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확장의 역사만큼이나 교회분열의 역사도 끊임없다. 한국의 장로교총연합회에 소속돼 있는 장로교만 해도 서른개에 달하니 종교개혁가들이 들으면 깜짝놀랄 일이다. 그래도 역사상 가장 큰 교회의 분열 중 하나는 역시 로마-가톨릭으로부터 프로테스탄트가 분리되어 나온 일이다.
그런데 최근 연세대 조용석 강사(교회사)가 최근 그의 논문에서 "(프로테스탄트주의의 분리는) 교회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된 교회일치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감행되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끈다. 이 논문은 연세「신학논단」62호(2011년 1월)에 '16세기 개혁교회 프로테스탄트주의 및 현대 교파간 대화에 대한 에큐메니칼적 해석'란 제목으로 실렸다.
조 강사가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큰 교회분리의 역사를 두고 '교회일치'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황제화 제후들로부터 신학적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해 했던 일이 "자신들의 신학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고대교회의 신학적 전통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시도"했다는 것에 있다. 분리되어 나오면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대신 전통을 더욱 붙들었다는 부분은, 예수가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닌, 완전케 하려' 함이라는 말을 상키게 하기도 한다.
종교개혁자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조 강사에 따르면 루터는 교회의 존재요건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두가지의 성례전이 집행되는 곳"을 들었다. 츠빙글리는 "공동의 신앙고백만 존재한다면, 전 세계 모든 곳에 설립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리스도의 교회로 인정된다는 개혁자들의 처음 정신은,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개신교가 에반젤리컬과 에큐메니컬로 두 진영으로 크게 양분된 후, 에큐메니컬 진영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계승되었다. 에큐메니컬 진영의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핵심미션은 '신앙과 직제' 그리고 '생활과 봉사'다.
그런데 에큐메니컬 교회협희회 WCC가 '신앙과 직제' 운동을 시작한 주요 신학적 동기가 흥미롭다. 조 강사에 따르면 교회들은 역사적으로 몇차례 일어났던 굵직한 분열들을 반추해보면서 "교회분열이 단순히 신학적인 차원이라기 보다 교회정치적-문화적 차이에 의거하여 발생"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암묵적으로 이를 인정했다. 그리고 교회는 더 나아가 "(교회가)이 사실을 (정직하게) 인식한다면 다양한 기독교의 교파가 공유하는 공동의 교리를 합의·선언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고 조 강사는 설명한다.
WCC의 '교회의 사귐' 운동에서도 교회일치의 메세지를 찾을 수 있다. 여기서 교회의 사귐은 단순한 강단교류를 넘어 에큐메니칼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기독교의 각 교파의 교리적 다양성을 수렴하여 교리적 합의의 가능성을 도출하는 작업"이며, 이는 획일화된 교리의 표본을 산출하기보다 "오히려 동일한 의미의 메세지를 다른 방식으로 해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할 수 있다고 조 강사는 설명한다.
조 강사의 이번논문의 핵심은 결어에 그가 쓴대로 "다양한 컨텍스트 속에서 표현되는 기독교 복음의 진리는 형태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 일치할 수 있음"을 기독교의 역사적 사건들과 정황들을 통해 증명했다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