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도 원하는 왕복 10차 고속도로 같은 탄탄대로의 뻥 뚫린 인생의 길을 쉽게 주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울지마 톤즈>로 잘 알려진 이태석 신부의 <친구가 되어주실래요?>에 나오는 구절이다. 비포장도로였던 곳에 길이 뚫리면서 이전에는 없던 교통사고 환자들이 급증하는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이태석 신부는 "평탄한 길에만 집착하는 고집스러운 인간을 위해 골고다,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은 아닌지?" 라고 물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제주도에서 목회를 할 때에는 작은 길들을 많이도 다녔다. 심지어는 길도 아닌 곳도 많이 걸어다녔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가면서 만났던 모든 것들로 인해 참으로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내 인생의 길이 탄탄대로이길 늘 바랐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삶에 대해서 하나님께 질문을 던졌다. "왜?"라고.
그러나, 지나고 나서야 무슨 문제가 있었고 왜 탄탄대로가 아닌 구불구불한 길이 하나님의 선물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픔 혹은 내가 보고 싶지 않고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을 겪게 하시면서 성장시켜 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순간에 감사하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여전히, 그것을 안다고 하면서도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목회자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본다. 1995년 목사안수를 받은 후, 총회교육원 출판부, 한남교회 부목사를 거쳐, 잠시 캄보디아 선교사를 고민하며 그곳에서 생활하다가 제주도 종달교회 담임목사로 갔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총회본부 문서선교부장을 거쳐 다시 고향과도 같은 총회교육원 출판부장으로 돌아왔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으며, 나이가 들면 된다는 원로목사와 은퇴목사 혹은 명예목사(없어진 제도도 있지만)를 제외하고 모든 목사직은 다 감당해봤다.
그러니까, 부목사로부터 담임목사, 협동목사, 기관목사, 무임목사 등등....그리고 그렇게 자리를 옮기는 과정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일까 고민도 했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들이 없지 않았다. 현장목회를 원했지만, 이상하게도 기관목회 쪽으로 하나님은 이끄셨다. 그리고 목회현장이라면 어디나 그렇겠지만, 기관목회의 현장은 조금 덜 인간적이며 행정적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새 10년 이상을 기관목회를 하고 있으니 이것도 복이려니 받아들인다.
어느 곳이나 그렇겠지만, 기관목회를 하면서도 고민이 많다. 개인적인 고민도 있고, 기관의 문제로 인한 고민도 있다.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도 있고, 풀 수 없는 문제도 있으며 옳은 방향이 어떤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면서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데 침묵하는 상황도 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타협을 하는 것일까? 그냥, 세상살이 그려려니 하고 관망을 한다.
어쨌든, 탄탄대로가 아니어서 힘들때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이 길을 가라고 하신다. 그 이유, 그 까닭을 엣날을 회고하듯 볼 수 있는 예지력이 있다면 더 좋을까? 아니, 차라리 싱거워지지 않을까? 차라리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매력이 있는 것이리라.
현장목회자에 비해 기관목회자들은 교인들과 만나는 시간이 적다보니 사례비 등이 교인들의 헌금이라는 생각이 피부에 와닿지 않을 때가 잦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늘 그런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어떤 헌금이든지 간에 그리스도인의 경제정의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기관목회를 하든 현장 목회를 하든 목회자로서 받는 사례비는 교인들의 피땀어린 헌금이므로. 그래서, 기관목회를 하거나 현장 목회를 하거나 교인들의 헌금을 개인돈처럼 생각하는 목사들을 혐오한다. 그것이 능력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혐오하고, 교인의 피땀어린 헌금으로 기껏 대형교회건물이나 만들던지 연예인이나 부흥사 불러서 거액의 강사료를주고 쇼하는 것도 싫어한다. 물론, 개인적인 성향이다. 내가 다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도 투명한 재정의 운영이 되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바램인 것이다.
어느 개척교회 목사님의 글을 읽었다.그 요지는 개척교회를 하다보니 '돈이 없어서' 기가 죽어서 고향에도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읽고 조금은 잔인한 것 같지만 '왜, 목사가 돈이 없다고 기가 죽어야 하냐고'물었다. 목사는 돈의 유무로 기가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신실한 종인지 아닌지로 기가 죽고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그런데...생각해 보니 잘 나가는 목사들(?),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목사들, 그래서 닮고 싶어하는 목사들과 그런 교회들....심지어는 모델로 정해 놓은 목사들과 교회들이 과연 제 역할을 하기는 하는 것일까 싶다. 그런데도 그저 외향만 보고 따라가려 하니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는가 자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탄탄대로, 그 길을 원하시는지...그 길도 길이지만, 골고다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를 메고 가는 길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탄탄대로일지는 더 고민해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우리 기장교회 목사님들만이라도 탄탄대로가 아닌 제대로 된 길을 추구하며 살아가면 좋겠는데 과연 우리 기장에도 희망이 남아있는지 의아할 때가 많다. 그냥, 푸념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말하지 못하는, 선한척 하지만 더 악독하고도 음흉한 나의 대한 푸념이다.
글: 김민수 목사(기장 총회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