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북리뷰] 과학자의 눈으로 풀이한 성서
존 폴킹혼, 『성서와 만나다』(비아 刊)

입력 May 23, 2015 07:42 AM KST
▲존 폴킹혼의 『성서와 만나다』 겉 표지.
“성서가 오류 없는 문서라는 관념은 부적절한,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단지 남겨진 골동품에 불과하며 오늘날 이를 진지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큰 실수입니다. 성서는 교회가 예배를 통해 경험한 것과 그 속에서 형성되고 축적된 통찰들로 이루어진 전통과 더불어,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성의 힘과 함께 그리스도교 사상과 그리스도교적 삶을 위한 배경을 형성합니다.” (존 폴킹혼)

이론 물리학자이자 성공회 사제인 존 폴킹혼의 『성서와 만나다』(원제: Encountering Scripture)를 한 마디로 압축하면 과학자의 눈으로 풀어낸 성서이해다. ‘과학’ 그리고 ‘성서’를 말하면 물과 기름처럼 어울릴 수 없는 조합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시선은 오해다. 저자는 명료하면서 격조 높은 어조로 성서에 과학의 빛을 비춘다.
물론 이 책이 물리학의 관점에서 성서의 자구를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분석한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물리학자로서의 시선은 곳곳에서 빛난다. 그러나 무엇보다 빛을 발하는 대목은 저자의 역사인식, 그리고 학자로서의 정직성이다. 
“그리스도교는 역사 속에서 태동한 종교입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이루는 이야기들이 그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상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기 계시의 활동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특정한 사람, 특정한 사건을 통해 전해졌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성서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증거로서의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서가 우리에게 증언하는 이야기들이 지닌 역사적 정확도를 평가할 때에는 신중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본문 10쪽)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역사라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인간의 의식적 노력이 적극적으로 개입됐을 때, 비로소 역사는 시작된다. 저자는 성서 기록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의식 속에 하느님을 이해하는 능력이 발전해 왔음에 주목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성서는 역사문서다. 단, 인간 존재의 유한성으로 인해 절대자 하느님에 대한 이해에 완전히 도달하지는 못했고, 이런 불완전성은 첨단과학이 일상화된 21세기에서도 미결과제로 남아 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은 ‘가서 저 못된 아말렉족을 없애 버려라. 그들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전멸시켜라’라는 명령에 마음을 다해 순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꾸짖음을 듣습니다. 예언자 사무엘은 이 불순종의 결과로 사울이 이스라엘 왕좌에서 쫓겨날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복수심에 불타는 하느님의 모습과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한 예수의 모습을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을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러한 딜레마에 대처하기 위해 저는 성서에 담긴 계시에 관한 내용을 하느님의 뜻과 본성을 이해하는 능력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이해는 끊임없이 깊어졌지만, 결코 완전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본문 32쪽)   
성서는 하나의 도서관 
여기서 짚어두고 넘어갈 대목이 하나 있다. 저자가 물리학자이고, 자신의 전공지식을 통해 성서에 접근한다고 해서 “과학이 성서의 무오류를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류들과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르다는 점이다. 오히려 저자는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창조의 예를 들어 창조과학자들의 문자주의를 경계한다. 
“단호하게 문자 그대로 성서를 읽는다면 창세기에 담긴 내용은 분명 충분한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는 현대 과학 및 진화 생물학의 결론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본문 47쪽)  
저자는 먼저 성서라는 책 자체의 특성을 이해해줄 것을 당부한다. 동시에 텍스트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핵심 메시지를 놓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성서는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일종의 도서관입니다. 성서에는 시, 산문, 이야기, 역사, 법, 편지 등 매우 다양한 장르의 글이 있습니다. 성서를 존중하는 올바른 방법은 바로 이 장르의 문제를 인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성서 문자주의에 근거한 이른바 ‘창조론’은 애처로운 형용 모순입니다. 이 이론은 성서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텍스트를 확대하며, 텍스트의 장르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그 핵심을 놓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은 하느님의 분주한 6일간의 활동에 대한 유사·과학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그보다 더 심오하고 흥미진진한 무언가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 49쪽)   
창세기는 하나의 ‘신화(myth)’다. 여기서 언급하는 신화는 허구적 상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저자는 ‘신화’를 “이야기의 형태로만 전달할 수 있는 심오한 진리”라고 규정한다. 자, 그렇다면 저자가 창세기에 담겨져 있다는 심오한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
“고대 세계 사람들은 해와 달, 별들을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공을 들입니다. 천체가 창조의 장면에서 뒤늦게 등장하는 것은 천체가 하느님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같은 이유로 창세기는 당시 이교도들이 섬기는 신들의 이름이기도 한 해와 달의 고유한 이름을 쓰지 않고 큰 빛과 작은 빛이라고만 언급합니다. (본문 50쪽)   
저자의 시선은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인류의 타락을 풀이하는 대목에서 예리함을 더한다. 저자는 타락을 “하느님의 극에서 멀어져 인간 자신의 극으로 돌아서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금지된 과실을 먹게 하려고 뱀이 하와에게 그 과실을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녀의 하느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타락은 실로 ‘위를 향한’ 타락, 즉 앎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창조주와 동등해질 수 있다고, 그리하여 하느님에게서 독립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자주권 선언,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주장이야 말로 죄가 근본적으로 가르치는 바입니다. 우리가 창조주의 은총을 필요로 하는 피조물이라는 앎을 거부하는 것은 이후 인간이 지은 모든 죄와 그 죄 때문에 인간이 벌인 이기적이며 기만적인 행위들의 근원입니다. (중략) 이렇게 하느님에게서 돌아선 행동이 세상에 생물학적 죽음을 끌어들인 것은 아닙니다. 인류가 등장하기 수백만 년 전에도 죽음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돌아섬으로써 우리는 ‘사멸성’이라 부르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어서 썩고 사라지리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됨에 따라 슬픔과 고통을 얻게 되었습니다.” (본문 61~62쪽)   
사실, 성서를 읽다보면 현대적 우주론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요한복음의 말씀,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이루셔서, 그 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는 골로새인에게 보낸 서신서 말씀이 특히 그렇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만물’에 주목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화해는 우주적인 범위에서 선포된다”고 지적한다. 
끝으로, 이런 의문 한 가지 던져본다. 하느님이 창조한 궁극적 질서 속에서 과학과 신학이 만나는 지점은 과연 어디쯤일까? 
“우주는 그저 인간이 만들어내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 위해 137억 년 동안이나 계속된 서곡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은 각자의 가치가 있으며 자신이 성취해야 마땅할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이 창조 세계의 모든 것이 죽음과 허무로 끝난다는 것뿐입니다. 우리 인간이 지닌 시간의 척도로는 수십 년, 우주가 지닌 시간의 척도로는 수십, 수백억년 일뿐, 우주가 계속해 팽창하고 이에 따라 온도가 낮아지고 밀도가 옅어지면 그 결과로 탄소에 기반을 둔 모든 생명체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신학은 이 피할 수 없는 궁극적 허무를 말하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본문 18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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