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성령강림주일 설교] 내면의 불꽃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입력 Jun 02, 2020 07:20 AM KST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레위기 19장 1-4절, 시편 121편 1-8절, 고린도전서 9장 19-27절

[성령 강림 주일]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종노릇 하던 히브리 백성이 자유를 찾아 애굽에서 나온 지 오십일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율법이 새겨진 돌판을 줍니다. 이 돌판에는 출애굽한 무리들이 광야의 여정과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약속들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레위기의 말씀에서 야훼 하나님은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는 이 날을 기념하였고, 이때부터 오순절이라는 유대교의 명절이 시작됩니다(출애굽기 19장 이하).

나사렛 예수를 따르던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하늘에서 거룩한 영이 세찬 바람과 함께 그 자리에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에게 문자로 된 율법을 받았던 바로 그 날에,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는 하늘의 거룩한 영이 파고들었습니다. 내면에 불꽃이 일었고, 뜨거운 기운이 온 몸을 사로잡았으며, 사도들의 입에서는 세계 각국의 언어들이 마구 터져 나옵니다. 교회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사도행전 2:1-13).

사도행전은 그 날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방언은 각 지방의 언어라는 뜻으로 주로 갈릴리 출신이었던 제자들의 입에서 전 세계의 언어가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고, 이것은 세계로 흩어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바벨탑과 성을 쌓다가 서로 불통했던 사건을 온전히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늘의 거룩한 영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차 성령이 시키는 대로 세상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강림 사건은 세 가지 차원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로부터 땅으로 임하는 수직적 차원이요, 또 하나는 사람들끼리 통하게 되는 수평적 차원이고, 마지막은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 온 몸을 채우고 우주마저 채우는 깊이와 넓이의 차원입니다. 한국에는 970만에 가까운 교인들이 있지만,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소통하는 수평적 차원에서 실패하고 있고, 그리스도교 신앙전통이 지니는 깊이의 차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세상 사람들은 수직적 차원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합니다.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을 두고 새로운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던 이들처럼 현대인들도 종교의 높이와 깊이에 무지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게 똬리를 틀고 있는 허무와 불안,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문명을 만들었고, 거기에 스스로가 찬사를 보내며 감탄하지만, 무한한 욕망을 자극한 결과 유한한 지구 생태계를 망치고, 인간 자신의 생명마저 위협하는 결과를 맞이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넘어서는 초월의 하나님을 체험하였고, 그 하늘의 불씨를 자신의 내면에 담았으며, 그 힘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한편으로 세상을 변혁해 나갔습니다. 오늘 저는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여러분과 함께 이 날의 감동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성령에 대한 오해, 그리고 성령의 참된 능력]

첫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받은 날 베드로가 긴 설교를 합니다.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마음에 깊이 느낀 바들이 있어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행 2:38)

베드로의 첫 마디가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첫 선포를 이은 '회개하라'는 명령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코로나 19가 지금 교인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고, 몇 퍼센트나 이 시험에 합격할지 모르지만 성령과 관련하여 말씀 드리자면,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지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오해해 왔습니다. 방언이나 기적적인 치유, 반지성적인 뜨거운 감정의 울결을 성령의 은사나 열매의 전부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지극히 적은 부분을 전체로 알았던 것이 가장 큰 잘못입니다. 주변부 현상을 핵심적인 것으로 오해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방언을 통해 하나님과 개인적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세상 전체를 향한 예언자의 목소리는 내지 못했고, 자기 한 몸 아픈 것은 나았을지 모르지만, 도덕적 삶을 통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거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공적인 역할에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찬양하고 목소리 높여 울부짖으며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쌓였던 한을 풀어내기도 했지만,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샘솟는 깨달음과 기쁨을 일상의 삶에서 이웃과 함께 누리거나 나누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성령은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며, 세상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기억하고 재현하게 하는 영인데, 성령을 삼위일체 하나님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마술사 정도의 차원에서 이해했던 것이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한계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 성령강림 주일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령에 대해 바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사랑과 기쁨,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라는 사실(갈라 5:22-23)을 명심하면서, 왜 성령을 받은 우리가 이런 열매들을 얻지 못하는 지 진지하게 고민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성령은 생명의 영입니다. 성령은 우리들에게 생명을 수여하며, 살아갈 힘을 주고, 기쁨의 근원이 되며, 희망의 원천이 됩니다.

거룩한 영은 세상이 창조되던 그날, 모든 에너지가 한 점에 모여 있고, 바로 거기로부터 모든 가능성과 물질들이 태어나던 우주 탄생의 첫 날, 거기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즉 성령은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힘을 담지하고 있습니다.

138억년 전 우주가 탄생한 이후에 태양계가 생기고, 지구가 태어나고 또 많은 생명체들과 인류가 터를 잡고 나서, 이 지구별은 몇 번의 대 파괴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소행성의 충돌로 공룡이 지구에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대재난 뒤에 지구에는 생명의 위대한 다양성이 만개했습니다. 이후로 지구에는 매우 여러 번 큰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문명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홍수와 기근과 지진과 전염병의 창궐로 수많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계 대전들을 겪으며 인류는 생명의 멸절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고, 지금도 전 세계에는 지구가 몇 번이고 멸망할 수 있는 핵무기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거대한 멸종사태들은 생명을 파괴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항상 살아남고 승리하는 생명은 수천 년의 진화적 과정 속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생명 형태들을 복원시켰습니다. 지금 코로나 19의 위기로 모두들 두려워 떨고 있지만 힘을 불어넣으시는 성령에 의해 생명은 여전히 존속할 것입니다. 분명 어둡고 고통스러우며 두려움 가득한 성 금요일이 존재할 것이지만, 그것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영광스런 부활의 도래를 막을 수 없습니다.

구약성서가 증언하는 성령은 역사의 위기마다 사람들에게 임했고, 억압과 불평등을 깨치고 자유를 찾아 나서는 자리에 언제나 계셨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갈망하던 때에 갈릴리 작은 동네 연약한 소녀 마리아에게 임하셨고, 그의 아들 나사렛 예수와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를 불러 광야로 보냈으며, 그에게 큰 능력을 부여하였고,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 지를 보였고, 부활의 영광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 성령은 이제 제자들에게 임하고 오늘 이 자리에도 와 계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주파수에 겸손하게 자신을 맞추는 사람들, 인간의 힘과 생각으로만은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들에게 오십니다.

스스로가 쇠를 녹여 신상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거기에 절하고 숭배하지만 않는다면, 세상이 만들어 준 가치, 돈과 권력, 세속적 욕망의 추구에 걸려들지 않는다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고 눈이 멀어 속임수에 빠져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우리를 찾아오시는 성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본다면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오른쪽에 서서 우리를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시며, 우리들의 생명을 건지실 것입니다. 우리가 나가거나 들어가거나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 주님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특별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찾아 오셔서 위로하시며, 우리가 자유를 가지고 스스로 서도록 만들어 주시는 분이시며, 과거의 잘못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으로 질적인 도약을 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령은 인간의 의식과 지능을 사용하셔서,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도록 하며, 더렵혀진 것을 깨끗하게 하고, 메마른 곳에 물이 솟게 할 것이고, 상처 난 흔적들을 치유하십니다.

[성령을 받은 자 바울]

오늘 바울 사도는 성령을 받은 자의 모습이 어떠한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의 종에서 벗어나 성령이 주시는 자유를 얻은 사람입니다. 바울 안에 계신 성령은 모든 것을 판단하시면서 자신은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성령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2:15).

그런데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바울 사도가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된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처럼,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때로 율법 없이 사는 사람처럼,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경지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에 쓰는 편지에서 가능한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라고 권면했습니다.(12:18) 그 권면대로 바울 사도는 스스로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그를 거꾸러트리지 못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사태를 수용할만한 품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와도 그를 이해하고 품어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내게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생 전체가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와 대화하기 위해서 나를 비울 줄 알아야 하고, 잘 들을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를 사랑해야겠다는 결단과 다짐이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 사도께서는 운동 경기의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금메달을 따기 위해 훈련하는 선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분야에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 최고는 훈련의 연속으로만 가능합니다. 얼마나 지혜롭게 또 정직하고 진지하게 용맹 정진했느냐가 승패의 결과로 드러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불씨가 들어 있습니다. 그 불씨를 피워, 나를 사르고 세상을 비추려면 단단한 각오와 자발적인 질문과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의 성실함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교인 카톡방에 올려 드려서 여러분들이 보셨으리라 생각하는데, 엊그제 최진홍 집사님과 이건화 권사님이 KBS 생생정보통에 출연하셨습니다. 누수탐지 전문가로서의 최진홍 집사님의 모습이 아주 잘 그려졌기에 저도 매우 재밌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최 집사님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꼼꼼하고 세심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장점이 일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집을 지을 때 몇 가지 집중해서 살필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단단한 지반과 튼튼한 골격입니다. 뼈대가 중요하지요. 그리고 나서 가장 꼼꼼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단열과 방수입니다. 실제 집을 지어보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로 물이 새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누수가 문제인데, 바로 최 집사님이 이 분야의 전문가이시지요.

전문가로서의 첫 번째 특징은 무엇이었던가요? 그렇습니다. 첨단 장비를 이용한 정확한 진단입니다. 정확한 진단 없이 누수공사를 하면 건물을 망치고 엄한 곳을 부수게 됩니다. 그런데 최 집사님은 청진기와 내시경까지 사용해서 정확한 진단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하루에 한 두건만 공사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무리하지 않는 것이지요. 길게 가려면 시간 관리와 건강, 일감을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최 집사님은 아주 잘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무엇인가요? 오래도록 쌓은 경력과 노하우입니다. 이것은 몸으로 겪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누수의 다양한 원인을 찾는데 오랜 경험과 그 경험에서 얻은 지혜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무엇일까요? 바로 철저한 AS이지요. 공사한 현장을 몇 달이 지나 다시 방문하고 점검하는 것입니다. 집사님께서 하신 마지막 인터뷰는 자신의 기술을 후배들에게 잘 전수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집에 물이 샌다면 우리는 최진홍 집사님께 도움을 요청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믿음이 새어 나간다면 우리는 누구를 불러야 할까요? 그리고 철철 새고 있는 신앙의 누수는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요?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오래도록 공을 쌓아야 합니다. 스스로 질문하지 않으면 물이 새는 집에서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살다간 곤경에 처할 때마다 짜증이 나고, 코로나 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늘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려야 할 것입니다.

최 집사님께서 자신의 기술을 후배들에게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셨던 것처럼 저의 고민 또한 이 위대하고 단단하고 슬기로운 성령의 지혜를 어떻게 많은 이들에게 알려 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안에는 모든 역경을 넉넉히 이겨낼 내면의 불꽃이 있는데 그 불꽃을 어떻게 활활 타게 만들 것인가가 저의 숙제입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지만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본주의적 세계관이 온 세상에 만연한 이 때, 세상 사람들은 깊이 있는 인간, 새로운 인간성을 향한 질적인 도약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런 세속화의 물결이 교회 안에도 침투해서 그리스도교의 깊고 넓은 진리, 세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경험하기는커녕 그저 종교적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만 사용하려 합니다. 그래서 진정 거룩한 영의 능력을 맛보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갈수록 허무와 무의미, 불안과 두려움에 지쳐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엉뚱한 곳에서 열쇠를 찾으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해답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면의 불꽃을 키우려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내어 놓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코로나 19로 함께 모이지 못하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신앙의 결단이 느슨해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도 게을러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우리의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단단히 붙잡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절제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월계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썩어 없어질 가치와 물질을 위해서도 머리를 쓰고 몸을 단련한다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더욱 더 과감한 도전과 훈련이 필요할 것입니다.

교회에 모이지 못해도, 지금 교회에서 제공하고 있는 다양한 신앙 관련 영상들, 매일 오전 읽어야 할 성경말씀들을 되새기며, 한 주전에 주어진 성경본문을 묵상하며, 그 묵상과 목사의 설교를 비교하며, 그래서 얻은 깨달음을 삶에 적용하면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애쓰고, 더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면 여러분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으로부터 타오르는 불꽃에 의해 남들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광채와 품격, 분위기, 참 사람다운 향기가 퍼지게 될 것입니다.

재물이 무진장으로 쌓여 있는 부자 나라로 두 사람이 재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 나라의 재물은 주인이 없어 가져가는 사람이 곧 임자였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먼저 발견한 재물은 삼베였습니다. 두 사람은 똑같이 이 삼베를 한 짐 가득히 지고 집을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보니 비단이 있었습니다. 한사람은 먼저 지고 온 삼베 묶음을 내려놓고 비단을 다시 한 짐 꾸려서 졌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사람은 이제까지 지고 온 고생과 수고가 아깝다며 이 삼베를 그냥 지고 집으로 향하여 갔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은 값진 것이 나올 때마다 바꾸어 짊어졌고 다른 한사람은 그동안 지고 온 수고와 고생한 것이 아깝다며 계속 삼베만 한 짐 지고 가기를 고집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이제 집에 도착합니다. 한사람은 금을 한 짐 지고 옵니다. 그러나 다른 한사람은 여전히 삼베만 한 짐을 지고 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 종류의 배고픔으로 헐떡거리며 살아갑니다. 하나는 빵에 대한 굶주림이고, 다른 하나는 영성에 대한 갈급함입니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 세계인들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이 일을 하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과의 연대, 함께 아파하는 감각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께서 주시는 영성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울 때, 진정으로 굶주린 이들의 배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사랑의 불꽃이 이 어렵고 어두운 세상을 활활 태우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거룩한 하나님! 첫 교인들에게 세찬 바람으로 오셨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강한 능력의 바람을 불어 주소서. 주님께서 우리 가슴 깊이 심어 놓았던 사랑의 불꽃, 지혜의 불씨를 살려내 주소서. 우주의 생명이 면면히 이어져 왔듯, 어떤 어려움에서도 삶의 희망을 내려놓지 않게 하시고, 생명의 역사에 한 걸음 보태게 하여 주소서. 특별히 우리를 불러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으니, 생명사랑 공동체를 통하여 생명의 향기, 사랑의 바람이 불게 하여 주소서. 사실로 거짓을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맞서 삶의 진실을 꼭 붙들게 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일에 당당하게 나서게 하여 주소서. 시련과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며, 교만과 게으름, 모든 악에서 우리를 구하여 주소서. 언제 어디서나 사랑과 지혜로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송축하고, 우리의 입술로 당신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없애시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의 온갖 유혹과 덫에서 자유롭게 하신 것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들고 나옵니다.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가 드리는 예물 또한 받아 주소서. 이 예물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하늘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한 하늘의 영을 보내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새롭게 힘을 얻고 활기를 얻어 새로운 비전과 에너지와 충족함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몸인 우리 생명사랑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거룩한 영으로 충만한 삶을 사십시오. 생명의 면류관을 향해 오늘도 전진하십시오.

* 축도

지금은 산 자에게 사랑을, 죽은 이에게는 평화를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의 거룩한 사귐, 애틋한 위로가 사랑과 지혜의 영, 거룩한 영의 가르침에 따라 많은 열매들을 맺으며 생의 기쁨을 누리는 생명사랑 교우들 위에, 코로나 19로 애쓰고 수고하는 모든 이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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