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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속에 있는 '빛'이 '어둠'이라면?

김경재 박사(한신대 명예교수, 한국신학아카데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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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한국신학아카데미 제공)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예수님의 충고: '빛의 조명도'가 아니라 '빛의 자기 기만성'에 대한 충고

2024년 12월은 한국 현대사에서 잊지 못할 집단적 고통과 정치사회적 진통을 겪었던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12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직 직무수행 정지가 204표 대 85표로 결정되었으며,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행위에 대한 탄핵이 확정되었다.

차가운 12월 겨울의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서 국회 의사당 앞에서는 30만 명이, 광화문 사거리에서는 3만 명의 시민들이 집결하여 탄핵지지 촉구대회와 탄핵반대 데모를 이어갔다. 이달의 칼럼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국민 혹은 시민의 견해가 왜 이토록 극명하게 대립되고 국론이 '내란'을 겪는 듯한 분열, 갈등, 분노, 적개심이 형성되는가를 '신학적 인간학' 측면에서 모두 함께 깊이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충고하셨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누가 11:34-35). 크리스천들이 교회 예배 시간에 많이 듣던 성경말씀이다. 그런데 요즘 필자는 이 말씀의 깊은 뜻을 너무나 피상적으로 가볍게 이해해 왔구나라고 반성하고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핵심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님의 이 충고는 우리들 맘 속에 있는 천부적인 '지성, 이성, 인간의 본연지성의 조명도(照明度)'를 밝게 지속하라는 윤리적 가르침이 아니라, '지성, 이성, 자유의지의 자기 기만성(欺瞞性)'에 대한 심각한 영성적 충고라는 점이다. 기만(欺瞞)이란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그럴듯한 대의명분과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인간죄성의 가장 깊은 영적 질병을 말한다.

기독교 신학 2,000년 사를 뒤돌아보면 '인간이 왜 죄를 범하는가' 문제의 원인에 대한 이해에 단계적 변화가 있어왔다. 첫 단계, 인간의 죄성의 뿌리는 인간의 동물적 육체성(성욕 등 각종 탐욕)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교부 어거스틴을 비롯한 거물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래서 금욕주의와 수도원 운동이 발달했다. 인간의 동물적-육체적 욕망 절제와 억압이 중요했다. 둘째 단계, 죄는 생물학적 본능 때문이 아니라 자유의지의 남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교만'은 그 대표적 죄성이라고 생각했다. 라인홀드 니버 같은 20세기 윤리학자 생각이다. 셋째 단계, 죄성은 육체의 생물학적 욕망 충족 때문도 아니고, 지식이 부족한 무지 때문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기만(欺瞞)하는 영적 확신, 확신편향성 때문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어가는 형국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극단적 진영논리 안에 깃든 영적 질병 원인의 진단서이다.

확신편향성은 보수적 정치인이나 종교인들에게서 더욱 강렬하게 나타난다. 태극기 부대라고 통칭하는 전광훈 씨를 중심으로 모이는 분들의 정치적 편향성은 확신 단계를 넘어 신앙 행위라고 그들은 확신한다. 그들의 주장이 빛이요 진리라고 확신한다.

예수님의 경고 말씀을 헬라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이렇다: "너는 살피라(scopei). 네 속에 있는 그 빛이(tophos en soi) 어둠이 아닌지(me... scotos)." 우리 한글 성경엔 "어둡지 않은가(wether not dark)"로 밝기를 나타내는 형용사(dark)처럼 번역되었지만 원문은 분명히 명사 '어둠'(darkness)이라고 쓰여있다. 사람들이 자기 속에 빛(진리, 정의, 공명정대)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고 그 빛을 주장하고 남에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빛으로 위장하거나 가장된 어둠(비진리, 불의, 당파적-개인적 이기심)이라는 점을 깊이 성찰하라는 예수님의 경고 말씀인 것이다. 속이려고 거짓말한다기보다 그렇게 스스로 맹신하고 굳게 믿는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범죄심리학적으로 말하면 '확신범의 심리'다.

언론인 선한용은 탄핵이 결정되기 전(12.14) 신문 칼럼에서(한겨레, 12.12) 윤 대통령의 언행과 특히 계엄령 선포를 정당시 하는 윤석렬 씨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그는 전형적인 '확증편향성'을 지닌 '확신범'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윤 대통령 마음에 있는 확신편향의 신념은 가식이 아닌 어둠을 빛이라고 믿는 것

2024년 12월, 차가운 겨울 콘크리트 바닥에 연인원 몇백만 명이 찬반 두 진영으로 국민을 갈라치고 상호 분노와 적개심과 증오의 불길로 내닫게 한 근본 원인을 12월 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문'에서 찾을 수 있다. '비상계엄 선포문'은 역사적 문건이기 때문에 영상을 통해 행한 포고령을 그대로 아래에 인용한다.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윤석열 씨가 검찰 총장직을 내던지고 대통령 후보로 나설 때, 국민 유권자가 그를 뽑은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공정과 상식과 만인의 법 앞에 평등'이라는 그 시절 많은 국민이 애타게 바라는 점을 보장하고 실현하겠다고 약속한 점 때문이었다. 아마 자기 자신도 그렇게 맘 다짐했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집권 2년 6개월을 지나는 동안 대통령의 행태는 기대와 정반대였던 것이다.

언론탄압과 장악, 야당 국회나 야당 대표와 협치 거절, 언론 노동 시민운동에 대한 적대감, 정치적 비판 세력을 종북세력이요 반국가단체라고 단정하는 무모함 등등은 '상식과 공정'의 이성적 판단이 아니다. 세상 현실과 역사적 진실을 보는 마음의 눈이 '빛'을 가장한 '어둠'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도 기만(欺瞞)하고 '동일한 정당 지지자들'도 기민하고,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탄핵당한 이후도, 그는 여전히 계엄선포가 '기만'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의 안위를 위한 '고도의 정치적 통치행위'라고 강변한다. 확증편향에 빠진 확신범들이 갖는 전형적 태도를 보인다. 바로 그러한 자기중심적 사고, 다른 사람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해 보려고 노력도 전혀 하지 않는 폐쇄적인 닫혀진 사고방식이 21세기 "인간 죄성의 핵심"이다.

같은 교회에서 예배를 함께 드리던 교우들, 학교 동창 친구들, 직장 동료들, 지식인들 모임인 학술단체 등을 막론하고 자기중심적 확신편향 증세가 오늘 우리 사회 인간관계를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어둠이 빛이라고 확신하는 확신편향성 때문에 비난과 비판을 받으면 도리어 '진리와 정의 수호를 위해 박해받는 순교자 반열'에 든다고 자부하고 스스로 위로하며 '확신 편향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인간성의 역설과 아이러니를 직시하면서 분별력을 주시라고 기도해야 한다

인간실존이 갖고 있는 놀라운 두 가지 대립되는 두 가지 성격 곧, '자기기만성'과 비움과 섬김의 '자기초월성'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자기기만성'을 직시하지 않고 '자기초월성'만 강조하면 낙관적 관념주의에로 전락한다. 그 반대로 '자기초월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기만성'만 강조하면 모든 것에 절망하고 비관주의와 허무주의에로 전락한다. 성경적 인간학은 이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역설과 아이러니를 견디고 위로 솟아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팅거(F. Oetinger)의 기도라고 하기도 하고 니버(R.Niebuhr)의 기도라고 하는 유명한 '고요함의 기도(Serenity Prayer)'를 다시 한번 조용히 음미해 보자: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고요함을 우리에게 주소서.
바꾸어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우리에게 주소서.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지금 한국 국민과 특히 기독교인에게 가장 필요한 기도가 아닐 수 없다. "바꾸어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역사는 신앙고백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이 이끌어 가시지만, 달리 보면 하나님은 사람들 특히 깨어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 지혜, 참여, 결단을 통해서 이뤄가신다. 헌법재판관들이 특히 깊이 음미해야 할 기도이다. 세상을 달관한척하는 양비론자와 양시론자를 경계해야 한다. "예 할 것은 예, 아니오 할 것은 아니요!"라고 분별하고 결단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20세기 과학자, 수학자, 철학자였던 화이트헤드(A.N.Whitehead)는 그의 명저 『과정과 실재』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세계를 구제한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은 진선미(眞善美)에 관한 자신의 비전에 의해, 세계를 이끌어가고(leading) 설득해 가는(persuading), 애정 어린 인내심을 갖고 있는, 세계의 시인(詩人)이다."(과정과 실재, 한국어판, 오영환 옮김, 5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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