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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고위 공직자의 망언과 관계적 상상력

입력 Jul 15, 2016 12:43 PM KST
나향욱
(Photo : Ⓒ 연합뉴스 화면 갈무리 )
▲국민을 개, 돼지로 비하한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지난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출석해 사과발언을 하고 있다.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 비하 발언으로 인민대중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인 인민대중을 개돼지로 폄하하고 그들을 신분제로 구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 발언의 내용이다. 인간을 개나 돼지처럼 먹여주기만 하면 되는 존재로 폄하한 것도 문제이지만, 굳이 민중이라는 '정치적인'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사실상 지배-피지배의 구조로 조직되어 있음을 공공연하게 전제한 것이 더 문제시된다. 해당 기획관은 자신의 발언이 기자에 의하여 다소 과장되었다고 발언 수위를 낮추려했지만 영화 <내부자들>을 관람하고서 영화 속에서 '상류계층'인 언론사 논설주간이 내뱉은 "대중들은 개돼지들"이라는 발언을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스스로를 지배계층으로 정의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같은 구별의 상상력은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소통되어야 할 인간관계에 넘지 못할 간극을 설정하여 이를 정당화하게 되므로 그의 발언을 반인간적이며 반사회적이라 지적하고 싶다. 사건 발생 직후 문제의 발언을 사과하고 국회에 출석해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만으로는 그가 관계적 상상력의 실패를 인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실수를 통감하고는 있는 것으로 비추어지고는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교육부의 징계절차나 최상급 기관인 청와대의 태도는 마치 자신들은 그 기획관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서둘러 그를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인상을 준다. 그를 감싸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를 파면하는 것만으로는 민중의 허탈감을 해소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의도적인) 실언을 하기는 했지만, 그의 실언은 사실상 교육부나 청와대의 정책기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우선 정책을 추진하면서 인민대중을 사실상 재벌과 민중으로 분류했으며 교육에서도 경쟁구도를 고착시켜서 재력과 학력의 상관관계를 높임으로써 사회 내에 신분구별선을 사실상 그어놓았다. 그는 이러한 정책들의 기획을 담당하고 있으니 그의 발언은 자신의 상황에서 적법한 가치관을 전달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의 상상력은 그의 생활환경이 조성한 것이므로 그가 국민 앞에서 사과했을 때 민중들은 사실상 교육부와 청와대도 이 사태의 심각한 근본원인을 인식하고 사과하며 시정하는 모습을 보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그를 처벌하는 선에서 이 일을 마무리하는 것은 어쩌면 청와대가 그토록 싫어한다는 배신의 정치를 재현하는 행위다. 그는 혼신을 다해 청와대의 정치적 기조를 살리는 정책들을 기획하면서 그의 가치관마저도 그 기조에 동화되어버렸는데, 그 가치관을 좀 투박한 말투로 쏟아냈다고 해서 서슬퍼런 징계를 내린다는 것은 그를 배신하는 일인 것이다. 인민대중의 표를 기반으로 탄생한 정권은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기 때문에 그를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벼르면서 대다수 민중들의 분노가 가라앉길 기다리겠지만, 그를 처단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하려는 것은 이 사건을 단순히 개인적인 일탈로 간주하고자 하는 시도에 해당한다. 이미 두 번의 친재벌적 정권을 거쳐오면서 우리사회에서 민중의 개념적 경계가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이 사실인데, 한 개인을 처단함으로써 그 상황을 호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청와대가 국정 운영의 기조를 반성하고 이 실언의 배경이 된 정책기조에 대해서 친'인간'적, 친'민중'적 전환을 시도하지 않는 한, 그의 처벌은 '충복'에 대한 제도적 배신이며 정권의 기반인 인민대중에 대한 기만이다. 인민대중이 민중으로 지칭될 때, 그 민중에게는 보수와 진보의 진영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소박한 욕망을 실현해줄 정권에 표를 찍기 때문이다.

현대정치가 아무리 체제나 체계에 의해 운용된다 하더라도 정권이 권력을 지속하려면 정치권력의 기반인 인민대중을 인간답게 대우하고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물론, 그런 목적을 위해 현재 정치도, 행정도 혼신을 다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방향이 효율극대화에로 맞추어져 있는 한, 인간의 냄새는 사라지고 만다. 사회운영의 효율을 위해 신분구별선을 설정하게 되면 인간의 관계망이 단절되는 선 너머의 집단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성을 고려하지 않는 발상이다. 모든 정책결정에 있어서 인간성에 대한 고려를 우선하게 되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그러한 모순 앞에서 고민하고 분투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지 인간을 대상화해서 누군가를 배제한 뒤에 효율을 높이려는 정책은 손쉬운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리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동원하는 온갖 기법과 기술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냄새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계산착오이다. 그래서 모든 정책결정에는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소망에 대한 고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기계적 효율성보다 인간관계적 상상력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다윗은 시글락 공동체가 아말렉족에 의해 침탈당한 뒤 심각한 지도력의 위기를 겪는 와중에 재산과 가족을 탈환하기 위해 출정하면서 전투를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한 일부 병사들을 강가에 쉬게 하였고 승리를 안고 귀환하였을 때 주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병사들에게도 전리품을 하사했다.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삼상30:23-25)

사태의 모든 책임을 지도자인 다윗이 지고서 끝까지 부하들을 돌보는 가운데 평화의 전통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전쟁의 효율적 수행 계획보다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과의 관계를 우선하였고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우선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관계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민중의 상황을 우선하며 공평한 분배에 관심을 갖는 지도자가 제도적 배신을 저지르지 않고 인간의 냄새가 나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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