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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아니라 앎이 속인다, 믿음도 속일 수 있다!

[김기자의 이슈콕콕] 화제의 신간 『믿음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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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동연 출판사)
▲정재현 교수(연세대 종교철학 주임)의 신간 『믿음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우리의 믿음을 반추해보면 우리는 사실 전체를 알고 믿었다기 보다는 모르고 믿었고 또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 모르는 믿음 생활을 해오며 성서, 전통, 교리 등을 부분적으로 더듬으면서 믿는 법을 익혀왔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을 줄줄 외우면서 교리에 대한 이성적인 동의를 통해 믿음 생활을 출발한 경우가 더러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줄여 말하면 우리의 믿음 생활은 이성적인 습득, 즉 '앎'이 아닌 각자의 요구와 관심 그리고 욕망이 꿈틀거리는 '삶'의 한복판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믿는 법을 익히며 경험치와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앎'의 중요성이 강화되고 이내 언제부턴가 믿음 생활의 중심에 '앎'이 똬리를 틀고 그 '앎'으로 '앎'에 앞선 믿음을 재단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문자주의, 교리주의, 교회주의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무슨무슨주의, 즉 ~ism이 위험한 까닭은 그 강한 구심력으로 인해 환원성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원성의 문제는 그 중심성의 핵을 이루는 것이 주변의 것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면서 자신을 전체로 위장하며 전체라는 틀에 비추어 부합하지 않은 '다른' 요소들을 제거하는 등의 폭력성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앎'의 틀로 '앎'에 앞서 먼저 깔려 있었던 실존의 '삶'을 재단하는 것이다. 결국 믿음의 이유와 터전이었던 '삶'은 잊혀지고 '앎'이 주도권을 쥐면서 '앎'이 '삶'을, 아니 '믿음'을 억압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정재현 교수(연세대 종교철학 주임)의 신간 『믿음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동연)는 이러한 문제 의식 속에서 그동안 군림해 왔던 '앎'에 대해 미리 깔려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삶'의 반동의 차원에서 '믿음'을 새롭게 읽어낸다. 우리를 정죄하고 위로하는 기만적인 신 이미지에 익숙해져 노예화된 신앙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해 종교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신앙인들의 자유를 위한 해석학의 질퍽한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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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동연)
▲정재현 교수(연세대 종교철학 주임)의 신간 『앎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전편 『앎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동연)에서는 앎의 속임이라는 문제를 비판하고 삶의 해방을 도모하는 기획을 펼쳤다면 후속편인 이번 작품에서 저자는 '삶'에서 출발한 믿음이 '앎'의 차원에 머무르면서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믿음을 인간의 정신적 영역으로만 다뤄왔던 종교 전통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삶에서 믿음의 뜻을 다시금 길어내는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구체적으로는 종교를 교리나 윤리로 추려왔던 종래의 이념체계가 삶의 현실을 억압해왔다고 고발하고 그 대안으로 불안한 현실에서 자유를 향한 실존으로서 믿음의 뜻을 일구려고 시도한다. 이어 이런 터전 위에서 신의 계시도 교리나 윤리로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행동하게 하는 힘의 원천으로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통찰로 나아간다.

나아가 이같은 앞선 논의들을 아우르면서 종교 바깥과도 소통할 수 있도록 넓이와 깊이를 더하는 성찰을 되새긴다. 저자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해석학은 결국 앎과 믿음에 의해 벌어졌던 무수한 기만과 왜곡, 그리고 이에 의한 억압과 강박으로부터 벗어나서 불안하지만 자유로운 삶의 현실로 나갈 수 있는 길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자주의, 교리주의, 교회주의 등 믿음을 '삶'이 아닌 '앎'의 위치에서 작동시켜 신자들을 종교강박에 시달리게 하는 우상화된 종교의 이념체계에 대해 파괴를 선언하는 과정은 자유로운 신앙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마주해야 할 현실적 당위성을 지닌다.

저자는 이 밖에도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는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기독교의 미래' 등등 굵직 굵직한 현안에 대해서도 철학사와 신학사를 종횡무진하며 또 이를 관통하는 인간의 자기중심성이라는 요소를 집요하게 파헤치면서 신앙성찰적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에 따르면 특히 종교에 있어서 자기중심성이 문제인 것은 실상 자기가 '마음대로' 믿고 있으면서도 '있는 그대로' 잘 믿고 있다는 자아도취에 빠지게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믿음의 대상이 결국 자기의 믿음이기에 자기를 숭배하는 우상숭배로 귀결된다는 지적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믿음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종교강박으로부터 불안하지만 자유로운 믿음의 길로 우리를 견인해 준다. '앎'의 테두리 속에 믿음을 위치시킴으로써 '앎'의 생리인 자기 동일성에 의해 자기 확인을 강요당했던 노예화된 종교에서 벗어나 테두리를 알 수 없는 '삶'의 터전에서 자유를 향하여 다시금 '믿음'의 뜻을 길어내고 있다. '앎'의 종교로부터 '삶'의 믿음으로의 전환이다.

김진한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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