 때부터 싹이 터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민족교회’에 뜻을 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김재준은 그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그는 유머에 능했고, 인정다웠고, 창의적이었고, 용감했고,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내 민족을 위해서는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져도 좋다’할 만큼 민족애에 불타는 애국자였다. 그는 선교사 기관에서 일하기에는 너무 주체적이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우리 민족 종교로서의 기독교, 생생한 그리스도 모습의 신학 교육 기관을 구상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송창근의 신학교육의 깊은 이념을 발견한다.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 민족 역사에 구체화되는 그리스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민족의 지도자로서 교회 목회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육이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1941년 만주 목단강시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이기병 목사를 그가 찾아가서 한 말에서도 나타난다.
“이제 우리 교회는 서양선교사들에게 의지할 수도 없이 되고 의지해서는 안될 시기에 왔어요. 우리 나름대로의 신학을 수립하고 우리의 정신과 피가 엉킨 교회 초석을 세워야지요. … 다음의 올 때를 위하여 우리도 똑똑한 목회자들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지도자는 결국 교회 목회자가 되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때가 올 것이 올시다.”
1934년 한국교회가 희년을 노래하고 축하하고 있었을 때, 송창근은 희년을 “噫年”이라 하면서 한국 기독교의 위기를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의 교회가 사회와 민족을 기독교 진리로 이끌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자체가 그 능력을 상실한 데서 온 것이다. 처음 기독교가 한국인에 의해서 수용되었을 때 기독교의 복음은 한국인에게 생명의 양식이었고 기독교는 한국인의 희망이었으며 기독교에 의해서 민족의 비극이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한국인은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송창근에 의하면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사회는 기독교에 대해서 무관심해졌다. 이것은 사회가 기독교에 대해서 희망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사회적으로 신뢰감을 상실했다.
“…요즘에는 조선 사회가 우리 기독교에 향하여 逆도 않고 和도 않고 그저 무관심입니다. 오히려 힐책보다도 냉소, … 저항보다도 묵살이 현대 조선 사회가 기독교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송창근은 한국교회가 ‘말씀’을 잃었으며, 교양이 없고 따라서 “無判斷主義”에 빠졌고 심판과 사죄가 없는 사랑, 신앙 양심과 엄격한 판단도 없는 사랑만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는 한국교회 때문에 부패해가고 공도(公道)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한국교회는 진리에 등한시하여 민족지도 이념을 제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역으로 사회가 교회를 지도하게 되었다. 송창근은 교회의 진정한 사명은 민족의 지대한 요구에 바르게 응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민족이 교회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도 아니며 경제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명령, 신앙생활의 범위 안에서 민족의 종교적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송창근이 ‘그리스도의 명령’을 ‘민족의 요구’보다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은 민족의 요구와 일치하여 나타날 수 있으나, 민족의 요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명령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조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명령과 민족의 명령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민족에 대한 교회의 진정한 봉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족에 대한 진정한 교회의 봉사는 하느님으로부터 위탁받은 복음과 하느님의 은총을 증거하는 데 있다. 내 민족이건, 남의 민족이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
복음 때문에 마틴 루터는 자기 민족에게 심판을 받고 요한 후스는 산 채로 불에 굽혀 죽었다. 조선의 신앙성도가 진정 복음에 용감스러울 때, 조선민족이 나와 너를 옥에 가두고 단두대에 앉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
그러므로 조선 교회 지도자들은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위탁받은 한가지 ‘복음’으로써 민족의 요구에 대답하는 것이 민족에 대한 진정한 교회의 봉사요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송창근의 민족교회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민족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증거하여 민족에게 새 희망과 창조적 역사를 구현케 하는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는 민족주의자였으나 배타적 고립적 민족주의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철저히 그리스도 세계 속에서의 민족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그의 민족교회 신학은 김교신의 ‘성서 조선’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