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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월호 리본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표징”
‘거리의 신학자’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 인터뷰 3부

입력 Jun 04, 2016 08:58 AM KST

-. 신학적 관점으로 화제를 돌려보자. 지난 3월 한 세미나에서 "제례의 상징성을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제례 외에 주자학이라든지, 동양사상에서 기독교 신학과 접점이 발견되는 주제가 있다면 말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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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 지유석 기자 )
▲이정배 교수

제사는 예민한 문제다. 그러나 제사의 의미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선교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과 학문적 습득, 이렇게 두 가지 층위로 말하고자 한다.

아버님은 철저한 유교집안의 선비였다. 제사도 격식을 지키셨고, 꼭 지방문을 쓰셔서 붙이고 읽으셨다. 조상 앞에선 죄인이라 고백하시는 모습을 어린시절부터 지켜봤다. 이런 이유로 대학교 4학년까지 신학을 공부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신학교 다니는 동안 갈등이 많았다. 신학을 공부하고자 했지만 학교는 실망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스승이신 변선환 당시 학장님은 고민을 풀어낼 만한 신학을 말씀 하셨다. 그래서 신학공부를 더 할 수 있었다. 변 학장님께 신학을 배우면서 부모님의 신앙이 부끄러운 게 아님을 깨달았다.

한편 아버님은 아들 장래를 위해서 제사를 거부하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을 스스로 하셨다. 아버님께 굉장히 미안하다. 장손이신데 절을 안하시니 그 분위기가 얼마나 어색하겠나?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식구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경험이 마음 아팠다. 1년에 한 번 보는 자리인데 아버지는 자식 때문에 안지내고, 그래서 난 미안하기만 하다.

학문적으로는 변 학장께서 유학을 계속 공부하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난 주자학을, 내 아내는 양명학을 공부했다. 기독교 사상가인 다석 유영모 선생은 ‘유교는 조상만 아는 종교이고, 기독교는 하나님만 아는 종교인데 둘다 온전치 못하다. 본래 유교도 조상의 끝은 하늘이다. 그래서 우리도 조상을 통해 하늘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도 족보 이야기가 나오는데, 누가복음의 족보는 조상과 하나님을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신학적 틀을 제시한다. 사실 족보엔 엄청난 신학이 스며 있다.

예배엔 하나님의 부름이 있다. 즉, 이 제사가 하나님의 부름 안에서 이뤄지게 해달라는 염원이라는 말이다. 이런 식의 제사 지냄은 기독교의 무미건조한 예배의식 보다 좋다고 본다. 나 스스로도 제사를 지내는데, 교회가 이런 제사를 받아들일 수 없는지 한 번 토론해 보고 싶다. 가톨릭인 이미 이런 논쟁을 끌어 들였다.

-. ‘거리의 신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월호 참사의 영향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신학자로서 세월호 참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아울러 한국교회가 세월호 참사에 무감각한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대학재학시 선배들이 나를 운동권에 끌어들이려고 공을 들였다. 그러나 이 같은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또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에 유학 중이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일정 수준 부채의식을 갖고 지낸다.

유교는 ‘지행합일'을 덕목으로 내세운다. 행한 것 만큼만 안다는 의미다. 역으로 풀이하자면 행하지 않으면 모른다. 머리로 안다고 아는 게 아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돈오'라고 하는데, 제일 나쁜 덕목으로 치부한다.

기독교에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교의를 설파한다. 이 대목에서 종교개혁의 상대원리에 대해서도 비판을 많이해야 한다.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를 외쳤다. 이에 대해 본회퍼나 키에르케고르는 지금 이 시대 상황에서 루터가 이 같이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신교를 가톨릭보다 더 타락하게 만든 주범이 ‘오직 믿음으로'라는 루터의 교의란 의미다.

이제 손의 창조력으로 신학을 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나 스스로 신학의 실학화를 모토로 삼고 있다. 신학적 이야기 암만 해봐야 교회 안에서 소용이 없고 현실에서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문득 내가 신학의 전문가일까 하고 질문을 던진다. 물론 전문가이긴 하겠다. 그러나 시골에서 할머니 한 분이 새벽기도에 나가 간절히 ‘주여'라고 외치는 그 마음과 비교해 볼 때 내가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전문가이지 내가 아는 지식이 전문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 전문가로 인정 받기 위해선 믿고 아는대로 행해야 한다.

처음에 난 세월호를 그냥 단순사고 쯤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이 다니는 교회에서 목회하는 후배가 설교를 부탁해왔다. 유가족 가운데 한 분은 전도사였는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단순사고가 아니었다. 그즈음 감신대 학생들이 세종대왕상에 오르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니 침묵하고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세월호 관련해서 책 몇 권을 냈지만, 끈질기게 신학적으로 물어가려고 한다. 워낙 의심스런 대목이 많아서다. 독일에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다면 한국 세월호는 이 시대의 엄청난 표징이다. 이를 교회가 놓치면 안된다.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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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 = 지유석 기자)
▲이정배 교수의 옷깃엔 세월호 리본이 달려 있었다. 이 교수는 이 리본을 ‘시대의 표징’이라고 했다.

히틀러는 기독교인과 결탁해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을 죽였다. 그러나 정작 죽은 건 기독교였다. 그래서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의 첫 번째 명제는 ‘기독교의 죽음'이었다.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서서히 죽어가던 기독교가 세월호를 계기로 완전히 죽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했던 신학과 달라야 한다.

학문은 제도로서의 학문과 행동으로서의 학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지금 인문학의 과제는 행동하면서 현장에서 얻은 경험으로 학문을 하는 것이다. 세월호 이후의 신학 역시 제도로서의 신학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세월호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이 던지는 신학적 질문은 엄청나다. 희생자 중 상당수가 기도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이를 본 엄마들은 지금까지 30~40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 교회 안에서만 통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장에 있는 이들이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 반면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박근혜 정권과 결탁했다.

오스트리아의 신학자인 이반 일리치는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면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온 일은 최선이다. 강도만난 사람 곁을 성직자가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예배를 빨리 들어가야 하니까. 율법학자도 부정한 피를 볼 수 없어 지나쳐도 된다. 사마리아인은 구약시대부터 유대인과 원수지간이어서 역시 안보고 지나가도 문제 없다.

요약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 인간이 되어 오신 건 최선이다. 성직자나 율법학자들은 하나님의 인간됨이라는 진리를 살지 못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하신 일을 했다. 철천지 원수지간임에도 강도만난 이를 끝까지 책임졌으니까. 바로 이 대목이 성육신 신앙의 핵심이다.

세월호 리본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이를 악마화한다. 그러나 세월호 리본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징표다. 유족들이 평안해질 때까지 그들곁에 머물러 있겠다는 표징이라는 말이다.

-. 마지막 질문이다. 강원도 횡성을 오간다고 들었다. 혹시 계획하는 일이 있다면?

2000년대 일본에 가 있으면서 그곳에서 ‘아브람 공동체'라는, 기독교에 바탕을 둔 공동체를 본 적이 있었다. 이와 비슷한 일을 구상 중이다. 예배를 정점으로 삼아 농사도 하고 노동하며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협동공동체 말이다.

특히 개신교의 경우 다른 종교에 비해 우월한 교리도 있긴 하지만 자기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 많이 부족하다. 제자나 후배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20명 안팎으로 인원을 모아 주중 4박5일, 혹은 매월 한 차례 씩 중세 수도원식의 노동, 기도, 독서 등의 활동을 하게끔 해서 기회들을 주고 싶다.

일찍 강단을 떠났지만 일찍 교수일을 시작해 30년을 넘게 했다. 남들보다 많은 혜택을 받았는데 이런 방식으로 후학들에게 기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궁극적으로 재능 가진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봉사할 수 있고 더불어 살아갈 자그마한 협동 공동체 만들고, 그 공동체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구상하고자 한다. 아직은 막연하다. 이 같은 일을 혼자 감당할 수는 없다. 우리는 교수 역할을 잘 하면 되고, 농사 역할 잘 하는 가정, 기계를 잘 다루는 가정, 공동체를 잘 운영할 수 있는 가정 등 다섯 가정 정도가 더불어 살면서 이 일을 함께 해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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