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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 기득권 옹호 아닌 약자를 편들기 위한 신학"
2022 혜암신학연구소 가을 신학 세미나 열려...새 시대 민중신학 전망

입력 Nov 15, 2022 05:57 AM KST
kangwondon
(Photo : ⓒ혜암신학연구소 제공)
▲한신대 강원돈 교수

"안병무는 오늘 여기서 벌어지는 민중의 고난과 저항의 사건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언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라고 규정했다. 증언은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목숨을 건 행위이다. 증언과 순교는 같이 간다. 고난을 겪는 이웃의 비명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그리스도는 우리가 고난을 겪는 이웃과 '일치'하게 하고 그 이웃을 향해 자신을 '개방'하도록 촉구한다. 우리의 구원은 그 촉구에 호응할 때 임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증언은 순교를 각오하는 실천을 내포한다. 그리스도가 민중 사건 속에서 현존한다는 것을 포착하면서 안병무가 형성한 신학은 '사건의 신학'과 '증언의 신학'이었고 그것이 민중신학의 원초적 형태였다"

14일 오후 1시 서울 안암동 소재 혜암신학연구소(소장 김균진 연세대 명예교수) 가을 신학세미나가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유산으로서의 민중신학'이란 대주제로 열린 가운데 강원돈 교수(한신대)가 '민중신학의 의의와 새로운 시대적 전망'이란 주제로 발표하면서 던진 발언이다. 강 교수는 이날 안병무, 서남동 등 1세대 민중신학자들의 문헌 연구를 기초로 초기 민중신학의 원초적 형태를 규명하려 애썼다. 이날 토론자로는 박경미 교수(이화여대), 오성종 교수(칼빈대), 김영한 교수(숭실대) 등이 참여했다.

강 교수 등의 주장을 종합하면 소위 정통주의 신학자들의 이해와는 달리 원초적 형태의 민중신학에서 민중은 계급투쟁적 성격이 짙은 특정 정치 이념에 도색이 된 용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 권력과 결탁해 지배 체제를 옹호하는 콘스탄틴 기독교 또는 금관의 예수상에 대항해 힘 없는 민초들의 편에 서서 약자들을 편들기 위한 신학으로 출발했다. 다시말해 지배자들에 의해서 억압받는 민중현실을 증언하는 신학이었고 민중사건을 이야기하는 신학이었다.

이러한 민중신학의 저항담론은 급기야 탈신학, 반신학 구상으로 발전되는데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은 서남동이었다. 강 교수는 "서남동은 예수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탈신학이 겨냥하는 실천적 의도를 밝혔다. 예수의 이야기는 신학화 과정을 통해 심하게 훼손되었고 본래의 사건은 실종되었다. 예수의 죽임당함은 예수의 죽음으로, 예수의 십자가처형은 예수의 십자가로 중립화되었다. 예수 이야기의 탈신학화는 바로 이 훼손과 왜곡의 과정을 거꾸로 되돌려 "예수의 십자가형과 예수의 죽임을 되찾아 거기에 뿌리를 박고 그 기반 위에서 신앙적인 증거"를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탈신학의 과정은 곧 반신학의 길이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강 교수는 "탈신학화의 절차는 원래의 사건과 그 전달을 왜곡했던 지배적인 신학의 코드를 철거하는 작업이요, 궁극적으로 지배체제와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작업이다. 그것은 전통적인 신학이 걸어왔던 이데올로기화에 반(反)하는 신학의 길, 곧 반신학(反神學)의 길이다"라며 "반신학은 신학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기획이다. 만일 서남동이 그 작업을 철저하게 수행하는 신학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면 그 신학공동체는 성서주석을 새롭게 쓰고, 교의학과 교리사를 재구성하고 예배학과 설교학을 새롭게 정립하였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지배 이데올로기의 저항 담론으로 형성된 민중신학은 그러나 세대가 거듭하면서 아이러니칼 하게도 교조적이되고 이데올로기화 되는 길을 걷게 됐다. 이를 두고 민중신학 다음세대들이 변화하는 민중 현실과 역사에 대해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상황에 따라 가변적일 수밖에 없는 민중의 성격 규정에만 과몰입해 나타난 부작용이라고 강 교수는 진단했다.

강 교수는 "상황과 정세의 변화 속에서 민중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민중신학의 좌표를 설정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역사 앞에서 민중과 더불어 신학을 한다고 나섰던 민중신학자들은 '역사'와 '민중'의 이중적 아포리아(난제)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러한 아포리아를 의식한 민중신학자들은 오늘의 '민중'이 누구인가를 거듭해서 묻고 민중 주체성과 민중의 메시아적 성격 같은 주제에 몰입했다. 그러한 과몰입은 변화된 민중현실을 제대로 읽어내지 않은 채 민중을 말하고 민중의 주체성이나 민중의 메시아적 성격을 교조적으로 주장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까지 했다. 그것은 분명 민중신학에서 나타난 이상 신호였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민중신학이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오늘의 신학 담론이 되려면 "민중신학의 특이점을 살려나가고 민중신학의 좌표를 제대로 설정하여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1990년 초 이후의 세계에서 '민중'과 '역사'의 이중적 아포리아를 해결해야 한다. 주체로서의 민중에 과잉으로 몰임해서는 이 엄청난 도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며 "변화된 민중현실을 도외시한 채 민중을 말하고 민중의 주체성이나 민중의 메시아적 성격 같이 특정한 맥락에서 가다듬어진 민중신학의 모티프블을 맥락과 무관하게 교리화하여 되니이는 데서 드러나는 민중신학의 불모성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민중신학의 미래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강 교수는 오늘의 민중신학자들을 향해 "오늘의 '민중'이 누구인가를 직접 묻지 않고 오늘의 민중현실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며 오늘의 '민중'이 누구인지를 묻는 사람은 "'민중'이라는 이름을 그때는 그 사람들에게 붙이고 이때는 이 사람들에게 붙이는 식"의 명명 위주의 민중신학에 불과하기에 "모델 플라토니즘의 잔해에 결착되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면에 민중현실을 탐구하는 사람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민중'으로 호명하고 나서 그 '민중'의 현실을 살피기보다는 역사적 발전 과정 가운데 있는 현실관계들의 총화로서 존재하는 민중의 현존 방식과 양태를 그때그때 분석하고 그렇게 현존하는 민중을 말한다"며 현실관계의 복함체로서 민중이라면 "그 현실관계를 변화시키는 기술적, 제도적,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장치들과 그 장치들에서 작용하는 권력의 배치 등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현실관계를 도외시하고 '민중'을 말하면 그것은 '민중'에 관한 사변이거나 역사적으로 현실관계들의 총화로서 현존하는 민중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민중 '페티시즘'이 되고 말 것이다"라고 강 교수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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