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빛과 어둠의 한바탕 싸움이었지만..."

신앙과직제협, 2024 성탄 메시지 발표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가 2024 성탄 메시지를 발표했다. '꺽임 없는 빛'이란 제목의 성탄 메시지에서 이 단체는 "숨 가쁜 시간을 지나왔다"며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12월 3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12월 14일)로 이어진 지난 며칠은 실로 빛과 어두움의 한바탕 싸움이었다"고 밝혔다

또 "국회를 엄호하기 위해 한달음에 모여 무장한 군인들을 맨몸으로 맞닥뜨린 시민들이 있던 반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어두움을 두둔하던 이들도 있었다"며 "힘겹게 일구어 온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를 메운 수많은 불빛과 달리 좌초된 배를 뒤로 한 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그림자들의 웅성거림도 그치질 않았다. 작은 빛들이 모여 만들어 낸 거대한 밝음에 가슴 벅차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고 했다. 아래는 메시지 전문.

꺾임 없는 빛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빛에는 꺾임이 없습니다. 주저함도 에둘러감도 없습니다. 실낱같아도 일직선으로 뻗어 단박에 어두움을 밀어냅니다. 제아무리 두터운 암흑이라도 맥없이 물러날 뿐입니다. 사실 어두움조차 빛의 존재를 말해줍니다. 빛이 있어야 어두움도 있기 때문입니다. 빛은 그래서 언제나 존재합니다. 우리의 희망도 그렇습니다.

숨 가쁜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12월 3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12월 14일)로 이어진 지난 며칠은 실로 빛과 어두움의 한바탕 싸움이었습니다. 국회를 엄호하기 위해 한달음에 모여 무장한 군인들을 맨몸으로 맞닥뜨린 시민들이 있던 반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어두움을 두둔하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힘겹게 일구어 온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를 메운 수많은 불빛과 달리 좌초된 배를 뒤로 한 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그림자들의 웅성거림도 그치질 않았습니다. 작은 빛들이 모여 만들어 낸 거대한 밝음에 가슴 벅차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탄핵이 결정되었지만, 여전히 어둡습니다. 주님이 강생하던 그날의 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저자는 티베리오 로마 황제로부터 유다 총독 빌라도와 갈릴래아 영주 헤로데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만나려 사람이 되어 찾아오신 하느님/하나님의 시공(時空)을 소상히 밝힙니다(루가 3,1-6 참조). 무력으로 이루어진 거짓 평화와 식민지의 설움과 위정자의 가렴주구, 그 한가운데로 하느님/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시간이 하느님/하나님의 시간이 되고 하느님/하나님의 역사가 곧 인간의 역사임을 깨닫습니다. 요람이 아닌 여물통을 택한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시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현실을 떠나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땅에 드리운 어두움도, 상처와 좌절도, 모두가 갈망하는 평화도, 정의의 회복도, 모두 그리스도인의 것입니다.

'악인들의 장막 안에 살기보다 하느님 집 문간에 있기를'(시편 84 참조) 택하는 용기들이 절실한 때입니다. 옛 성가처럼 '이슬비'처럼 '의인'들을 내려달라 기도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안에 의(義)를 바로 세울 때입니다. 반헌법적 계엄과 그로 인한 일련의 사태는 사실 정치적 갈등 이전에 그릇된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는 갈등과 이견을 강압과 폭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고, 위정자들은 섬김이라는 정치의 근본을 잊은 채 사익과 이해관계에만 몰두했습니다. 제국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힘의 논리 위에 세워진 '제국'은 여전히 건재했던 셈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따라서 단순히 대통령의 파면이나 정권의 교체 따위가 아닌, 상처 난 민주주의를 재건하고, 조각난 평화를 복원하며, 약자를 보호할 사회를 건설하는, 저 너머에 있습니다. 눈앞의 어두움만이 아닌 내 안의 그림자를 거둬내 하느님/하나님의 모습으로 지어진 본연의 빛을 되찾는 것에 있습니다.

성탄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 알린 이들이 밤새 양을 지키던 들판의 목동들이었다는 성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본연의 빛을 가난한 빛들이 먼저 알아본 것입니다. 형형색색 작은 빛들로 모여 밤을 밝혔던 우리와 같습니다. 어둠을 밀어낸 성탄의 빛을 우린 이미 우리 안에서 목격한 것입니다. 폭력적 단색이 아닌 다채로움으로, 다름을 고유함으로 헤아리는 아량과 존중으로 거대한 '하나'의 '빛'이 되어 밤을 밝혔습니다. 서로 다르지만, 같은 주님을 고백하는 우리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가 좇는 '일치의 빛'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치가 세상의 일치임을, 이 땅의 평화가 우리의 평화임을 고백합니다. 성탄의 빛이 이미 우리 안에 왔습니다. 동터올 아침을 함께 맞이하길 희망합니다.

땅의 시간과 하늘의 시간이 맞닿는 성탄에

2024년 12월 25일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

한국천주교회 이용훈 의장주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종생 총무
한국정교회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대한예수교장로회 김영걸 총회장
기독교대한감리회 김정석 감독회장
한국기독교장로회 박상규 총회장
한국구세군군국 김병윤 사령관
대한성공회 박동신 의장주교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윤창섭 총회장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우시홍 총회장
기독교한국루터회 김은섭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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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한 편집인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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