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고] 요셉과 마리아는 왜 베들레헴으로 갔나? 인구조사가 실제로 있었는가?

입력 Dec 26, 2017 01:41 AM KST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누가복음 2:1-5)

bible_05
(Photo : ⓒpixabay)
▲예수님의 탄생 시기에 총독이 구레뇨였다는 누가복음의 기록에 대해서 역사적 자료와 상이하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문제들과 관련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실제 역사에 기초한 진실한 신앙을 갖도록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신앙을 변증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와 성경에 가해지는 잘못된 비난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위의 본문에 언급된 인구조사와 같은 사건과 관련하여 그것의 역사적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할 때 온유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국제표준성경백과』에 수록된 W. P. 암스트롱의 "신약성경의 연대기" 항목은 참조할 만한 자료이다.

인구조사 혹은 호적조사는 누가복음 2장 1절에 따르면 예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으로 요셉과 마리아가 여행을 하게 된 이유에 해당하는데, 그리스-로마 세계를 통치하던 아구스도(Augustus)의 칙령 때문이었다. 이 칙령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헤롯이 수행해야 했으며 아마도 로마의 방식이 아니라 유대인의 전통대로 각자가 자기 고향으로 가는 방식으로 수행되었을 것이다.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헤롯의 인구조사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누가는 예수의 탄생 시기에 있었던 인구조사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조심스럽게 구별하고 있다. 즉, 구레뇨(Quirinius)와 관련되어 있든, 아구스도의 칙령 때문에 시작된 황제의 정책과 관련되어 있든, 일련의 호적조사 중에서 처음 실시된 것이었다는 말이다.

헤롯 아그립바의 지역적 통치 업적과 그가 수행했던 제국 내의 제도 및 재정적 관심사에 비추어 보면 누가의 설명이 사실에 부합한다는 간접적인 증거를 얻을 수 있다. 아구스도는 로마력 727년(BC 27년)에 이태리와 골 지방에서 인구조사를 실시했고 다른 속지에서도 실시하도록 명령했다. 이집트에는 로마력 773년(BC 20년)부터 매 14년 마다 정기적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구스도가 이 조사를 명령했을 가능성이 크다.

칙령을 발령한 시기에 대해서 누가는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아마도 로마력 727년(BC 27년)이거나 더 늦다면 746-8년경이었을 수 있다. 다른 속지와 점령국에서 인구조사를 실시한 시기는 서로 달랐다. 누가는 헤롯 왕국에서 인구조사가 실시된 시점을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던 시기라고 특정하고 있다. 그러나 킨틸리우스 바루스가 헤롯이 로마력 748년(BC 6년)-750년(BC 4년) 어간에 사망한 직전 혹은 직후에 수리아의 총독이 되었을 때, 그리고 그의 선임자인 C.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가 로마력 745년(BC 9년)-748년(BC 6년)에 재임했을 때, 헤롯 통치의 마지막 시기에 구레뇨가 등장할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 초기의 교부이자 신학자인 터툴리안은 예수가 탄생한 시기에 총독이 사투르니누스라고 지적했다. 인구조사를 구레뇨와 연결시킨 것은 그의 선임 총독들 중 한 명에 의해서 시작된 것을 그가 완성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구레뇨가 특별히 황제의 위임을 받아서 수리아에서 인구조사를 실시했을 수도 있다.

<묵상 주제>

하나님은 우리가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실제 역사에 기초한 진실한 신앙을 갖도록 요구하신다.

기사출처: https://www.biblestudytools.com/bible-study/topical-studies/beyond-sunday-what-brought-joseph-and-mary-to-bethlehem-was-there-really-a-census-11661590.html

오피니언

연재

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13):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이 유지되는 한 신은 인간의 자기 대상화를 통해 인격적인 신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인간과 신의 유사성을 토대로 한 인격주의적 신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