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박사 ⓒ베리타스 DB |
사도신경이라는 표현을 풀어서 말하자면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신조”로서, 나라에 대한 충성심에서 우러나와 입에 담겨진 다짐이 ‘국가에 대한 신조’라는 점과 비교할 수 있겠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입에 담는 신조는 철저한 신앙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도신경이라는 말의 기원은 무엇보다도 예수의 제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예수의 ‘열 두 제자’를 두고 흔히 ‘열 두 사도’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사도’라 함은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고 다닌다는 ‘전도의 사명’이 보다 부각된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제자라는 말은 예수님을 선생으로 모시고 따라다녔다는 측면이 강하다.) 예수님의 열 두 사도들은 예수 승천(사도 1,6-11) 이후 전 세계를 향해 전도를 떠났고 각각 자기가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이런 전통을 물려받아 중세에 열 두 사도를 그린 그림에는 으레 그들의 고유한 신분과 개성을 밝히는 글 띠가 한 구절씩 붙여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시간 중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참 믿음을 다지는 신조로 바치는 사도신경은 모두 12개의 내용으로 되어 있고, 이는 바로 열 두 사도의 고유한 상징들이다. (원래 ‘상징’이란 ‘심볼론’이라는 그리스어에서 따온 말로 ‘~을 알아보게 만드는 표시’라는 뜻을 가진다.)
사도신경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지 약 천년 후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개혁자들 역시 비록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모습에는 반대했지만 사도신경만은 공동의 신앙고백문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동방 정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을 거부하고 개개 교회마다 나름대로의 신앙고백문을 만들어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개신교의 기존 교단들 중에서도 어떤 교단은 사도신경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그리스도의 교회).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 자리에서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가 맹수 밥이 되었던 로마 교회의 신앙 선배들. 이런 끔찍한 박해의 상황에서 매주 숨어 모여들어 지하무덤에서 사도신경으로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대신했던 그들의 믿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에 달려 철저한 고통을 당하신 분, 그러나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하늘까지 높아지신 분,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을 졸지도 쉬지도 않고 지키시는 분, 우리들의 신앙공동체를 지켜주시는 분. 아마 지하 무덤에 모여 입을 모아 ‘사도신경’을 바치는 이들에게는 그 글자 하나하나 마다 가슴에 사무치게 와 닿아 눈물로 맺혀졌을 것이다.
우리를 구해주실 분은 단지 그분 한 분 뿐...비교적 편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로서는 로마교회 선배들의 심정을 헤아릴 길이 없기만 하다.
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