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설교] 하늘나라의 훈련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입력 Feb 03, 2020 09:04 AM KST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창세기 24:42-48, 시편 24:3-6, 마태복음서 13:24-30, 51-53

[비유 모음과 하늘 나라의 율법학자]

마태복음서 13장에는 모두 7개의 비유가 나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밀과 가라지의 비유와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겨자씨와 온통 부풀어 오른 누룩의 비유, 밭에 숨긴 보물과 좋은 진주를 발견한 사람의 비유와 세상 끝날 심판과 관련된 고기잡이의 비유가 담겨 있고, 중간 중간에 비유로 말씀하신 목적과 비유의 해설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태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다섯 설교 중 세 번째 설교입니다.

이 비유들 모두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되어 있고, 예수께서 펼치신 하나님 나라 운동이 어떤 성격을 지니며,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이고, 또한 하나님 나라 운동의 미래는 어떻게 될 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런 비유의 말씀들을 마치면서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확인하십니다. 하나는 제자들이 이 모든 비유를 깨달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늘나라를 위하여 훈련받은 율법학자는 어떠한 사람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서에서 율법학자들은 대개 부정적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이 본문에 나온 하늘나라의 율법학자는 마태공동체 구성원 전부가 따라야 하는 하나의 롤 모델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마태복음서를 만들어 낸 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정체성을 담고 있는데, 자신들은 하늘나라를 위하여 훈련 받은 율법학자이며 바로 자기 곳간에서 새 것과 낡은 것을 모두 꺼낸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서를 쓴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 전통과 예수님을 통해서 배운 새로운 세계의 지혜를 모두 함께 간직하고, 그것을 가지고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이 험난한 세상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려고 한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유대교 전통에 내려오는 귀한 신앙 유산을 잘 이어나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며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계 모든 만물을 잘 돌보려는 청지기 의식을 지니고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자신의 일상적 삶에서 종교적 생활까지 최선을 다해 살려고 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율법의 잘못된 해석과 경직된 적용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도리어 억압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더 중요한 생명과 선한 마음으로 즉 사랑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존의 율법학자나 제사장들, 성전을 중심으로 종교적 정치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보면서 자신들은 더 철저한 율법 정신의 준수와 사랑의 실천으로 무장하고자 했습니다.

마태교회 교인들의 노력이 곧바로 결실을 맺은 것은 아닙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처럼 바로 좌절되기도 하고, 싹이 났다가 시들기도 하고, 자라지만 결실을 얻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때에 엄청난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겨자씨처럼 작고 보잘 것 없더라도, 언젠가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많은 사람에게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내는 공동체가 될 것을 꿈꿨습니다.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놓고 결단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밀가루에 넣은 누룩이 빵을 커다랗게 부풀게 하듯이, 자신의 몸을 드리는 성도들 덕분에 공동체가 성장하는 경험도 했습니다.

이러한 마태교회의 경험들이 13장 예수님의 비유에 녹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마태교회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자세입니다. 옛날의 경험도 버리지 말고, 새로운 변화 속에서 바뀐 환경 속에서 또 새로운 지혜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겠다는 마태공동체처럼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우리 생명사랑 신앙공동체가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진짜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우리가 가려는 길에는 극복해야 할 많은 장애물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 예수께서 하셨던 그 하나님 나라 운동을 오늘날에도 이어가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것을 모두 깨달았느냐?]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주역이 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훈련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비유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이것을 모두 깨달았느냐?"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비유로 가르치시기도 하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려 주시기도 하고, 긴 설교를 하시고, 바리새파나 율법학자, 사두개파들과의 논쟁을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그 때 거기에 많은 이들이 있었고, 예수님 주변에는 제자들이 늘 동행했지만, 때때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을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감탄을 했고, 마음이 찔려했고, 인생을 바꾸게 됩니다.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여러분들은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을 얼마나 깨닫고 있는지요? 제가 수요사경회를 하고, 지금 다양한 동영상을 찍어서 우리 생명사랑 유튜브 채널과 다음 카페, 홈페이지 등에 올리고 있는데, 이것들을 시청한 다양한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서 문의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비판하는 댓글도 달고 합니다. 격려를 하던 비난을 하던 그 모두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제대로 읽는 일에 애를 쓰셔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모든 문제는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말씀을 철저하게 배우고 익히면서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찾고 깨달아야 거기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얻는 것인데, 그런 진지한 과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 인간의 생각과 경험으로 목회를 하고, 심리학을 동원하고, 그럴 듯한 행사와 돈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한다고 나섰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세상의 근심거리와 조롱거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그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저와 여러분 모두가 더욱 더 성경을 제대로 다시 읽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올 해 들어 우리교회는 3년에 맞춘 성경통독을 시작했고, 토요일 저녁에 모여서 그 주간에 읽은 말씀들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더 깊이 깨닫고, 하늘나라의 일군들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들이 더 많이 참여해 주셔야 합니다.

3월부터는 생명사랑 제자교육 기초반과 심화반이 이어집니다. 또 예수 알기 모임을 마치고 이제 곧 바울 사도의 삶과 가르침과 선교를 살피는 성서배움마당도 개설됩니다. 이런 기회들을 모두 꽉 잡으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신념은 결국 문제를 일으키고, 공동체에 분열을 가져 옵니다. 여러분 모두! 성경의 전문가가 되셔야 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길]

말씀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읽고 삶에서 적용하고 실험해 보면 말씀이 무척 큰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의 말씀은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하나님 계신 거룩한 곳에 들어설 수 있는 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손과 해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 헛된 우상에게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함께 모여 거룩한 하나님께 예배하려면 우리는 깨끗한 손과 해맑은 마음을 지녀야 하고, 삶의 중심에 반드시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근심과 걱정들이 우리의 마음을 헤집어 놓기 때문입니다. 헛된 우상들이 자꾸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우리 손은 늘 더러워지고, 우리들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우리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 버립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기 어렵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서의 밀과 가라지의 비유와 창세기의 말씀은 하늘나라를 위해 훈련 받은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삶의 기준이 잡힌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잃은 아브라함은 이제 아들 이삭의 결혼을 준비합니다.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맡아 보는 오랜 연륜을 지닌 종을 불러 이삭의 배우자 될 사람을 찾으러 고향으로 보냅니다. 그래서 종은 열 마리의 좋은 낙타와 온갖 진귀한 선물을 준비하여 아람나하라임을 거쳐 나홀이 사는 성에 도착하였는데,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고 마침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습니다.

이 종은 이삭의 배우자가 될 사람을 고르면서 자기에게 물을 흔쾌히 줄 뿐만 아니라 끌고 온 낙타 열 마리에게도 선뜻 물을 주는 이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인 줄로 알겠다고 말합니다. 이 종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이렇게 낯선 이를 환대하고,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까지도 돌보는 배려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낯선 이를 늘 환대하던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고, 이런 삶의 태도 속에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얻었으며,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 자기 조카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종은 주인의 이런 삶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에 바로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을 가족으로 선택하려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은 이 사건을 기억하며, "나그네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들은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하였습니다."(히 13:2)라고 말했고, 예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누가 16:9)고 말씀하셨습니다. 낯선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작은 생명도 돌보는 마음은 가장 고귀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에서 절실하게 요청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마음을 길러내고 유지할 수 있을까요? 한국 사람들은 지난 100년의 세월을 살면서 많은 험한 꼴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한(恨)이 쌓여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안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고, 사회 전체를 생각하기 보다는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빼앗지 않으면 빼앗기는 세상에 사는 이들의 마음은 늘 불안합니다. 여유를 갖기 힘듭니다.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지, 차분히 따져보는 능력이 매우 약합니다.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다양한 대화 속에서 나오는 이견일 뿐인데도 존재가 거부당한 느낌이 듭니다. 창의적 사고를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들을 줄 알아야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쉽게 감정이 상하고 맙니다. 감정이 상하면 상대를 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적은 함께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없애려고 합니다.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다르게 바뀔 수도 있는데, 한 면만 보고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해 버립니다.

성경을 차분히 살피고, 성경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을 찾다 보면 우리가 가진 이런 단점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할 때, 우리는 치유됩니다. 따라서 말씀대로 사는 것은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못해 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대로 사는 길이야말로 우리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운동이 좋은 성과를 내려면 기초부터 올바른 자세와 탄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이 다소 벅차고 힘들게 느껴져도 기초를 다지면 그 이후에는 더 큰 성장과 발전이 있듯이, 말씀을 깊이 있게 다루는 훈련은 위기로 가득한 삶을 살아내는데 큰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마시멜로 실험과 인내하는 힘]

선생님이 4살 된 아이들에게 마시멜로가 한 개 들어있는 접시와 두 개 들어있는 접시를 보여줍니다. 지금 먹으면 한 개를 먹을 수 있지만 선생님이 돌아올 때 까지 먹지 않고 있으면 두 개를 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마시멜로가 하나 들어있는 그릇을 아이 앞에 남겨놓고 방에서 나갑니다. 선생님이 나갔다 들어오는 15분 동안 아이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먹어버리거나, 참다 참다 중간에 먹어버리거나, 끝까지 참고 기다리거나.

마시멜로 실험을 하였던 미셸(W. Mischel) 박사는 1966년에 만났던 653명의 네 살배기 꼬마들을 15년 후 십대가 된 다음에 다시 만납니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오래 참은 아이일수록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삶 전반에서 참지 못한 아이들보다 훨씬 우수했고, 대학입학 시험(SAT)에서는 또래들에 비해 뛰어난 성취도를 보였습니다. 인내력을 발휘한 꼬마들은 성공한 중년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인내하지 못한 꼬마들은 비만, 약물중독,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를 가진 어른으로 살게 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매우 재미나지만 딱 그 일을 그만 둘 수 있는 힘,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너무 지루하지만 그것을 계속할 수 있는 힘! 기다릴 수 있는 힘, 참는 힘을 자기 통제력, 절제력, 또는 만족 지연력(delay of gratification)이라고 부릅니다. 마시멜로 실험 결과는 어릴 때의 만족 지연력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삶의 질을 결정함을 이야기해 줍니다.

80년대에 한 가지를 바꾸고 다시 마시멜로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나갈 때, 마시멜로 통의 뚜껑을 덮어 둔 것입니다. 그랬더니 평균 6분 이하를 기다린 아이들이 11분 이상을 기다렸습니다. 60년대 실험을 할 때에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보지 않으려고 자신의 손으로 눈을 가리거나,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눈을 덮거나, 천장을 쳐다보거나 등의 행동을 스스로 만들어 냈고, 두 번째 실험의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마시멜로를 보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15분을 견디지 못한 아이를 참을성이 없는 아이라고 명명하는 대신에 마시멜로 그릇에 뚜껑을 덮어 놓은 것만으로 두 배 이상의 시간 동안, 어른이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경험한 것만으로 네 배 이상의 시간 동안 참을성을 보여주는 아이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이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인내력, 절제력, 통제력이 있는 아이 뒤에는 인내력, 절제력,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준 어른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복음서의 밀과 가라지 비유는 바로 이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서를 쓴 사람들, 즉 마태교회의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집안과 저 집안이 서로 원수였는데 어느 날 보니 한 교회의 교인이 되었고, 서로 얼굴도 보기 싫을 정도로 된 사이도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교회 공동체 전체를 망칠 수는 없었기에 마태교회의 지도자는 계속 용서하고,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고, 원수도 사랑하라고 설교하고 설득하고 권면합니다.

오늘 본문도 그러합니다. 밭에다 분명 좋은 씨를 뿌렸는데, 보니까 밀이 잘 자라는 그 사이에 가라지가 섞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줄기가 자라고 이제 곧 이삭이 패고 낟알이 들어찰 무렵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손해가 생기기 때문에 주인은 일단은 내버려 두라고 합니다. 가라지는 뿌리가 밀보다 튼튼하고 독이 있는 이삭을 맺으며 밀밭에서 60센티미터까지 자라는 독보리입니다. 밀과 함께 뿌리가 엉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독보리를 함께 수확하여 밀과 섞이면 나중에 배탈이 나고 몸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을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밭주인은 말합니다.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추수할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

오늘 성경 본문은 분명이 말합니다. 마지막 심판 날에는 분명히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 행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하고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이들은 반드시 처벌 받을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그러나 한편 지금 우리 눈에 교회 공동체에 분란을 일으키고 다른 믿음의 형제에게 피해를 주는 등 가라지 같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교회에서 견책을 할 때는 매우 신중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견책하면서 혹시라도 교회의 다른 지체가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능한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교회 공동체는 서로 사랑하도록 애쓰라는 것입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견디고 참아주는 힘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부들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교회에서는 밀이 가라지가 되고, 가라지가 밀이 되기도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밀인 사람은 수확 때까지 견뎌내고, 가라지인 자들은 수확 전까지 반드시 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이 지금은 밀과 같은 존재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도 가라지처럼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늘 조심하고, 교인 중에 어떤 사람이 가라지 같은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언제든 바뀔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바로 사랑과 정의와도 관련 되어 있습니다. 정의는 필요합니다. 옳고 그른 것은 분명히 밝히고 알려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를 실천할 때 늘 사랑의 마음으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얼마든지 회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기를 기준으로 남을 나쁨으로 정죄하고 그들을 제거하는 것은 사랑의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사랑을 말하면서 참는 것으로 시작해서 견디는 것으로 끝내는 것입니다. 형제자매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마시멜로 실험에서 믿고 따를 수 있는 신뢰 공동체가 있는 곳에서는 훨씬 더 참을성과 견디는 힘이 늘었다는 사실을 보았듯이, 우리 생명사랑 교회공동체 또한 사랑으로 품어주고 기다려 주고 견뎌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공동체는 옛 것과 새 것을 골고루 간직할 줄 압니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며, 각각이 가진 장점을 두루 취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말씀을 바르게 읽고 실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올 한해 저와 여러분이 하늘나라를 위하여 정확하게 훈련을 받는 한 해가 되길 빕니다. 그래서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말씀의 능력을 드러내길 바랍니다.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읍시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주님! 늘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지켜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밀과 같은 말씀을 뿌려 놓으셨는데, 때로 우리는 가라지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대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온전한 열매를 맺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시는데, 때로 우리는 열매 대신 쭉정이를 내거나, 원수들이 뿌려 놓은 유혹에 넘어가고, 가라지의 모습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모든 유혹을 이겨내게 하시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열매를 맺을 때까지 정진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넉넉한 사랑의 마음을 주소서. 막 돋아나는 새싹 같은, 아기의 보드라운 살결 같은 마음 주소서. 세파에 시달려 차갑고 딱딱하게 굳은 마음, 외로움에 지쳐 메마른 마음! 당신의 따뜻한 숨결로 녹여 주시고, 당신의 세밀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기쁨만 아니라 슬픔도 감사하며, 희망만이 아니라 절망도 감사하며, 가진 것만이 아니라, 없는 것도 감사하며, 승리만이 아니라 패배도 감사드립니다. 비 온 뒤 땅이 더 단단해지며, 대장간 쇠붙이는 불이 붙고, 두드려 맞을 때 제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늘 우리를 보살피시고 돌보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 주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우리의 생각과 몸과 마음도 드립니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하나님 나라 운동에 이 귀한 예물들이 쓰이게 하여 주시고, 무엇보다 우리가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삶이 거룩한 산 제사가 되길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하늘 나라를 위하여 훈련 받은 전문가가 됩시다. 저와 여러분들은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 축도

그리스도의 온기가 여러분들을 치유하고, 그리스도의 눈이 여러분들을 응시하며,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에게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하늘나라를 위하여 다시금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려는 생명사랑 교우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이 설교문은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의 2월 2일 주일예배 설교 원고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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