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미켈란젤로의 모세: 프로이트와 니그
심광섭 전 감신대 교수

입력 Jan 23, 2020 08:03 AM KST
mose
(Photo : ⓒ심광섭 페이스북 갈무리)
▲미켈란젤로, Moses, 1515 Marble, height 235 cm

작년 10월 6일부터 창세기에 이어 출애굽기를 40여회 그림과 詩를 통해 읽으면서 마지막으로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을 통해 모세의 인물에 대해 생각하면서 마감하려고 한다.

모세에 관한 오경의 역사적 사건은 훌륭한 신화적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다. 3,000년 전의 역사적 사건은 신화적 사건이 되면서 역사적 사건 속에 드러난 영원한 사건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모세는 낳자마자 갈대바다에 버려졌으며 바로의 공주에게 발견되어 이집트의 왕자로 자랐으며 건설의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이집트 사람을 쳐죽인 벌로 미디안 광야로 피신했으며 거기서 어느 날 모세는 불타는 꺼지지 않는 떨기나무 앞에서 소명을 체험했으며 다시 파라오와의 만남은 이집트인들에게 재양을 가져왔다.

갈대 바다가 갈라져 수많은 이집트인이 목숨을 잃었고 40년 긴 긴 세월 광야를 지나는 놀라운 체험은 이스라엘을 한 민족, 한 국가로 결합시켰다. 우레와 번개가 내리치는 시내 산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받았고, 하느님은 선택받은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친구처럼 얼굴을 맞대고 말씀을 들으면서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난 사람이며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백스무 살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던 인물이다.

종교사적으로 여러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주변 국가의 다우림(多雨林) 같은 다신론을 헤치고 유일신관이 굳건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모세 상을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예술혼은 무엇이었을까? 모세 상에 드러난 모세는 오경에서 그린 모세를 담고 있는 것일까? 미켈란젤로의 명성과 이 작품의 훌륭한 작품성으로 이미 다양한 평가들이 있다.

프로이트는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1914년)에 쓴 40쪽 분량(번역)의 글에서 14쪽을 당대의 평가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지면을 할애한다. 물론 뒤에 자기 얘기를 하기 위한 지반을 철저히 닦는 모습니다. 그 중 인상적인 일부는 이렇다.

모세의 얼굴에는 분노와 고통과 경멸이 뒤섞여 있다. 다시 말해 위협하는 듯이 찌푸려져 있는 속눈썹들 속에 분노가, 두 눈의 쏘아보는 듯한 시선 속에는 고통이, 그리고 앞으로 내민 아랫입술과 밑으로 쳐져 있는 입가에는 경멸이 있다(<전집 17>, 123).

모세 상에 대한 주스티의 관찰은 자세하고 공감을 산다. 미켈란젤로는 우리로 하여금 "돌로 만든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리려고 하는 두 개의 율법 판이 놓여 있는 위치에 주목하게 한다. 모세는 불길한 예감을 표현하면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곳(광란의 춤의 현장)으로 시선을 돌렸을지도 모르고, 혹은 그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구역질나는 그 광경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환멸과 분노에 기진한 채로 그는 의자에 앉아 있다. 그는 40일을 주야로 산 위에 머물러 있었고 피곤했음에 틀림없다. 모세는 한 순간 지나친 행동, 어떤 거대한 운명, 죄악, 심지어 어떤 행복한 풍경 같은 것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 잠시 후 그는 그가 이루어 놓은 일들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았고 유대 민족에게 절망을 하고 만다. 이런 순간에 그의 외부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비의도적인 작은 행동들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모세는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두 석판을 돌의자 밑으로 미끄러뜨리고 만다. 그러나 두 석판은 모서리에 걸린 채 팔뚝과 옆구리 사이에 끼여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손은 가슴과 수염 쪽으로 향해 있다. 목을 왼쪽으로 돌리고 있어서 손으로는 수염을 오른쪽으로 끌어당길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해서 이 강인한 남성을 장식하는 수염의 대칭적 모습이 파괴되어 있는 것이다.

손가락들은 마치 요즈음 사람들이 흥분했을 때 시계 줄을 만지작거리는 것처럼 수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왼손은 배의 높이에서 옷 속에 박혀 있다.(구약에서 내장은 심리적 충격이 작동하는 곳이다). 그러나 왼쪽 다리는 이미 뒤로 접혀 있고 반면에 오른쪽 다리는 앞으로 내디딘 형태이다. 잠시 후 그는 벌떡 일어난 것 같고 정신적 에너지는 감각의 차원에서 의지의 차원으로 전달될 것이다. 오른손은 곧 부르르 떨게 될 것이고 율법의 판은 땅에 떨어지고 이제 가증스러운 배교자들의 피가 물결처럼 흘러내릴 것이다."(130-131)

모세가 하산하면서 본 금송아지 앞에서 춤추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목격하고 분노하는 장면이 작품 해설의 주된 배경이다. 그러나 이 해설에는 19세기의 엄격한 도덕의식과 기독교적 세계관이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해석들에 대해 프로이트는 다른 생각을 제시한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율리우스 2세)의 장례 기념물을 제작하면서 전혀 다른 모세, 다시 말해 역사적 인물이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의 인물보다 훨씬 더 위대한 모세를 만들어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부서진 율법 판의 모티브에 수정을 가해서, 모세가 화를 이기지 못해 율법 판들을 부순 것으로 묘사하지 않았으며 반대로 율법 판들이 부서질지 모른다고 우려를 해서 자신의 분노를 삭이는 모세를 묘사했던 것이다. 어쨌든 적어도 그의 분노는 행동으로 옮겨가는 도중에 억제되고 만다. 이렇게 함으로 미켈란젤로는 뭔가 새롭고 초인적인 것을 보세 상에 끌어들였고, 주인공의 강인해 보이는 육체적 볼륨과 힘이 넘쳐나는 듯한 근육질 등은 인간으로서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적 성취에 대한 육체적 표현인 것이다. 스스로를 바친 위대한 사명을 위해 자신의 격정을 누르는 이 행위는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한 빼어난 성취인 것이다."(155)

프로이트는 분노하는 모세라는 종래의 해석을 견제하여 분노를 내적으로 숨기면서 보통의 인간을 넘어가는 비상한 인간성의 성취를 작품에서 보고자 한다. 미켈란젤로는 창작을 하면서 매우 자주 예술이 표현할 수 있는 최후의 한계까지 가곤 했다는 것이다. 그는 격렬한 충격의 회오리가 지나간 후 되찾은 평온 상태 속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통해 이 격정의 회오리를 암시했으며, 이런 의미에서 완벽한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프로이트는 극찬해 마지않는다.

발터 니그는 『미켈란젤로』에서 이 작품에 종교적 의미를 흠뻑 투입한다. 모세 상을 조각한 작품 중, 가령 슬루터(Claus Sluter)의 작품까지 포함해서 ,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하도 위대해서 그 어떤 다른 모세 묘사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종교적 형상이 이보다 더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찬사를 보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니그는 모세의 신화를 처음으로 돌로 성공적으로 형상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이 형상의 위대한 점은 그가 모세를 수백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신화적으로 바라보았으며, 모세에게만 적합한 이 관점에서 모세를 근대의 어떤 문학보다 더 잘 이해했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의 사람인 모세에 대해 쓴 근대 문학은 불충분하기 짝이 없어 읽는 사람이 다 부끄럽다."(82)

니그는 종교 경전에서 역사적 사건의 신화적 구성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그는 근대의 역사비평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역사적 인물 모세를 손에 넣기 위해 모세가 입은 신화라는 옷을 벗겨 버리려는 시도만큼 모세의 본질을 철저하게 흐리는 처사는 없을 것"이라고 역사비평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 이러한 입장은 '역사적 예수 연구'나 그 이후 '예수운동'을 밝히려는 사회사적, 문화인류학적 시도들에서도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니그는 19세기 이후의 역사 비평적 신학은 분해된 인물로부터 애매모호한 그림자만 남겼다고 결론 내린다. 그의 참신한 말은 다음에 나온다. "모세의 위대성,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그의 탁월성은 바로 그가 신화에 근원을 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신화를 자신의 지적 능력에 결코 끼워 맞출 수 없다. 역사를 뛰어넘는 것은 모든 면에서 늘 이성을 뛰어 넘는다. 인간은 학문이라는 작은 망치로 신화를 약간 두드리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오늘의 비평학은 자신이 들고 있는 도구를 못을 박는 작은 망치로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깨부수는 도끼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들에게 작품(기존의 집)은 잡스러운 온갖 쓰레기 더미(경직된 교리, 억압적 제도, 사유의 중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모세의 평생 사명은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바르게 하느님의 뜻을 표명하는 일, 이 일 앞에서 다른 물음은 모두 뒷전이다. 십계명으로 하느님의 뜻이 표명됨으로써 영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백성에게 선사하셨다. "하늘은 나의 거처이고 땅은 인간의 거처라고 한다. 그러나 하늘과 땅을 합일시키는 율법을 통해 하늘은 땅으로 내려왔고 땅은 하늘로 올라갔다"(라삐들의 잠언). 미켈란젤로의 <모세>는 성자나 영웅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자라는 게 니그가 하고 싶은 말이다.

신화를 조각을 통해 성공적으로 형상화한 미켈란젤로, 생동하는 신앙의 힘은 신화에서 나오는 것이지, 종교적인 한 사건에 대한 합리적 분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니그의 말, 합리적 분석은 인간의 속물근성 가운데서 건전한 오성이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만을 참으로 여기려고 한다는 니그의 통찰에 한 표를 던진다.

※ 이 글은 심광섭 목사(전 감신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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