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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CK·전남동부교회협 공동으로 여순항쟁 70주년 평화기행 진행
18, 19일 양일간....공동선언문 통해 여순항쟁 특별법 제정 촉구

입력 Oct 22, 2018 12:29 P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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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NCCK)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는 전남동부기독교교회협의회와 공동으로 18, 19일 양일간 “여순항쟁 70주년 평화기행”(아래 평화기행)을 진행했다.

올해로 여순항쟁 70주년을 맞이하는 가운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 위원장 남재영 목사)는 전남동부기독교교회협의회(전남동부교회협)와 공동으로 18, 19일 양일간 "여순항쟁 70주년 평화기행"(아래 평화기행)을 진행했다.

여순항쟁은 제주 4.3 진압을 위해 출병 명령을 받은 여수14연대가 동포를 학살할 수 없다며 항명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사건으로 여수를 비롯해 순천·광양·구례·곡성·고흥·벌교 등 전남동부지역 1만 5천 명 이상의 민간인 피해가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4.3의 경우 대통령이 세 차례나 공식 사과를 하는 한편 특별법을 만들어 국가 차원의 위령사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반면 여순항쟁은 제주 4.3사건과 직결됨에도 ‘군사 반란'이라는 오랜 낙인으로 여전히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NCCK와 전남동부교회협은 통한의 세월을 보낸 지역민들을 위로하고 여순항쟁의 뜻을 되새기고 확산시키고자 평화기행을 마련한 것이다.

이번 평화기행엔 NCCK와 전남동부교회협은 물론 광주지역교회협의회, 충남지역교회협의회 소속의 목회자와 평신도 약 40여명과 제주4·3유족회 약 40여명이 참여했다. 평화기행은 첫날엔 여순항쟁 유적지 답사와 주철희 박사의 강연이, 둘째날엔 추모예배 순서로 진행됐다.

NCCK 정평위, 전남동부교회협, 충남교회협, 광주교회협은 선언문을 내고 여순항쟁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여순항쟁 희생자의 절대다수인 90% 이상은 군경 토벌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왜 죽어야하는 지 영문조차 모른 채 학살당했다"라면서 "여순항쟁 시기 좌우익 이념 갈등으로 무고히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여순항쟁의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1) 여순항쟁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 2) 여순항쟁 학살자에 대한 명예회복 3) 여순항쟁을 바르게 기억하기 위한 역사박물관 설립 등을 촉구했다.

아래는 선언문 전문이다.

여순항쟁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엡 2:14a, 16)

오늘은 여순항쟁 70주기이다. 이 항쟁은 이승만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두 달 남짓한 1948년 10월 19일 발생해 1만 5천여 명 이상의 숱한 희생자를 남긴 채 여전히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여순항쟁은 정부의 이념 잣대에 따라 ‘반란,' ‘병란,' ‘소요사태' 따위의 부정적 명칭들로 막연히 알려져 있고, 기껏해야 ‘여수·순천 10.19사건'이란 애매한 이름으로 고교 역사교과서에 실려 있다.

여순항쟁은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해 출병하라"는 육군본부의 명령을 받은 여수 제14연대 소속 2천 여 병사들이 "동포를 학살할 수 없다"며 봉기함으로써 시작하였다. 여수 제14연대 병사들은 미군정과 군경 및 우익단체의 무자비한 토벌작전으로 제주에서 민간인 대량학살이 잇따르고 있음을 알았다. 여수 제14연대 2대 연대장을 약 한 달간 역임한 김익렬 영향 덕분이다. 그는 제주 제9연대 연대장을 역임하며 4·28 평화회담을 성사시켰다가 좌천당해 여수 제14연대 2대 연대장으로 잠시 복무하였다.

봉기군들이 내세운 두 가지 핵심 요구는 "1. 동족상잔 결사반대 2. 미군 즉시 철퇴"였다. 그들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 강행으로 분단을 낳고 이에 저항하는 동포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부당한 명령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일부 군인들이 정권을 찬탈하고자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니다. 여수와 순천을 비롯한 인근 여러 지역민이 이들의 봉기에 동조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평화로운 해결책을 도모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대규모 군경을 동원해 대대적인 토벌에 나섰고 아직 법령조차 없는 ‘계엄령'까지 불법 발동해 민간인 동조자들을 연행·구금·고문하고 심지어 즉결처리를 일삼았다. 그것도 모자라 이승만 대통령은 "남녀 아동이라도 일일이 조사해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여 반역적 사상이 만연하지 못하게 하라"는 담화문(1948. 10. 23)을 발표해 무고한 민간인 희생을 더욱 부추겼다.

여순항쟁 희생자의 절대다수인 90% 이상은 군경 토벌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왜 죽어야하는 지 영문조차 모른 채 학살당하였다. 더욱이 그 가족·친지들은 좌익으로 몰려 오랜 세월 공직에 나갈 수 없는 불이익을 당하며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이 같은 고통과 불행, 해묵은 상처는 이제 치유하고 털어내야 한다. 더 이상 구시대 산물인 이념갈등의 희생자들이 생겨나거나 한스런 응어리가 대물림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평화를 이루라(마 5:9)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남북화해와 평화번영, 더 나아가 조국통일을 갈망한다. 이런 민족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선 지난날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오욕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여순항쟁 시기 좌우익 이념 갈등으로 무고히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여순항쟁의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이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여순항쟁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실시하라.
하나. 여순항쟁으로 학살당한 분들의 명예회복을 시키라.
하나. 여순항쟁을 바르게 기억하기 위한 역사박물관을 설립하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
전남동부기독교교회협의회(NCC)
충남기독교교회협의회(NCC)
광주기독교교회협의회(N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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