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바벨론의 강변에서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 요엘 2:12-14, 갈라디아서 5:1;13-15, 누가복음 23:26-28 -

윤동주
(Photo : ⓒ 연세학풍연구소)
▲1938년 당시 협성교회는 이화여대 중강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협성교회 성경공부반이 기념촬영을 한 사진에서 우측에서 두 번째가 윤동주이고 좌측에서 네 번째가 송몽규이다.

오늘은 3.1절 기념주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99년 전인 1919년에 기독교 대표 16인, 천도교 대표 15인, 불교 대표 2인 등 33인의 민족대표가 3월 1일 정오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함으로써 만세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이 운동은 순식간에 확산되어 전국 211개 장소에서 1,542회의 시위가 이루어졌고, 2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참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7,500명이 사망했고, 16,000명이 부상했으며, 47,000명이 투옥됐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일본이 힘이 있어 우리의 주권을 뺏고 이름도 뺏고 나라도 뺏었지만 우리의 정신은 뺏지 못했다"며 "그들은 힘이 있어 우리를 오랫동안 지배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해방이 도적같이 왔다, 그래서 해방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기독교 고유의 절기가 아닌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을 교회가 특별히 기념하며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고 은혜로 우리에게 해방과 독립을 주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역사 한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고난을 당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무고한 자들의 고난을 외면치 않으시고 그들의 고난의 의미를 땅에 흩으시지 않으시는 분십니다. 절망의 한복판에서 희망의 의미와 가치를 드높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난당하는 우리 민족에게 '출애굽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성서의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자기 민족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모세가 40일 동안 시내산에 올라가 있을 때 산 아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절하며 야단이 났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이 백성들에게 신물이 났다, 이제 내가 이 백성을 멸하리라"(출애굽기 32:10)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모세는 "어찌하여 이 백성을 여기까지 끌고 나와서 죽이려 하십니까, 이 백성이 언제는 의롭고 선했습니까, 여기서 이 백성을 죽이시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어떻게 되며 애굽 사람들은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이 백성을 용서치 않으시고 여기서 죽이신다면 나도 이 백성들과 함께 죽겠습니다"(출애굽기 32:11-13)고 결연히 막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에게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음을 밝히면서,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로마서 9:3)라고 말합니다. 성서의 위대한 인물들은 자기 민족의 고난 앞에서 깊이 고뇌했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윤동주도 그러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아마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일 것입니다. 작년 12월 30일은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기도 했습니다. 27살의 짧은 인생을 살고 간 그의 시들에는 마음을 울리는 어떤 힘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당하는 고난을 깊이 고뇌하며 한 자 한 자 아름답게 그것을 형상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재작년에는 그의 삶을 다룬 영화 <동주>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배우 강하늘씨가 주연한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영상으로 시인의 삶과 아픔 그리고 비참한 최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연희전문 시절 한 이화여전 학생과 애틋한 감정을 나누기도 했던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 후쿠오카 형무소로 끌려가 생체실험을 당하다 해방되기 만 6개월 전인 1945년 2월 16일에 옥사했습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윤동주 시인뿐만 아니라 그의 절친 송몽규도 알게 되었습니다. 독립투사 송몽규는 윤동주 시인의 고종사촌 형으로,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 같이 연희전문을 다니다, 같이 일본 유학을 떠나고, 또 같이 일본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같은 형무소에 갇혔습니다. 시인이 사망한 뒤 한 달 뒤에 그도 옥사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기독교를 소재로 한 시도 여러 편 남겼습니다. 그 중 하나가 <팔복>입니다. 부제는 <마태복음 5:13~22>입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렇게 여덟 번 반복한 시인은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저희가 永遠(영원)히 슬플 것이요." 1940년 12월에 쓴 시입니다.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일제의 수탈과 강제 동원, 폭압 정치가 극심했던 때입니다. 어떤 기대도 어떤 희망도 말할 수 없을 때 시인은 '슬퍼하는 자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도 감히 거부하고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슬픔의 심연 속에서 시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봅니다. 슬픔의 시대 한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명상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공동기도문으로 함께 읽은 시 <십자가>입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 꼭대기 /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팔복>을 쓴 지 5개월 뒤인 1941년 5월에 쓴 시입니다.

같은 해 11월에 시인은 그의 대표작 <서시(序詩)>를 씁니다. 일본 릿교대학으로 유학 가기 전에 쓴 시입니다.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외우는 시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른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아픔을 가장 아름다운 말로 형상화한 윤동주 시인이 우리 대학교회 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실 것입니다. 얼마 전 제가 알고 지내는 홍성표 박사라는 분이 『동방학지(東方學志)』 180집(2017.9)에 "송몽규의 민족의식 형성과 기독교"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을 보니 윤동주 시인은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에 입학한 해인 1938년부터 협성교회를 다녔습니다. 협성교회는 바로 우리 대학교회의 전신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는 1935년에 이화여전의 김활란 박사님과 연희전문의 백낙준 박사님이 함께 세운 교회로, 처음 이름은 협성교회, 영어로는 Union Church이었습니다. 보시는 사진은 1938년 11월 27일에 찍은 사진입니다. 80년 전 사진입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이화여대 중강당입니다. 당시 협성교회는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이 하얗고 깨끗합니다. 좌측에서 네 번째가 송몽규입니다. 그리고 우측에서 두 번째가 윤동주입니다. 그 앞에 이화여전 학생 세 명과 외국인 교수님 한 분이 앉아 계십니다. 이 사진의 제목은 "The member of our Bible Class"입니다. 우리교회 최초의 성경공부반 사진인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우리 대학교회에서 그렇게 성경을 배웠습니다. 이 사진을 제공한 분은 윤동주 시인의 바로 오른쪽, 그러니까 사진의 오른쪽 끝에 있는 강성갑 선생의 유족입니다. 강성갑과 윤동주 그리고 송몽규는 식민지가 된 우리 민족의 삶의 현실을 외면하고 내세의 구원만을 강조하며 권력에 굴종하는 다른 많은 교회들을 보면서, 기독교인으로서 특히 '조선의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윤동주와 송몽규를 이야기하다보면 이들과 늦봄 문익환 목사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동주와 문익환은 친구였습니다. 송몽규, 윤동주, 문익환 이 세 사람은 모두 만주의 용정 명동촌에서 태어나 함께 자랐습니다. 이들은 '명동촌의 세 보배'라 불렸습니다. 만주의 명동촌은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정을 가진 분들이 많이 모여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윤동주의 시 <십자가>의 십자가는 다름 아닌 문익환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가 시무하던 교회의 십자가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할아버지는 바로 이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그리고 윤동주의 집과 문익환의 집은 저녁밥 짓는 연기를 서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웠습니다. 둘 다 갓난아기 때 문익환 목사 모친의 젖을 함께 먹고 자랐습니다. 명동소학교에서는 같은 반이었고, 은진중학교도 같이 다녔으며, 평양숭실도 함께 다녔습니다. 둘 다 공부를 아주 잘 했습니다. 이렇게 매우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목사 문익환의 기억 속에는 평생 윤동주가 있었습니다. 문익환 목사가 나이 일흔에 쓴 시입니다. 제목은 <동주야>입니다. "너는 스물 아홉에 영원이 되고 /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 달 먼저 났지만 / 나한텐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 가는 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할 수야 있다만 / 네가 나와 같이 늙어 가지 않는다는 게 /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 너마저 늙어 간다면 / 이 땅의 꽃잎들 /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문익환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는 독립을 위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귀하디귀한 미국 유학파 신학자를 시골 중에서도 시골인 북간도의 명동촌으로 모셔옵니다. 그가 바로 1936년에 은진중학교 교목이자 성경교사로 부임한 장공 김재준 목사입니다. 김재준 목사는 여기서 송몽규, 윤동주, 문익환을 길러냈습니다. 그리고 강원용, 안병무, 문동환을 길러냈습니다. 한국기독교신학의 뿌리가 여기서 만들어졌습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가 어떤 신앙과 신학을 가진 사람인지는 우리 찬송가 261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설교 후에 우리가 부를 이 찬송가의 가사를 바로 그가 작사했습니다.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여기서 '어둔 밤'은 일제의 식민지 상황을 말합니다. 하지만 '계명성' 즉 새벽 동쪽 하늘에 금성이 뜨면서 이 나라에도 여명이 옵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Morning Calm"이 드디어 빛 속에 새로워집니다. '광복'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빛 삶 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탑 놓아"갑니다. 새 생명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김재준의 기도는 2절에서도 계속됩니다. "옥토에 뿌리는 깊어 하늘로 줄기가지 솟을 때, 가지 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앗이 옥토에 뿌려져 뿌리를 내리면, 하늘 높이 줄기가지를 올려 무성한 가지 잎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에 새 나라의 새 백성들이 혜택을 받습니다. 자유와 해방의 복음으로 인해 만민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하나님께서] 일꾼을 부"르십니다. 그래서 우리 부름 받은 자들이 "하늘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자고 김재준은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 가사는 후에 문익환 목사가 자신의 스승을 기리며 새로 지어 넣었습니다. "맑은 샘 줄기 용솟아 거치른 땅을 흘러 적실 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 트인다." 여기 '맑은 샘 줄기 용솟는 곳'이 바로 만주의 용정(龍井) 명동촌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용두레 우물가'가 거기입니다. 그리고 거친 땅을 흘러 적시며 그 땅을 기름진 푸른 벌판으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혜란강입니다. 문 목사는 지금 절친 동주와 몽규와 함께 자라난 자신의 그리운 고향을 눈앞에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승의 기도를 이어받아 자신도 이런 소망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 하늘 새 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 되어 타거라."

우리의 찬송가에는 이처럼 민족의 자주독립을 신앙의 차원에서 소망한 아름다운 찬양들이 있습니다. 앞서 부른 찬송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도 그러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를 가꾼 애국지사로 유명한 기독교민족지도자 남궁억 선생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라고 노래합니다. 단순히 근면하자는 독려가 아닙니다. 여기서 '일하러 가세'라는 말은 '독립운동 하러 가세'라는 말이었습니다. 일제의 검열과 탄압이 너무도 심하다보니 이렇게 살짝 돌려서 말했습니다. 한국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강산에 일하러 가세", 즉 독립운동 하러 가세라고 힘차게 노래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얼마나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그리워하며 그것에 깊이 헌신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3.1운동의 주역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3.1운동 당시 우리나라의 인구는 1천 6백만 정도였습니다. 이 중 그리스도인은 20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1% 남짓밖에 안 됩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인구의 20% 이상이 크리스천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100명에 1명꼴인 이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나라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했습니다. 당시 만세운동의 대부분을 교회가 주도했습니다. 만세시위의 첫 집결장소는 대부분 교회였거나 기독교학교였습니다. 주도하는 사람들은 목사, 장로, 교회학교 교사, 그리고 학생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동시에 일어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유일하게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화와 전보는 일본의 통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파발과 봉화도 이미 일본에 접수된 상태였습니다. 철도와 우편도 이미 장악되었고 보부상마저 와해됐습니다. 서로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에는 총회, 노회, 시찰, 당회 조직이 살아있었습니다. 당시 교회가 보내는 공문은 일제가 선교사들과의 협약에 의해 검열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3.1 독립선언문이 바로 교회를 통해 면 단위까지 내려갔고 그 선언문이 교회와 학교에서 등사되어 장바닥에까지 뿌려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독립운동의 혈맥과 신경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 멀리 함경북도에서 저 아래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만세운동이 일찍 일어난 동네와 늦게 일어난 동네가 단 한 달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일제는 3.1운동을 '조선소요사건'으로 보고 일벌백계의 책임자 처단을 실시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이 가해졌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경기도 화성 소재 '제암리 교회 학살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4월 15일에 일본군이 이곳에 와서 교인들을 모두 예배당으로 모이게 하고 문을 걸어 잠근 뒤 불을 질렀습니다. 불에 타 숨진 교인이 30명입니다. 뛰쳐나오는 교인들에게는 정조준 사격을 가했습니다. 제암리 교회뿐만 아니라 이 근처 15개 교회에서도 이런 식으로 교인들을 죽이고 예배당을 불사르고 교인들을 투옥시켰습니다. 일본 헌병대는 예수를 믿는다고만 하면 무조건 잡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1919년 6월까지 투옥된 조선인 총 9,458명 중에 2,807명이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의 여성 투옥자가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점입니다.

3.1운동은 '불의에 대한 정의의 항거'였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불의를 용납지 않으시고 미워하시며 모든 불의한 세력을 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1운동의 정신은 바로 그런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앙이 역사 안에서 행동으로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에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속박의 멍에를 꺾어버리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났습니다.

오늘 예배 중에서 교독문으로 읽은 시편 137편은 시편 중에서도 유명한 시편입니다. 히브리인들처럼 강대국에 나라를 빼앗긴 여러 민족들이 바로 이 시편을 읽으며 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우리의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이 시를 읽어보면 가슴이 시려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도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은총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셨건만 주전 538년에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해 다시 포로 신세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거기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서 고향인 시온, 즉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얼마나 그리웠겠습니까. 그런데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수금을 걸어 두었더니,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온 자들이 이를 보고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술을 마시는데 흥을 돋우러보라고 요구하며 희롱합니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시인은 저항합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예루살렘아, [만약]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아, 너는 말라비틀어져 버려라. [만약]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 혀야, 너는 내 입천장에 붙어 버려라." 그리고 하나님에게 간청합니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어려울 때 도와주기는커녕 저주를 퍼부은 이웃 에돔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바벨론에 대해서 저주를 퍼붓습니다.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마지막 문장은 너무 끔찍해서 차마 주보 안의 교독문에 인용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모습'을 저는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총알이 아깝다며, 10대의 소년 홍위병들이 엄마들에게서 갓난아기들을 빼앗아 그렇게 했습니다. 그 모습이 연상돼 이 시편을 끝까지 인용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그렇게 이스라엘은 자신을 멸망시킨 바벨론 제국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성경에 이런 저주의 말씀이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불의한 권력자들 앞에 숨김없이 자신의 원한을 드러냈습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의 오페라 <나부코 Nabucco>를 아시는지요. 그를 일약 이탈리아의 국민 작곡가로 등극시킨 유명한 작품입니다. 이 오페라는 바벨론 제국의 폭군 나부코의 압제 하에서도 자신들의 신앙과 민족의 순수성을 잃지 않았던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나부코는 바로 성경에 나오는 바벨론 제국의 왕 '느부갓네살'의 이탈리아식 표현입니다. 특히 이 오페라의 3막 2장에 등장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Va, pensiero)은 너무도 유명하여 아마 대부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오늘 교우 여러분에게 특별한 음반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2001년 빈 슈타츠오퍼(Wiener Staatsoper)의 공연실황 DVD입니다. 바벨론의 강변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우는 히브리 노예들의 저 유명한 합창을 들어보십시오. 이 공연이 특별한 것은 청중은 독일인들이고 합창단은 이스라엘 합창단인데, 바닥에 죽은 듯이 누워서 노래하던 합창단이 서서히 일어나면서 무언가를 손에 들고 노래한다는 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합창단이 독일인 청중 앞에서 든 사진들은 바로 아우슈비츠에서 독일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유대인 희생자들의 사진입니다. 이날 이 노래가 끝나고 독일인 청중은 5분 동안이나 기립박수를 치며 저들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 공연을 보면서 이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나라 합창단이, 특히 우리 이화합창단이 도쿄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손잡고 함께 아리랑을 부르면 어떨까. 일본 청중이 일어나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칠 때 두 나라 사이에 진정한 화해와 평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폭력으로 폭력을 갚지 않고, 문화 민족인 우리 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당당히 밝히면서, 일본의 신의 없음을 준열히 꾸짖고, 그들의 양심에 호소한 저 기미독립선언문의 비폭력 평화정신과도 상통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라디아서 5:1)고 하셨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라디아서 5:13)고 하셨습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라디아서 5:14-15)고 경고하셨습니다. 남과 남이, 남과 북이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총으로 주신 이 자유를 각자의 욕망의 기회로 삼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섬기면서 하나님의 더 큰 복을 받는 민족이 되기를, 3.1절 기념주일에 간곡히 기원합니다. (2018.2.25.)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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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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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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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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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