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몰트만 박사 "민족주의 확산, 인류의 후퇴"
나치 정권 하에서 살아남은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입력 Dec 06, 2019 07:43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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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WCC)
▲몰트만 박사가 지난 3일 스위스 제네바 소재 세계교회협의회(WCC) 산하 보세이 에큐메니칼 연구원(Ecumenical Institute at Bossey)에서 강연을 진행하는 모습.

몰트만 박사가 "인류애는 민족주의를 앞선다"며 "민족주의의 새로운 물결이 전 세계의 많은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이는 인류의 후퇴"라고 밝혔다.

몰트만 박사는 지난 3일 스위스 제네바 소재 세계교회협의회(WCC) 산하 보세이 에큐메니칼 연구원(Ecumenical Institute at Bossey)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하며 '국가 종교'가 될 수 없다"며 이 같이 전했다.

몰트만 박사는 이날 강연에서 "그리스도 교회는 사람이 거주하는 지구 전체를 에큐메니칼하게 수용한다. 그것은 부족의 종교 나 서구의 종교, 백인의 종교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교회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대 세계에 뿌리를 둔 새로운 민족주의의 물결은 "인류에 대한 좌절"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강연 후 몰트만 박사에게 질의 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도네시아 출신 기독교인들은 자국의 소수자로서 애국심을 보여야한다고 말했다. 청중 중 한 명은 인류가 국가의 사랑에 대한 합법적인 단어를 찾을 수 있는지 물기도 했다.

이에 몰트만 박사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국가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와 인류의 교회이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극단적 민족주의에 살았다"

"어렸을 때 나는 극단적 인 민족주의, 애국심, 나치 독재에 살았습니다. 히틀러가 1933년 독일에서 권력을 잡았을 때 나는 7살이었습니다. 가족은 반-히틀러 사회주의자와 친히 히틀러 나치로 나뉘 었습니다."

10살 때 부모님은 그를 히틀러 청소년 단체로 보내야했는데 그는 군대식 문화를 싫어했지만 "애국자였기" 때문에 참여했다고 회상했다.

"그 후 그는 나치당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대를 위해 자원 봉사를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버지는 '히틀러는 이 전쟁에서 이기지 말아야 한다'고 했으며 또 '조국을 지켜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1946년 프랑스군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오셨다."

몰트만은 16살 학생 신분으로 독일군에 집징됐고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3년을 보냈다. 이후 1948 년에 아우슈비츠와 독일군 병사들에 의해 독일군이 살해 당하는 사건을 겪었다.

독재에는 조국도 없다고 확신한 그는 "독일에 대한 나의 사랑은 헌법 애국심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교는 민족주의 개념을 거부해야 한다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그는 "교회는 우주의 화해자가 되어야 한다"며 "지구의 평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끝으로 생태 위기 시대를 맞은 교회의 역할도 확인했다. 몰트만 박사는 "기후 변화와 지구 파괴의 시기에 창조의 생태 평화는 그리스도교회에게 매우 중요한 당면 과제"라고 말하며 강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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