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현민 열사 30주기 추모식이 오는 22일 오후 4시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 김덕윤예배실에서 열린다. 1부 추모예배 설교는 채수일목사(경동교회 담임목사)가 맡았다.
이어 2부 추모행사는 서양호 중구청장(동문), 강민조(고 강경대 열사 부친)의 추모사에 이어 추모영상 및 추모시 낭송과 손현숙(숭실대 동문)의 추모의 노래, 유족인사 등의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다.
고 박한민 열사 30주기 추모식은 고 박현민 열사 추모기념사업회, 숭실대 영어영문과 학생회, 숭실대 기독학생 동문회, 숭실대 민주동문회, 숭실대 6인열사 연석회의, 한국기독학생총연맹, 유족대표 등이 공동주최로 열리게 됐다.
고 박현민은 1967년 부산에서 출생해 1986년 숭실대 영문과 입학하여 1987년 6월항쟁 중 "전두환군사정권퇴진 및 호헌철폐"를 주장하는 시위대 앞줄에 섰다가 시위진압 전경이 던진 돌에 동료 학생의 화염병이 터지며 팔·목·몸통에 3도 화상을 입게 되었고, 이로 인해 협심증이라는 심장질환 지병을 앓게 되었다.
고 박현민은 1989년 12월 군 입대하였으나 심장병으로 1990년 9월 의가사 제대했고, 이후 복학하려 하였으나 제적되었음을 알고, 본인과 같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다수의 동료학생들이 대학측의 일방적인 행정처리와 교육당국의 묵인 하에 제적되었음을 밝혀내어 학사운영의 민주화와 700여명의 미등록 제적생 복적을 위한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고 박현민은 1991년 9월부터 학교로부터 부당하게 제적된 학생들을 조직하여 「숭실대학교 미등록제적생복적대책위」를 구성, 위원장으로서 복적투쟁을 주도함. 특히 1991년도 겨울 학교광장에서 40여일 노숙투쟁과 학내민주화를 위한 각종 집회 및 시위를 주관하다 과로로 쓰러졌고, 1992.4.28. 고열과 심장병 악화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