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존 케이지의 <4분 33초> 그리고 침묵 속에서 듣고, 또 말할 용기
박경양 목사·평화의교회 담임

입력 Jan 12, 2020 08:54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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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유튜브 화면 갈무리)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연미복을 입고 악보를 손에 든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올라 청중에게 인사한 후 연주를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악보를 제 자리에 놓은 후 말없이 피아노 건반을 응시했습니다. 그리고 33초가 지난 후 피아노 뚜껑을 닫았습니다. 1악장이 끝났다는 신호입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은 피아니스트는 다시 피아노 뚜껑을 열었습니다. 2악장 연주를 시작한다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피아노 건반을 응시할 뿐, 피아노를 연주하지는 않습니다. 2분 40초가 지난 후 그는 다시 피아노 뚜껑을 닫았습니다. 2악장이 끝났다는 신호입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3악장을 연주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피아니스트는 악보를 품에 안고 청중에게 인사한 후 퇴장했습니다. 당황한 청중들은 술렁이다가 이내 연주회가 끝났음을 알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황당한 피아노 연주회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 공연 모습입니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무음 공간을 찾던 존 케이지는 하버드 대학의 한 녹음실이 모든 소리를 완전히 다 흡수해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방음 공간임을 알았습니다. 이후 그는 1951년 그곳에서 소리가 전혀 없는 무음 공간을 체험합니다. 외부의 소리가 완벽히 차단된 곳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지만 그곳에서도 소리는 들렸습니다.

먼저 들린 소리는 자신의 숨소리였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침묵에 집중하자 이번에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렸습니다. 외부의 소리를 아무리 차단해도 여전히 소리는 들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존 케이지는 오선지를 꺼내 순식간에 작곡을 완성했습니다. 이렇듯 절대적인 무음 공간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존 케이지가 작곡한 곡이 바로 유명한 <4분 33초>입니다.

침묵(沈默)은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존 케이지의 경험이 말해 주듯 세상에 소리가 없는 절대 무음 공간은 없습니다. 내가 침묵한다고 해서 소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침묵의 또 다른 의미는 내가 말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종교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침묵이 그렇습니다.

존 케이지가 절대 무음의 공간에서 소리 없는 공간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리 없는 피아노 연주곡을 작곡하듯, 내가 말하지 않으므로 소리 없이 말씀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침묵이 바로 종교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침묵입니다. 때문에 종교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침묵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감(五感)을 총동원해 그분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깨닫는 것입니다. 침묵은 단순히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듣기 위해서 말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12일부터 22일까지 10일 간의 침묵기도에 들어갑니다. 이번 침묵기도는 <한국샬렘영성훈련원>의 아홉분의 영적동반자들과 함께 가평에 있는 성공회 프란체스코수도원에서 할 예정입니다. 침묵기도에 들어가는 내게는 두 개의 꿈이 있습니다. 먼저 그분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분별하고, 깨달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히브리 지혜자는 "하나님께서 옛날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번 침묵기도 중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게 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분별하고,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또 옛날 예언자들이 그러했듯이 말해야 할 때 침묵하지 않을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교회와 사회의 부패와 타락과 불의에 대한 침묵은 그것들이 판을 치도록 힘을 주기 때문에 나쁜 침묵입니다. 마틴 루터 킹이 "우리가 중대한 일에 대해 침묵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종말을 고하기 시작한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침묵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듣고, 침묵을 통해 내가 말할 힘과 용기를 얻는 것, 이것이 이번 침묵기도를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모쪼록 그리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이 글은 박경양 목사(평화의교회 담임)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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