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코로나19 이후 기독교인의 자세를 묻다(Ⅱ)

장동민·백석대 교수(교회사)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서":공공신학의 입장에서 전염병을 대하는 기독교인의 자세를 생각한다(2)

우리 시대의 제사장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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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장동민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코로나19 사태로 온 나라가 마비되었다. 모든 국민이 공포에 떨면서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혐오의 바이러스가 모두의 마음을 좀 먹고 희생양을 찾아 그를 비난함으로 분노를 삭인다.

다시 이 글의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가로 막은 사람은 아론이었다. 그는 제사장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후 아론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역사 대대로 제사장이 되었고, 과거 아론이 하던 일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 역할을 계속하였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제사장은 누구인가? 목사들은 아마 자신들이 이 시대의 제사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성도들을 심방하여 그들을 위하여 기도드려주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씀을 선포하니 말이다. 아니면 박식한 사람들은 종교개혁자들의 만인제사장주의를 떠올리면서 모든 성도들이 다 세상을 위한 제사장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구약의 직분과 현재의 직분을 쉽게 동일시하는 것은 구약 이스라엘 시대와 우리 시대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시대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약 시대는 신정(神政) 정치 시대였고, 오늘의 대한민국은 정치와 종교가 엄격히 분리된 세속국가이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의 직분은 영적 의무와 사회적 역할이 분화되기 전, 이 둘을 동시에 맡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 제사장의 역할을 오늘날은 누가 담당하는지를 알기 위하여서는, 영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나누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구약 이스라엘 시대 '제사장'은 그 사회 속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흔히 구약 시대의 직분을 제사장, 왕, 선지자의 3직(職)으로 규정하곤 하는데, 실제로는 제사장이 그 숫자나 역할 면에서 왕이나 선지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였다. 고대국가의 왕권이 강화되면서 제사장이 왕궁 관리의 하나로 취급된 적도 있으나,(예, 삼하8:17) 왕궁 밖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제사장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제사장은 단순히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전국에 수백, 수천의 제사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순번을 기다렸다가 성전에서 섬겨야 하였다. 그 외의 대부분의 시간에 그들은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의 규정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사는 방법을 자문해 주고, 한센 병이나 여성의 부인병 등을 진단하여 공동체를 건전하게 유지하고, 재판을 담당하였다. 이들이 사는 곳은 성전 주변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 위치한 도피성을 중심으로 백성들이 있는 곳 어디든지 함께 살았다.

오늘날로 치면, 제사장은 법조인, 의료인, 공무원, 교사, 목회자 등 공적 서비스(public service)를 담당하던 '공복'(公僕)이었다. 오늘날은 사회가 복잡하게 분화되어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제사장의 업무를 나누어 맡고 있는 셈이다. 제사장들은 생산적인 일을 하는 대신 백성들이 낸 십일조를 가지고 생업을 삼았으니, 다른 말로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자

제사장의 사회적 역할을 이렇게 규정하고 보니, 전염병이 창궐하는 오늘 대한민국에서의 제사장이 누구인가는 명확해 진다. 의료진과 그들을 관리 감독하는 보건당국과 정부인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하는 일을 보자. 그들은 과거 아론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의심 환자들이나 확진자들 사이로 들어가야 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문진하고, 검체(가래)를 채취하고, 분석한다.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하고, 수술을 하고, 밤새 간호를 한다. 위급해 지면 주저 없이 몸에 올라 타 CPR을 하고 에피네프린을 주사한다. 바이러스를 내뿜는 환자와 의료인을 구분하는 것은 얇은 방호복과 비닐장갑과 고글뿐이다. 환자들은 그들의 손으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돌봄을 받는다. 때로 그들이 보는 눈앞에서 죽기도 한다. 그야말로 죽은 자와 산 자의 사이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노하는 하나님의 공격으로부터 사람들을 방어하고 건져내려 한다. 의사의 세계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은 내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을지 모른다. 사명감에 이끌려 의사가 된 것도 아니고, 직업의식도 그리 투철하지 않으며, 돈과 명예를 좇는 속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얀 거탑"이나 "스카이캐슬"에서 의사들의 삶을 엿볼 때 혹은 뉴스에 가끔 나오는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을 들을 때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그러나 의료인은 본디 제사장의 후예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비상시국이 되면 제사장으로서의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확진자가 폭증하는 대구시로 자원하고,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여유도, 밥 먹을 틈도 없이 움직인다. 잠시 시간이 나면 쪽잠을 자고 다음 환자를 맞을 준비를 한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땀 때문에 흘러내리는 고글을 올리다가 바이러스에 오염되기도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오른손이다. 이들의 노력에 의하여 하나님의 진노는 누그러지고 전염병을 옮기는 죽음의 천사는 물러간다. 그러니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이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이들의 전문가 소견을 경청해야 한다. 의료진 뿐 아니라 그들을 관리감독하고 행정적 지원을 하는 방역당국의 말에도 기쁘게 따라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롬13:4) '사역자'라 하면 교회에서 일하는 목회자를 가리키는 전문용어인줄 아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목사들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여 자신의 기도와 목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멈출 줄 아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여기서 한 가지, 그리스도인 의료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든 의료인들이 제사장인 것은 맞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전문직을 가지고 공적 서비스를 하는 분들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장'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실 것을 믿으며, 매 순간 겸비하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용기를 가지고 기쁨으로 섬기며 희생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제사장을 통하여 환자들의 육신을 치료할 뿐 아니라 그들의 영혼에 위로와 안식을 주신다. 사실 나는 이런 '사역자'가 무너져가는 한국교회를 지탱하고 있는 최후의, 그리고 슬프게도 어쩌면, 유일한 버팀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교회의 할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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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이활 기자 )
▲코로나에 대한 한국교회 대응 방식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의료인만이 우리 시대의 제사장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났기에 그들이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것일 뿐, 앞서 언급한 공공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제사장들이다. 예컨대 세월호 사건 때는 침몰하는 배 안에서 학생들을 진정시키고,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학생들에게 주고 죽음을 택한 선생님들이 제사장이었다. 만일 그 선생님들이 없었더라면, 이 일 후에 일어난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공복'들의 이기적인 행태 때문에 우리 사회가 완전히 결딴났을 것이다. 하나님을 막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이 선생님들의 희생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교회의 역할은 없는 것인가? 단지 공공 서비스 직종을 가진 성도 개인이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는 일을 할 뿐인가? 앞에서 나는 구약시대의 제사장의 직분은 영적 의무와 사회적 역할을 동시에 맡았던 사람들이었으므로 영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제는 영적인 측면에서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첫째,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전서 2:9의 말씀처럼 모든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제사장으로서 성도들이 무슨 일을 하여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있을까? 세상을 위한 기도이다. 대제사장 예복의 가슴에 있는 12 보석이 상징하는 것처럼, 제사장들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죄 지은 백성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깨끗한데 세상은 죄로 가득하니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겠다는 자세로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다윗처럼 자신의 죄악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삼하24:17), 예레미야처럼 입을 땅의 티끌에 대고 잠잠히 기도하며(렘애3:28,29), 바울과 같이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할 것이다.(고후11:29)

둘째, 목회자가 제사장이다. 목회자는 사회적 공복의 하나이면서도 매우 특별한 지위를 가졌다. 목회자만 하나님의 종이고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오직 그의 말씀 선포와 삶을 통하여서만, 이 세상의 사역자들이 무슨 일을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는지가 알려진다는 의미에서 특별하다. 목사는 성도들에게 기도에 대하여 가르쳐야 하고, 먼저 자신이 기도해야 한다. 그는 성도들 가운데 공적 직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명감을 불어넣어야 하고, 자신이 먼저 사명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겸비함만이 진노 중의 긍휼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해야 하고, 모든 회중에 앞서 더욱 겸비해야 한다. 그는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과 우리 사회에 평안과 위로를 줄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하여서 먼저 자신의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깊이 경험하여야 한다.

목회자는 교회라는 기관(혹은 비즈니스)을 운영하는 운영자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주일 예배를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가지고 고민하는 것은 교회의 운영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고민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논의를 여기서 그치고 마는 협량(狹量)이 안쓰러웠다. 교회 중심주의를 벗어나는 것은 이번 생애에는 정녕 어려운 것인가.

제사장이 가지지 않아야 하는 마음 한 가지를 들라면 차별과 배제다. 혐오는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앞서 가신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까지 용서하고 포용해야 한다. 한 가지 제발 부탁인데, 목회자들이 최소한 욕 좀 안 하면 좋겠다. 웬 살벌한 육두문자를 그렇게들 쓰는지, 어디서 그런 저주 섞인 욕설을 배웠는지 모르겠다. 신천지 교인들에 대하여서도 그들의 가르침과 전도 방식을 미워할지언정, 그들을 혐오해서는 안 된다. 신천지 개종자 가운데 젊은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교회가 젊은이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신천지의 실상을 알게 된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셋째, 교회가 이 세상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움직여지는 영적인 기관이며 동시에 세상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가진 사회적 기관이다. 교회 건물은 절간처럼 산 속에 서 있거나, 성당처럼 높은 곳에 서 있지 않다. 교회는 주택가 한 복판에, 아파트 상가의 2층에, 사무실 한 칸을 빌려서, 가정집 안방에, 사람들이 있는 곳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회의 기관으로서의 교회가 제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사람들과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가장 잘 알 것이다. 마스크가 필요하면 마스크를, 손 세정제가 필요하면 손 세정제를,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보내는 것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격려가 필요한 사람에게 작은 선물과 손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중국에 선교하려고 별별 노력을 기울이는데, 하나의 마스크로 이틀을 견디고 남는 것은 모아서 중국에 보내면 어떨까? 수만 명의 중국 유학생들이 들어오는데, 가까운 교회가 이들을 부모의 심정으로 돌보아 주면 어떨까? 많은 물질이 필요할 것이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헌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닐까.

※ 이 글은 장동민 백석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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