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케냐 신학교서 보낸 14년…그가 만난 하나님은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인터뷰 -제1편-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될 줄은 몰랐다. 신학교의 교수로 재직해 명예교수로 은퇴한 후에도 가르치는 일이 기뻐 혼쾌히 수락해 떠난 길이었지만 14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14년 간의 타국에서의 생활이 살아왔던 날 만큼 의미가 깊었다고 회고했다. 케냐에서 만난 하나님이 그토록 그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는 것이다.
 

동부 아프리카 케냐의 키쿠유(Kikuyu)에 위치한 케냐에서 셋째 가는 PCEA(Presbyterian Church of East Africa) 산하 장로교신학교에서 교육 선교사로 14년 간 재직하다 지난 2005년 고국으로 돌아온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의 이야기다.
 

케냐에는 당시도 그렇지만 지금도 신학을 가르칠 교육자가 부족하다. 이장식 교수가 떠난 1990년 말에도 그랬다. 은퇴교수로 비교적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던 이 교수는 케냐의 딱한 교육 사정에 공감하고, 그 날로 케냐로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안양 대신학교에서 유아교육과 부교수로 재직하던 아내 역시 이 교수의 뜻을 따라 교편을 내려 놓고, 미지의 땅 동부 아프리카 케냐행에 올랐다.
 

25일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위치한 한국기독교장로회 부설 광명의 집에서 인생의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는 이장식 교수(87)를 만났다. (광명의 집은 교단의 은퇴 목회자들을 위해 마련한 실버타운 같은 복지 시설이다) 케냐 선교사로 활동했던 지난 14년 동안의 얘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장식 교수는 기억 저편의 사건들을 하나 하나 되살려 냈고, 한번 말이 시작되면 끊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많은 얘기를 한 번에 담기가 어려워 이번 인터뷰 기사는 두편에 걸쳐 진행해 본다.
 

▲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를 25일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광명의 집에서 만났다. 87세의 고령임에도 그때 그때 뼈 있는 말을 던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김진한 기자 

- 케냐엔 언제 가신 겁니까.
 

“66세에 은퇴를 하고, 4년 뒤에 케냐로 갔으니 70세 때 떠난기라. 1990년도에 케냐로 떠났지. 케냐의 동부 아프리카로 가서 PCEA 교단 총무 등과 면담을 갖고, 그시로부터 PECA의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쳤어. 아내는 유아교육과를 전공해 안양 대신학교 부교수까지 했지만 나를 따라 케냐로 갔지. 우리보다 5,6년 뒤질 뿐 케냐도 오랜 선교 역사를 지니고 있었어. 케냐에서 셋째가는 신학교였지. 첫째가는 신학교는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가 연합해서 만든 성바울신학교일거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신학교지.
 

신학생들은 보통 25세 이상을 뽑았어. 고등학교 졸업 후 교회가 선별을 해 총회에 보고를 하면 총회는 학생들과 면담을 하고, 심의를 거친 뒤 신학교 당국자들과 만난 다음에야 학생들을 학교로 보내어. 이때부터 학생들은 신학교에서 전적인 무료 교육을 받게되지. 총회가 장학금을 100% 조성해 주기 때문이야. 그래서 수업료도 안내고, 기숙사도 무료로 이용하고, 심지어는 필기도구까지 무료로 제공해 주는기라. 또 방학이면 집으로 왕복할 수 있는 비용도 지급했지. 결혼한 사람에 한해선 가족 수당까지 나왔어. 때문에 경쟁이 정말 심했지. 한 해 20명 정도를 엄선해서 뽑았어”
 

- 케냐 신학생들은 어땠나요.

“아프리카인들이 심지가 곧지 않고 약하다는 평을 하는데 그건 모르는 소리야. 결코 약하지가 않아. 한번 신학교육을 받은 학생들 중에는 낙오자가 없었고, 또 신학교를 졸업한 뒤 준 목사가 되고, 목사가 되어 아프리카 사막의 벽지에서 개척을 나가 목회를 하는 중에도 중도하차한 경우가 없었어. 전기도 없고, 불도 없고 식수를 구하기도 참 어려운 그런 곳에서 말이야. 아프리카인들 그리고 아프리카 목회자들 결코 약하지 않아.
 

그렇게 개척을 나간 사람들은 한달에 겨우 생활비나 받을까. 그래도 목사가 모잘라서 목사 한명이 5,6개 교회를 목회하는 것도 봤지. 전적인 헌신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기라. 한국의 신학교하곤 천양지 차이야. 또 신입생이라 받았는데 그 중에는 집사, 장로 등 오랫 동안 교회를 섬겼던 사람들도 있어서 기도를 한번 시켜보면 어떨 때는 안수만 안 받았지 목사란 생각도 들었지
 

한국 학생들 붙잡고 가르쳐봤는데 케냐에서 가르친 것 하곤 또 다르더라. 솔직히 말하면 한국 신학생들에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몰라도 케냐 학생들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더 넘쳤어. 케냐에는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교육선교사가 부족했어. 특히 케냐에는 고급 전문인 선교사가 많이 필요했지. 선생이라든지 의사라든지 농촌 개발 기술자라든지 축산 기술자라든지. 전문인 선교사들 말이야”
 

- 신학교 재정은 어디서 충당했습니까.

“신학교는 절대적으로 교단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하기에 따로 재정을 관리하는 일이 없었어. 그래서 신학교가 대체로 가난했지. 그래서 우리가 장학금을 조성해 봤어. 신학교가 재정을 학생들이 더 좋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말이야. 그 때 꽤 모금을 많이 했지. 여기 저기서 도와줬어. 7, 8년 정도를 모아봤더니 14(1억 5천만원)만불 상당이 된기라. 요긴하게 학교를 위해서 잘 쓰였지. 한인교회에서 많이 지원해 줬는데 돈 많은 권사나 집사들이 기부를 많이 했어.
 

또 재밌는 것은 졸업사진이 한장도 없는 거야. 당시 카메라 한대를 구입하지 못할 정도로 학원 형편이 넉넉치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학원 형편이 썩 좋지 못했지. 근데 우리 아내 박동근 선생이 사진찍는 걸 좋아했어. 어렵게 모은 돈으로 장만한 사진으로 찍은게 이 신학교의 첫 졸업사진이 됐지. 졸업식 광경도 참 달랐지”

▲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가 이용하는 책상. 책상 곳곳에는 케냐에서의 추억이 묻어있는 사진들이 눈에 띈다. 그는 14년 간의 케냐 생활이 이제껏 살아왔던 세월 만큼이나 의미 깊었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진한 기자

- 케냐 신학생들의 졸업식 광경은 어땠습니까

“한국에선 아마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됐을 법한 졸업식이 케냐에선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었어. 저마다 호명되면 즐겁고, 기쁨에 찬 나머지 아프리카 특유의 율동과 몸짓으로 벌렁 벌렁 춤을 추며 학장 앞으로 나와 졸업장을 받아갔어. 그런 졸업생들이 식장 밖으로 나오길 애타기 기다리고 있던 교회의 교인들은 마침 학교 뜰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졸업생이 졸업장을 가지고 나오면 저마다 졸업생과 목을 어긋 맞기고, 포옹을 하며 축하해 줬어. 그 때 교인들은 박수를 치며 축하의 찬송을 불렀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기라.
 

당시 교구엔 5,6개 교회가 있었어. 이 교구에 속한 교인들 50여 명이 그토록 기쁘게 졸업생을 반기고, 큰 솥을 가져다 국을 끓였어. 잔치 분위기였지. 보통 생각하기를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먹을 것 앞에선 질서가 없어지고, 혼란이 야기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질 않아. 차례 차례 줄을 기다리며 자기들 먹을 만큼 조금씩 받아갔고, 행여 음식이 다 떨어지더라도 그걸로 끝이야. 더 달라고 아우성 치는 법이 없었지. 참 인상 깊었지. 참 질서가 잘돼 있었어. 어느 졸업식 땐 비가 내리기도 했어. 그런데 비를 피하지는 않고, 졸업생을 축하하기에 여념이 없는 거야. 참 교회에서 훈련을 잘 받은 사람들이구나 생각했지”
 

- 케냐에서 교육자로서 가르치는 일만 했나요.

“우리가 있던 도시는 케냐의 조그마한 문화 도시 키쿠유(Kikuyu)였어. 케냐로는 최로로 중고등학교가 세워진 곳이지. 종합병원은 물론이고, 학교들도 많았어. 선교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이 이곳에 많이 들어와 사회 복지 선교 사업을 벌였던 탓이야. 꽤나 발달한 도시였어. 케냐의 초대 대통령도 아마 이곳 출신이었다지”
 

이장식 박사는 케냐 키쿠유의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는 한편, 교육 사업도 전개했다. 아내 박동근 선생의 권유 때문이었다. 처음엔 조그만 빈 집에서 유치원생들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 이 교육 사업은 나중에는 정부로부터 공식 허가까지 받는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건축하는 사업으로 확대됐다.
 

“아내 박동근 선생이 유아교육과를 전공해서 그런지 아이들에 참 관심이 많았어. 마침 키쿠유엔 초, 중, 고교는 있었어도 유치원은 없었지. 아내가 의견을 내서 주변의 빈 집을 수리해 케냐 유치원생들을 받았어. 클래스(Class)가 하나, 둘씩 늘더니 이거 안되겠는 거야. 아이들이 너무 많이 몰려 들어와 수용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기라. 그래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자비량을 들여 유치원을 짓기로 결심했지. 석조 건물이었고, 지붕에는 기와를 얹었어. 한국식 풍으로 말이야. 참 잘 지었지..잘 지었어”
 

이미 10여 년이나 지난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유치원을 지었던 그 때를 떠올리는지 지그시 눈을 감은 이장식 교수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수세식 화장실까지 구비한 당시로선 최고급 유치원이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정성스럽게 지어 놓고 보니 또 다른 문제에 맞딱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에 원비도 받으면서 유치원을 잘 꾸려나갔지. 그런데 이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거야. 초등학교가 많이 부족했던 탓이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싶은 아이들이 저리 줄을 서고 있는데 어떻하나 하며 생각 끝에 초등학교를 짓기로 했지. 문교부에서 쉽게 허락이 떨어졌고, 이곳 저곳에서 모금을 해서 초등학교를 지었어. 2층 짜리 석조였고, 학생들은 400여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어. 운동장도 꽤 넓었지”
 

이장식 목사와 박동근 선생의 교육 사업의 열매인 케냐 키쿠유의 Kimuri-Dwan 유치원과 Kimuri 초등학교는 지금 현지 장로교단인 PCEA가 인수, 현지 교사들을 채용해 학원 운영을 하고 있다. 케냐에선 정기적으로 학생들의 교육 평가를 위해 국가 차원의 시험을 치르는데 이 학교의 학생들은 항상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이 목사는 회고했다.


이장식 목사의 개척 사업은 그러나 단지 교육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젊었을 때부터 신학교의 강단에서 가르치는 교육자로만 있었고, 앞으로도 교육 선교사의 소명을 다하리라 다짐하고 있던 그에게 느닷없이 “케냐에 교회 개척을 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이 고국으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 교회 개척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교회 건축이라..칠십 평생 교육자로만 살았고, 교육자로 살다 갈 줄 알았는데 소속 교단(기장)인 서울남노회 남성교회에서 교회를 개척해달라는 부탁을 해온기라. 그리고는 교인들이 특별 헌금을 해서 모은 교회 건축 헌금을 보냈지. 그래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교회 예배당을 지을 때를 찾아 다녔어. 그러다가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헛간과 다름 없는 누추한 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예배를 드리는 광경을 목격한기라. 그런 다음 어쩌겠어. 바로 예배당을 짓기로 했지.
 

교회 터를 닦는데 교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왔어. 삯도 없었지. 당시 돈으로 2천 5백만원이었으니 교회 건축 비용으로만 딱 쓰면 남는게 없었어.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교회 예배당이 생긴다는 마음에 케냐 형제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도왔어. 그렇게 하루 만에 기초공사가 완료되고, 일사천리로 교회가 건축됐지. 석조 건물로 된 근사한 교회였어. 인상적이었던 것은 케냐 교회로는 아마 최초일 거야. 유리로 칸막이를 쳐 놓은 유아실을 만든거야. 아내의 생각이었어. 이 교회에서 나중에 소속 교단의 총회장까지 나왔다고 하지 아마...또 있지. 교회 꼭대기에 케냐 최초로 차인벨을 달았어. 예배시간을 알리는 차인벨 말이야”
 

이장식 교수가 축이 되어 케냐 형제들과 지은 이 교회 예배당에는 처음 50∼60명에서 400∼500명 정도로 교인수가 크게 불어났고, 이장식 교수의 말대로 이 교회 출신의 한 목사는 소속 교단의 총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교회 건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이장식 교수의 소식을 듣고, 그 후로도 이곳 저곳에서 교회 건축 부탁을 받은 그는 선교사의 심정으로 케냐의 낙후된 지역 곳곳에 교회를 세웠다. 때마다 건축 헌금이 들어왔지만 부족할 땐 자비량으로 교회 건축을 짓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교회 건축 얘기를 마친 이장식 교수는 이어 흥미롭다는 듯이 케냐 현지 교인들의 독특한 건축 헌금 방식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케냐 교회 교인들은 건축 헌금을 할 때면 내 교회 네 교회가 없었어. 친척의 어느 교회가 새로 교회를 짓는다고 하면 교회가 다르고, 교단이 달라도 발벗고 도와줬지. 이웃들도 단지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 충분했지. 그래서 한번은 건축 헌금 예배가 열리는 곳에 직접 찾아가봤어. 교회 헌금을 독려하는 연사가 3명이나 있더군. 한 사람씩 나와서 강단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내려올 때면 건축 헌금이 모아졌어. 교회 교인들의 먼 친척들부터 시작해서 이웃들까지 주머니를 털었지. 심지어는 지나가는 행인도 은혜를 받아 주머니를 터는기라. 케냐의 이런 교회 간 연합과 일치에 생각할 것도 많았고, 배울 것도 많았지. 한국교회랑은 천양지 차이였지”(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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