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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갑질과 하나님의 형상

갑질
(Photo : ⓒ NCCK)
▲갑질은 돈과 권력을 인간보다 우위에 두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으므로 불가역적인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 사진은 한 프랜차이즈 업체의 갑질을 비판하는 시민들.

연일 언론지상에 보도되는 "갑(甲)질"이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대기업과 하청기업, 대규모 유통회사와 입점 업체, 프랜차이즈 본점과 지점, 기업회장과 자가용 운전사, 공무원과 민원인, 출입국 사무소와 후진국 출신 이민자들, 장군과 공관병 등 어디든 갑을(甲乙) 관계가 성립되는 곳에서는 거의 구조화된 듯 갑의 권력남용이 횡행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 권력은 모조리 공정성의 규칙은 물론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지경으로까지 남용됐다. 결국 을의 비명이 하늘에 반향했고 그 갑은 국민의 분노 앞에 자신의 권력남용을 사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국민들은 갑이라는 지위와 권력이 인간의 존엄성마저 압도하는 현실에 입맛을 잃어버렸다.

갑질의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으나 그 근원에는 동료 인간에 대한 무관심이 도사리고 있다. 갑질하는 갑에게는 옆이나 아래에 있는 사람이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인식이 없다. 그에게 부하나 하급기관 종사자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도구이거나 자신이 지닌 권력의 효용을 검증할 리트머스 시험지일 뿐이다. 자신이 결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그의 무관심은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는 신의 역할을 맡은 듯 착각하는 상태에 빠진다. 그렇게 신-놀이(god play)의 재미에 빠져 있으면서 을의 비명소리가 하늘에 사무친 것을 지각하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이사야3:15)고 질책하시는 것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만다. 아마 대국민 사과를 하는 중에도 그는 을이 하급의 지위와 경제적 열등감으로 구성된 존재일 뿐이며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과하는 갑들은 그 사과를 계기로 인간 보편의 존엄성을 각성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지위고하나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돈과 지위보다는 인간에 집중할 때 갑도 자신보다 상층의 갑으로부터 갑질을 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갑질의 최상위에는 사람이 앉은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라는 추상화된 실체가 앉아 있지 않던가? 이처럼 돈과 권력만을 좇으면 인간의 존엄성이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사회는 인간이 사는 사회가 아니다. 결국 갑도 존엄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사회가 갑을이 모두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그저 이상적인 공간으로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여러 차례 일러주셨듯이 그 땅은 애굽의 갑질이 재현되지 말아야 할 공간이며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는]"(이사야10:6) 곳이다. 그러고 보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이 자신과 다르게 보이는 이웃이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라는 명령으로 들린다. 동료 인간들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녀, 남성과 여성, 목사와 성도 등 갑을관계를 적용할 수 있는 어떤 관계이든 인간의 존엄성 앞에서는 어떠한 정치적 술수나 경제적 이득이나 가면 쓴 열등감도 모두 제거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정한 규칙이 확립되어 입맛도 회복되고 살맛나는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하나님, 북녘의 을들의 비명에는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일제의 강점과 억압으로부터 우리나라를 구원하신 것도 을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북녘의 을들은 얼마나 더 그 맷돌질을 견뎌야 하는 것입니까?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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