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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교계의 소음과 교회세습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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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지유석 기자)
▲명성교회 세습 문제와 관련해 교단 재판국에서는 교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습 행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베리타스> 8월 7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후 예장통합 총회재판국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무기명 투표를 실시해 찬성 8, 반대 7로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의 위임청빙 결의가 적법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관련기사: http://veritas.kr/articles/31964/20180807/예장통합-총회재판국-명성교회-세습-적법-판단.htm). 그 동안 교계와 일반 사회에서까지 논란이 됐던 명성교회 세습 문제에 대해 재판국이 명성교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 판결은 김하나 목사 청빙 결의무효확인소송이 제기된 지 8개월 만에 이뤄졌는데, 그 동안 교계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수도 없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명성교회 쪽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재판을 앞 둔 7월 29일 명성교회 주일 설교에서는 K모 목사가 "그래 왜, 우리 세습이야. 뭐 어쩌라고"라는 소신(?)을 강변하며 교회세습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기도 했다(관련기사: http://veritas.kr/articles/31848/20180731/그래-뭐-어쩌라고-거침-없는-세습옹호-설교.htm). 이 와중에 재판국원들 중 과반수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세습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다. 재판국에서는 "우리는 말씀드렸듯 아주 공정성 있고 양심과 법과 원칙에 의해 진행했다"며 "국원들 전체가 이러한 결과에 모두 승복하고 기도하면서 마쳤다"고 발표했다. 그러니까 현 시점에는 세습 반대의 목소리가 교회의 미래에 대한 경고의 신호가 아니라 소음으로 간주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신호음이 크게 울려도 사람들이 그것을 무시하면 그 신호는 소음에 불과하다. 공식적인 경로를 거치더라도 그리고 반복적으로 보내더라도 무시하는 사람에게 그 신호는 유의미하지 않다. 그 사람은 네이트 실버(Nate Silver)의 『신호와 소음』(The Signal and the Noise, 이경식 옮김 [더퀘스트, 2014])에 나오는 고슴도치형 인물을 연상시킨다. 고슴도치형은 하나의 원리에 매달려서 고집스럽게 외길을 파는 유형이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유의미한 신호들을 소음으로 간주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 유형분석에 따르면 명성교회는 고슴도치형이다. 명성교회는 외부의 비판에는 철저하게 귀를 닫고 오로지 세습을 관철할 길만을 주시했다. 혹시, 그랬기 때문에 그 교회가 결국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 초지일관의 진리성을 다시 한 번 증명했고, 아마도 명백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내심 자축할 상황이 벌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세라면 앞으로 9월에 있을 총회에서의 투표도 별 무리 없이 성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부정적 암시와는 달리, 명성교회는 고슴도치의 뚝심을 확인하게 했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땅에 굴을 파는 동물임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땅에 구멍을 내기 때문에 기반을 허무는 존재인 것이다. 땅속을 파고들며 앞으로만 가기 때문에 그는 편견과 상상력의 부족을 노정할 수밖에 없다. 세습에 대한 비판을 악으로 간주하다니 지독한 편견이다. 그리고 여러 여건들을 고려할 때 굳이 세습을 고집할 이유가 없는데, 그리고 여러 가지 개선의 신호들이 발사되었는데 왜 위험부담을 안고서 굳이 세습을 밀어붙이는 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이는 세습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부족을 증명한다. 그래서 결국 권력과 돈을 가지면 그 어떤 계획도 관철할 수 있다는 원리가 교회도 지배하게 됐다고 평가받을 만하게 됐다. 그런 평가가 고착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그러면 약자들의 한숨과 한탄은 그저 시혜하듯 던지는 몇 푼의 돈과 제도적 장치에 의한 비인격적인 원조로만 응대되어도 상관없게 된다. 교회에서 복음 정신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에 기초한 교회가 자기함몰로 가는 길이다. 교회 건물이 철옹성 같아도 그 아래의 땅 속에 고슴도치가 굴을 파고 있는 형국이니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10:16)고 말씀하셨다. 명성교회는 세습을 반대하는 '이리'의 무리에 대해서 뱀 같은 지혜를 발휘했다고 자화자찬할 수 있다. 그런데 뱀처럼 지혜로웠다면 여우형의 반응을 보였을 것 같다. 여우형은 고슴도치형과는 달리 여러 개의 접근법을 모색한다. 그래서 새로운 신호에 늘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생각을 교정하려는 열린 마음을 갖는다. 그 유형의 발상에 따르면 지혜로우면서도 순결한 방법이 불가능하지 않다. 교회는 권력과 돈으로 질서를 공고히 할 때보다 복음대로 살며 선포할 때 지혜로우면서 순결해진다.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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