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신이 먼저 옳게 되지 않으면 교단개혁은 어림도 없고 기독교 미래 역시 없다고 판단했다. 교수직을 내려 놓고 교권과 맞서겠다."
이정배 교수가 30년 동안 몸담았던 감리교 신학대학교(감신대)을 떠나면서 남긴 결의다. 이 교수는 교수로 임용된 이래 후학 양성에 매진해왔다. 예전부터 감신대는 토착 신학의 산실로 자리매김해온 바, 이 교수는 감신대 학풍을 이어 받아 생태신학, 그리고 종교와 과학간 대화를 도입하는데도 앞장섰다.
그러나 이 교수는 학내 갈등으로 학교가 몸살을 앓자 강단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정년이 4년 6개월 남아 있기는 했지만 교수직에 연연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이 교수에게 가장 먼저 사임을 결심한 배경부터 물었다.
Q : 정년까지 4년 6개월이 남았지만 강단을 떠났다. 감신대 학내 사태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은퇴가 최선이었다고 보는가? 일각에서는 학교에 남아 학내 정상화에 힘을 실어줘야했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정배 교수(아래 이 교수) : 은퇴는 오래전부터 염두에 뒀었다. 지금 교수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아니라 ‘하늘의 달따기'라 할만큼 어려워졌다. 공부를 마친 학자들은 많은데 이들에게 내 줄 자리가 없다. 옛날 같으면 30년 내지 40년 강단에 머무는 게 미덕이겠지만 후학들이 자리를 못 찾는 상황에서 교수직을 오래 꿰차고 있으면 되는가? 더구나 대학이 대학 답지 못한 현실에서. 그래서 송순재 교수와 쭉 협의해 왔다. 오래 머물렀던 우리가 떠나면 신진학자 두 명은 임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실제 2년 전 송 교수와 함께 그만두려고 마음의 준비도 마쳤었다. 바로 그 무렵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그리고 5월 감신대 학생들이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기습 점거하고 세월호 참사 특검을 요구했다. 사실 난 제자들이 이런 용기와 담대함이 있으리라 생각 못했다. 여담이지만 이때 한신대 학생들이 ‘우리가 해야했었다'며 땅을 쳤다는 후문이 들렸다. 이후 한신대 학생들은 삭발농성에 들어갔다.
진보진영에서는 이 일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특히 연극인들은 이 사건을 지난 10년 이래 우리시대 가장 아름다운 퍼포먼스라고 극찬을 했다. 교계 안에서도 학생들의 행동에 박수 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이로 인해 목회의 꿈을 접고 일반 직장에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도 나왔었다. 학생들의 아버지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 교회 중직자들이 이들에게 자식교육을 잘못했다고 질타한 것이다. 이러다보니 학생들은 위축됐고, 목회는 틀렸다는 식으로 자포자기했다. 이때 이래서는 안되겠다, 비록 힘은 없지만 누군가는 곁에 있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갈등상황이 학교를 떠나지 못하게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은퇴까지 머물겠다는 결심, 2년 후 학내 갈등으로 무너져
Q : 학생들이 만류하지는 않았나? 동문들도 만류하고 나선 것으로 안다.
이 교수 : 학생들은 재학생 800명 가운데 650명이 서명한 서명지를 내밀며 못나간다고 했다. 심지어 "지금 떠나면 세월호 선장과 똑같다"는 말까지 한 학생도 있었다. 밖에 있는 동문도 때가 아니라며 만류했다. 사실 그때 떠났으면 좋았을수도 있겠다. 그런데 서명까지 받아 내미는데 이걸 물리치고 떠나지는 못하겠더라. 그래서 일단 마음을 돌이켰다. 그때 명분이 있으니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 "떠나려 했다 기회를 놓쳤으니 은퇴할때까지 중도하차하겠다는 생각은 안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또 학교 분위기가 이상해져 내가 떠난다고 해서 신진 학자들을 뽑을 상황도 못됐다. 다 교단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려 해서다. 제자나 다른 교수도 하는 말이 "떠나신다 해서 선생님에 필적할만한 학자를 불러올 수 없는 상황이니 머무르는 편이 낫다"고 했다. 아무래도 선생이 있는 편이 낫다고 보고, 끝까지 학교를 지키면서 도움주는 역할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Q : 학교에 남기로 결심한 뒤 2년 만에 학내분규로 떠나게됐다. 학내분규를 초래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1차적인 책임은 총장에게 있다고 본다. 외부에서는 감신대 분규가 이사회와 학생들 사이의 갈등으로 비쳐졌지만 말이다. 은퇴를 5~6년 앞두고서 시간에 쫓기기 보다 정교한 저술을 집필하고 싶고, 삶을 정리하고자 했다. 그런데 덜컥 이사진이 바뀌고, 총장이 바뀌었다. 총장이 두 세 차례 바뀌면서 감신의 리더십은 실종되기 시작했고, 이사회와의 관계도 악화됐다. 감신의 앞날이 ‘잃어버린 10년'이라 할 정도로 걱정을 많이 했다. 이 와중에 지금 총장이 연임 욕심이 있었는지 자신의 뜻을 넌지시 흘리고 다녔다. 이로 인해 학교는 구심력을 잃었고, 결국 이사회에 휘둘리게 만들었다.
총장의 리더십이 부재한 상태에서 학내에선 온갖 비정상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특히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몇몇 그룹들이 학교 운영을 마구잡이로 해나갔다. 이사회 이사들은 교단 안에서의 행태를 그대로 학교까지 가져왔다. 이사들은 예외 없이 대형교회 목사들이다. 이들을 만난 학생들은 ‘말을 바꾼다',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심지어 ‘거짓말 하는 입으로 주일 설교는 어떻게 할까'라고 말한 학생들도 있었다.
교단 안에서는 정치적 협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학교는 교육공동체이고, 학생들의 눈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이사들은 이런 곳에서 나눠먹기식 행태를 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