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차별·배제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묻다
NCCK <사건과 신학>, 송도 아파트 단지 어린이 놀이터 사건 분석

입력 Dec 07, 2021 10:36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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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NCCK)
▲1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 <사건과 신학>에서는 송도 아파트 단지 어린이 놀이터 사건을 주제로 다뤘다.

12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 <사건과 신학>에서는 송도 아파트 단지 어린이 놀이터 사건을 주제로 다뤘다. 편집팀은 "천편일률적으로 쌓아 올린 가장 비인간적 건물을 철옹성 삼아 부를 증식하고, 이 공간을 수호하고자 이전투구하며 담합하고, 그리고 놀이터에서 동네 아이가 놀았다는 이유로 '주거침입, 사유재산권 침해'를 죄목으로 쫓아냈다. 아파트 앞에 선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알량한 사유재산을 지키고자 아귀다툼하는 모습을 보며 흡사 넷플릭스의 지옥을 보는 줄 알았다"고 전했다.

12월 NCCK <사건과 신학>에 투고한 이혜영 선교사(미국장로교(PCUSA) 파송 선교동역자, 여신학자협의회)는 '나와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란 제목의 글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섞어가며 아파트가 구심점이 되어 지역사회 내 차별과 배제의 문화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건축된 지 4년정도 되는 신축 아파트인데 앞에 공원이 있다는 이유로 4년 전에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처음 이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는 주위가 개발이 되지 않은 황량한 곳이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주변에 높은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불과 4년만의 일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최근 우리 아파트 바로 옆에 이름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입주민들 사이에서 일어난 황당한 논쟁에 대해서 듣게 되었는데 그 내막은 이러하다"며 "아파트의 초등학생들이 들어갈 학교를 배정하는데 길을 건너면 바로 있는 초등학교에 배정하지 말고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아파트 촌에 사이에 있는 초등학교에 배정해 달라는 입주민들의 민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길 건너에 있는 초등학교는 재개발이 되지 않은 구역에 있어서 주로 빌라 촌에 살고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 다니기 때문에 싫다는 이유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길래 학교 배정을 하는 것에서부터 그러한 차별적인 발언들을 서슴지 않는 것일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있었던 송도 아파트 단지 어린이 놀이터 사건을 언급했다. 이혜영 선교사는 "아파트에 사는 '나'와 아파트가 아닌 곳에 사는 '그들'을 구분 짓고 경계를 하는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 동네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라며 "사회 내에 꼭 필요한 시설들 중 특정 시설 혹은 땅값을 떨어뜨릴 만한 시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 현상(NIMBY- Not In My Back Yard)과도 맞물려 생각해 볼 수 있겠다"고 했다.

특히 "아파트에 펜스가 쳐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특수 학교가 우리 동네에 오는 것을 반대하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없는 이러한 현상이 과연 정상적인 것일까?"리고 반문했다.

또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우리는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갑질과 차별에 분노하지만 '나와 그들'로 경계와 구분을 짓는 것 역시 그와 같은 갑질과 차별의 일종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더 걱정되는 문제는 이러한 어른들의 삐뚤어진 관점과 편견을 아이들이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결과 중심의 성적표의 숫자가 중요하고, 타인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더 좋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 성공의 척도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아이들은 과연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경험할 수 있을까?"라고도 했다.

아파트의 학군 문제도 짚었다. 그는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아파트의 학군 문제는 오랜 논쟁 끝에 길 건너 학교에 배정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러한 결정이 딱히 기쁘지만 않은 것은 부모들로부터 답습된 관점을 가진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또 다른 갈등을 조장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너 어디 사니?"라는 일상적인 질문이 같은 반 친구에 대한 '관심'과 '환대'에서 비롯한 질문이 아닌 '배제'와 '경계'를 전제로 '나와 그들'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을 긋기 위한 질문이 된다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라고 했다.

물질만능주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구분짓는 척도로 아파트가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도 들었다. 이혜영 선교사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용하는 결과 중심의 물질만능주의시대에서 '아파트'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써 '나'와 '그들'을 구분하는 척도가 되어 버린 것 같다"라며 "경쟁을 통해 성취한 아파트라는 결과물이 어떤 이들에게는 성공의 척도로 작용하게 되면서 '배제'와 '경계'가 마치 자연스러운 양 자리 잡았다"라고 했다.

아울러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러한 '배제'와 '경계'를 통해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되니, 타인에 대한 '관심'과 '환대'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라며 "안타깝게도 이런 타인을 배제하는 삶은 단지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구분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성, 외국인 노동자, 이주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으로 소외 당하고 있는 집단들과 그렇지 않는 집단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두고, 그 선 안에 있음으로써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곤 한다"고 덧붙였다.

차별과 배제의 문화 한복판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대해서 자문하기도 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받아주시고 환대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며 "종교개혁에서 주장되었던 칭의론도 아무 공로 없는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베풀어 주시고 거저 주신 환대의 마음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라고 했다.

이어 "러셀의 말을 빌리자면, 기독교 신학의 전통으로서 선택의 개념에 관련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nobody)' 존재로 여겨졌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로써 인간의 완전한 가치와 존엄성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포함되었다 (레티 러셀, 공정한 환대, 여금현 옮김, 한국, 서울:대한기독교서회, 2012, p. 81).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환대를 베풀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회로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라고 했다.

차별과 베제의 문화 속 못 가진 자들 편에 서서 약자들의 친구가 되어준 예수의 행적도 곱씹었다. 그는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다"며 "구원과 멸망은 낯선 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심판 때에 구원 받는 사람들은 헐벗은 낯선 이를 무조건 환대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사회에서 경계 밖에 있는 이들과 함께 하기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즐거워하셨다. 심지어 그것이 사회문화적으로 또 종교적으로 금기시되는 일이었음에도 그 어떠한 비난도 예수님의 환대를 막지 못했다"고 했다.

이혜영 선교사는 또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거저 주시는 환대를 우리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살아가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환대를 실천하는 건강한 선교형 교회를 주장하는 마크 데이마즈(Mark DeYmaz)는 그의 책에서 다양한 낯선 이들이 모인 교회에서 진정한 환대는 소수자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들을 정책결정에 주요한 결정자로 초대, 주체가 되도록 하여야 함을 강조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베푸는 환대(마 25:40)가 그리스도인이 삶을 통해 실천해야 할 영역이다. 또한 환대의 진정한 의미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되는 이들에게 보여지는 환대이어야 하며 그것은 마태복음 25장에 나타난 것처럼 밀려난 주변인 타자들을 중심에 함께 세워나가는 것이다"라고 더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차별과 배제가 일상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우리는 '배제'와 '경계'를 조장하는 프레임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고, 끊임없이 성찰하고 주위를 살피며, '관심'과 '환대'를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라며 "우리가 직면한 사회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함께 고민하고 바꾸어 가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사건과 신학> 편집팀은 "얼마 전 우리 사회 한 구석에서 "어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았다"라는 이유로 감금을 당하고 쫓겨났다. 죄목은 너무나 거창하게도 사유재산 침범이다"라며 "그 자그마한, 아무것도 아닌, 그래서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사건을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번 잘 살펴보시라. 어느 한구석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공동체의 붕괴가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놓은 세상의 모습이다. 세상이 그렇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만들어 놓은 지옥이다.얼마 전 우리 사회 한 구석에서 "어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았다"라는 이유로 감금을 당하고 쫓겨났다. 죄목은 너무나 거창하게도 사유재산 침범이다. 그 자그마한, 아무것도 아닌, 그래서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사건을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번 잘 살펴보시라. 어느 한구석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공동체의 붕괴가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놓은 세상의 모습이다. 세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만들어 놓은 지옥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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