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택지개발촉진법이란 재개발정책으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건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는 임대교회 목회자들의 고통을 호소하는 집회가 열린다기에 종로 5가 백주년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눈치 보는데 도가 트인 보수 교회 목회자들이 밥 그릇을 운운하며 자기네들 권리를 적당히 외치다가 싱겁게 집회가 마무리될 것으로 지레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판이었을까. 집회 장소에는 재개발로 인해 쫓겨날 위기에 있는 임대교회 목회자들 뿐 아니라 가난한 서민들도 다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이 들고 있는 플랭카드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잘못된 재개발정책 방치로 국민에게 고통준 정부와 국회는 사죄하라!" "가난한 사람 쫓아내는 잘못된 재개발악법 즉각 폐지하라!" "교회를 포함한 모든 종교기관의 차별을 전면 철폐하라!" 정부를 향한 분노마저 느껴질 문구들이었다.
하지만 애써 오판이길 부인했다. 보수 교회 목회자들이 통상 그래왔던 것처럼 자기네들의 이권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뤄볼 때 서민들마저 그런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충분히 동원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여전히 기자에게는 이들이 대변하려고 하는 서민들의 권리보다 그들 목회자들의 권리가 우선인것 처럼 보였다. 이번 집회를 주최한 한기총 재개발대책위원회(위원장 서경석 목사)의 진정성을 따져묻고 싶었다.
"재개발정책의 변경을 요구하며 일곱 번이나 집회를 하고 네 번이나 길거리에 드러눕는 등 강경투쟁을 하여도 청와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게 부담을 줄까봐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 기독교가 무조건 정부 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서경석 목사)
"처치스테이, 홈스테이 외치며 정부의 도움으로, 국민들의 세금으로 종단을 유지하고 발전시킨 생각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그것은 우리 기독교의 전통과도 배치된다. 어렵더라도 힘들더라도 우리의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중략)...대형교회 목사들부터 악을 버려야 한다. 악을 버리고 선한 일을 해야 한다."(이광선 목사)
자기네들 권리만 외치는 이전투구의 장이 될 줄 알았지만 기자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일반적으로 보아 온 여타 보수 교회 집회와는 사뭇 다른 진정성이 묻어나 있었다. 무엇보다 부인하기 어려운 증거는 설혹 동원이 되었다 하더라도 가난한 서민들이 함께 한 것이었다. 그리고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반복적으로 들린 "교회는 가난한 자들의 편에서"란 구호는 시종 기자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시국기도회를 마친 한기총 재개발대책위원회 관계자들 수백여 명은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시작해 종묘 앞까지 이어지는 가두 행진을 했다. 행진에 앞서 출발을 알리는 조성기 목사(예장통합 사무총장)의 기도도 가관이었다.
"내 집이 없어서 교단에서 사무총장 사택으로 내 준 곳에 살고 있다. 길음 뉴타운 지구인데 오늘 재개발로 인해 피해를 입는 분들을 생각하니 이곳에 계속 있어야 할지 나가야 할지 정말 고민이다." 재개발로 인해 쫓겨나는 서민들과 임대교회 목회자들 앞에 뉴타운에 살고 있는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공개한 것이다. 하지만 "뉴타운에서 나가야겠다"는 결단이 못내 아쉬웠다.
영하의 날씨. 카메라를 둘러 매고, 양손을 후후 불어가며 이들의 가두 행진을 연신 촬영하던 기자는 무엇엔가 얻어 맞은 듯 갑작스런 충격에 멈춰섰다. 힘 없고 가난한 서민들의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보수 교회 목회자들. 이 아름다운 행진에 있어야 할 진보 교회 목회자들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