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 스님과 대담 나누고 있는 폴 니터 교수(유니온신학교) ⓒ대한불교조계종 |
종교다원주의 연구로 유명한 세계적인 신학자 폴 니터(Paul F. Knitter, 71) 유니온신학교 교수가 지난 31일 방한해 대구와 부산 등지를 돌며 대담과 강연하고 있다. 가톨릭 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불자-그리스도인’(Buddhist Christian)이라 부르는 그는, 자신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종교적으로 ‘하이브리드’(hybrid, 혼종)라고 말했다.
독실했던 그의 어릴 적 꿈은 가톨릭 선교사. 그는 가톨릭 수도회에 가입해 경건하게 생활하며 “그리스도의 빛과 은혜의 바깥에는 죄와 어둠만 있다고 믿었다.” 또 “예수님 없이 구원 받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타 종교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타 종교에 대해 알아가고 불자나 무슬림, 힌두교도들을 만날수록 “죄와 어둠만을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혼란의 와중에 있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 공의회는 가톨릭 외 다른 종교에도 진리와 선이 있고 그리스도인들은 이들 종교와 대화해야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종래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개방적인 가톨릭으로 나아가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이후로 그는 종교간 대화를 주제로 연구하고 불교 참선에 정진하는 등 타 종교에 깊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종교 중에서도 불교에 많이 끌렸다”며 “불교는 학문의 대상을 넘어 내 자신과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그는 “불교의 안경을 쓰고 기독교 신앙을 바라보았다. 그 안경 없이 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예수님과 기독교 신앙의 내용들을 볼 수 있었다”며 “의도하지 않게,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불자-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1일 불교 사찰 동화사에서 열린 강연에서 니터 교수는 “우리 모두는 하나 이상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하이브리드”라고 말했다. 자신은 “예수님과 부처님 둘 다에 의해 양육되는 ‘영적 하이브리디티(spiritual hybridity)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종교적 다중 소속은 아시아에서 이미 오래된 전통이라며 “아시아인들은 일상 생활에서 불교, 도교, 유교, 토착종교의 신앙과 실천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는 체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폴 니터 교수는 저서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1985)을 통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작년 7월
그는 이번 방한 일정 동안 한국의 대표 선승 진제 스님 및 동화사 금당선원 수좌스님들과 대담을 나눴고, 5일에는 국내 신학자들과 스님들이 참여하는 공개토론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