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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주교좌성당·경동교회, 9일 연합예배 드려
올 해로 열 아홉 번째, 주낙현 신부 “교회 일치 새 방향 제시”

입력 Jun 11, 2019 12:30 PM KST

anglican

(Photo : ⓒ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제공 )
9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경동교회는 교환 예배를 드렸다. 이에 서울주교좌성당 주낙현 주임사제는 경동교회를 찾아 예배를 집례하고 설교했다. 두 교회의 연합예배는 올 해로 열 아홉 번째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주임사제 주낙현 신부)과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담임목사 채수일)는 2000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교환예배를 드린다.

서울주교좌성당의 경우 경동교회 성가대와 담임목사가 성당을 찾아 예배를 집례하며 경동교회 의식을 따른다. 최근 들어 두 교회는 공동성찬 기도를 함께 마련하기도 했다.

9일 성공회 주교좌성당과 경동교회는 교환 예배를 드렸다. 이에 경동교회 채수일 목사가 주교좌 성당에서, 주교좌 성당 주임사제인 주낙현 신부는 경동교회에서 각각 설교했다. 마침 이날은 성령강림절이기도 했다.

주낙현 신부는 이날 설교에서 "우리의 교환 예배는 한국 교계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무엇보다, 오늘 우리가 축하하는 성령 강림의 사건과 꼭 들어맞는 멋지고 아름다운 예배"라고 했다.

이어 "어떤 이들에게는 사소한 변화일는지 몰라도, 여전히 이념 논쟁과 세대 갈등으로 분열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에게는 큰 책무를 되새겨 주는 일이다. 아직도 갈라져서 서로 정죄하려고만 하는 교회들을 목격하는 처지에서 오늘의 이 예배는 교회 일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교환예배를 평했다.

또 "이미 경동교회는 정치적으로 엄혹했던 7-80년대에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새로운 삶의 문화를 만드는 모범을 보여줬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이를 목격하고 배웠던 서울주교좌성당이 잠시나마 80년대 말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증언자로 일어서기도 했다"며 두 교회의 역사를 회고했다.

아래는 주낙현 신부 설교 전문이다.

+ 나의 바위, 나의 구원이신 하느님, 내 머리의 생각과 내 입술의 말들이 주님 마음에 들게 하소서. 아멘.

오늘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의 교환 예배 안에서 여러분을 다시 만나게 되어 참 기쁩니다. 지난 19년 동안, 이 교환 예배를 통하여 늘 저희를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형제자매인 우리가 함께 모여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게 된 기쁨과 감사를 하느님께 돌려드립니다.

아울러, 서울주교좌성당 모든 교우를 대신하여 경동교회 교우 여러분에게 우정과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제 개인으로도 4년 만에 다시 여러분 앞에 서서 주님의 말씀을 함께 듣고, 성찬의 상을 나누게 되니 참으로 즐겁습니다.

우리의 교환 예배는 한국 교계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우리가 축하하는 성령 강림의 사건과 꼭 들어맞는 멋지고 아름다운 예배입니다. 지난 몇 해 동안은 우리 두 교회의 예배 전통, 그리고 교회력의 관습이 조금씩 달라서, 예배의 구조와 순서, 예배 색깔이나 행동이 서로 어울리지 않은 면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성령강림의 강력한 불꽃을 상징하는 홍색이 이 예배당과 우리를 함께 감싸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고민하던 참에 공동 성찬기도를 두 교회가 함께 마련하여, 목사님과 제가 함께 같은 빵과 같은 잔을 하느님께 들어 올려 바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사소한 변화일는지 몰라도, 여전히 이념 논쟁과 세대 갈등으로 분열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에게는 큰 책무를 되새겨 주는 일입니다. 아직도 갈라져서 서로 정죄하려고만 하는 교회들을 목격하는 처지에서 오늘의 이 예배는 교회 일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작년 교환예배 중에 주교좌성당에서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작년부터 두 교회는 빵을 담는 접시인 성반과 포도주를 담는 잔인 성작을 함께 가져와 섞어 쓰기로 했습니다. 제가 성찬상을 마련하는데, 경동교회의 도자기로 만든 성찬기 뚜껑이 제 옷에 걸려서 바닥에 나뒹굴고 산산이 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매우 당황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저와 함께 집전하던 채수일 목사님께서 뒤에서 느긋하게 웃으시며 수습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도 일어났습니다. 영성체를 다 진행하고, 남은 성체와 보혈의 잔을 예복실에서 정리하는데 이번에는 경동교회의 전례봉사자로 오신 장로님께서 그만 축성한 포도주를 모두 엎지르고 말았습니다. 저희는 서로 웃으며, 한쪽이 민망하지 않도록 실수의 균형을 맞춰 주셨노라고 함께 미안한 마음들을 서로 다독였습니다.

우리 삶과 신앙은 완전한 일로가 아니라, 서로 미안한 일을 너그럽게 나누면서, 아니 어쩌면 조금씩은 상처 주는 일들을 보듬고 격려하면서, 한 걸음씩 나갑니다. 자신이 완벽한 성채를 구축하면, 오히려 자기주장에 갇혀 누군가와 대결하며 이기려 드는 길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과 실수를 인정하고,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열어서 나누면, 그 상처를 통해 서로 스며 흐르는 사랑으로 우리는 결합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교좌성당과 경동교회가 부활 50일의 대단원인 성령강림 사건을 함께 축하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령강림절의 본래 이름은 ‘부활의 오순절'입니다. 사순절부터 성주간에 이르는 시간이 구원의 역사를 낳으려는 진통의 시간이라면, 부활주일 이후 펼쳐지는 50일의 시간은 부활의 새 생명이 탄생하고 자라나는 시간입니다. 상처를 딛고 부활한 예수의 생명이 절망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 안에서 퍼지고 스며드는 사건입니다. 저마다 외톨이였던 이들이 자신의 감옥을 빠져나와 모여서,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사건입니다.

우리 현실로 눈을 돌려볼까요? 우리 격동의 현대사가 만든 갈등 상황 안에서 서로 다르게 역사를 경험하고, 생존과 상실의 상황 속에서 극과 극을 달리는 신앙의 체험을 하고는 했습니다. 이 탓에 다른 이들의 경험을 헤아리려는 마음을 좁히거나 아예 닫아버린 사회를 살아갑니다. 자기만의 이념과 주장 때문에 우리 말은 의사소통의 통로가 아니라, 혐오와 비난, 심지어는 욕설과 악다구니의 도구로 전락한 시절을 견디고 있습니다. 사회와 교회는 자신이 세운 욕망의 바벨탑 안에 갇힌 채 자기만의 언어를 되뇌고 있습니다. 자신과는 다르면 타인으로 정죄하고 미워하고 밀어내며 살아갑니다. 안타깝게도 그 탑의 운명은 명백합니다. 불신과 배제, 시기와 경쟁으로 부실하게 오르는 탑이 이내 무너져 인간의 희생은 더욱 커지고 말테니까요.

이때 우리가 갈망하는 새로운 힘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희망하는 새로운 질서는 어때야 할까요? 흩어져 외로운 개인을 모아 서로 이어주고, 그 안에 핏줄과 숨결을 넣어주는 그 생명의 힘과 질서를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산고를 거쳐서, 부활로 일어난 새로운 생명을 바라봅니다. 이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 바로 성령입니다. 이 성령이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질서로 건네는 선물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성령은 생명과 삶의 기운입니다. 성령은 창조 때에 하느님께서 불어넣으신 숨결입니다. 희망 없는 사막의 마른 뼈들을 일으킨 바람입니다. 역사 안에서 무참하게 희생당하여 들판에 아무렇게나 버려졌던 한 많은 뼈를 이어 살을 붙이고 피가 돌게 하여 온전하게 일으킨 힘입니다. 마리아의 태중에 맺힌 생명은 성령의 힘으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때에 내린 성령께서는 자유와 해방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이기는 힘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창조에서 부활에 이르는 성령의 힘을 이제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내리리라 약속하십니다.

성령의 내림은 늘 변화를 가져옵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성령 강림 사건의 무대는 번성한 국제도시 ‘예루살렘'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실력자들과 권력자들의 무대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천하고 차별받던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내립니다. 이들은 정치와 종교의 강력한 시스템의 틈 사이에서 겨우 먹고 살던 이주민들, 이방인들, 외지인들입니다. 이들의 다양한 입으로 복음과 부활은 세계로 펼쳐집니다. ‘갈릴래아 사람들'로만 이 놀라운 외국어 현상이 일어났을 법하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은 힘과 특권을 가진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함께 모인 공동체에 내린 성령은 저마다 지닌 은사를 이용하여 서로 도우며 복음을 전하도록 모든 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성령으로 서로 이해하고 서로 머물면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몸인 교회로 모여서, 생명과 변화의 성령을 청원하며 성찬의 기도를 드립니다. 성찬기도 안에서 성령께서는 평범한 밀떡과 값싼 포도주를 고귀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진리와 삶을 되새기며 그리스도의 성체와 보혈을 먹고 마십니다. 이로써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서로 머무는 신비가 일어납니다. 성령은 이제 우리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부어져, 우리를 세상 속을 여전히 걷는 작은 그리스도로 세우십니다. 우리가 이제 부활한 그리스도로 살아가도록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초대에 응답하여 우리가 이처럼 모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살아갑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축하하는 교회의 탄생입니다.

서울주교좌성당과 경동교회는 그 탄생을 깊이 축하하며, 주님의 몸과 피를 함께 나누며, 이 역사의 새로운 장을 조금씩 열어나가려 합니다. 이미 경동교회는 정치적으로 엄혹했던 7-80년대에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새로운 삶의 문화를 만드는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이를 목격하고 배웠던 서울주교좌성당이 잠시나마 80년대 말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증언자로 일어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놀라운 실험과 실천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지 돌아볼 때입니다. 저마다 역사의 현장에서 그 놀라운 역할을 다해왔다면, 새로운 상황과 처지에서 좀 더 세심하게 역사와 신앙의 결을 살피고, 함께 어깨동무하며 그 길을 조금씩 넓혀가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아 세상에 나가 자유와 해방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일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결합하게 하시어 주님의 행진에 동참하도록 이끄십니다. 부활하여 살아있는 예수님의 몸은 정의와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며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발걸음으로 세상에 드러납니다. 이것이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의 선교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성령에 감싸여 새로 일어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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