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美 구성신학자 캐서린 캘러 교수 방한 강연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은 버림받은 경험으로부터"

입력 Nov 21, 2022 11:28 AM KST
yonsei
(Photo :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미국 드류대학교의 구성신학 교수인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가 최근 ‘인간기술공생네트워크’(HTSN)의 초청과 ‘한-미 인문분야 특별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방한해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연세대학교 기독교문화연구소 그리고 인간기술공생네트워크와 더불어 학술 컨퍼런스와 세미나 일정을 가졌다.

미국 드류대학교의 구성신학 교수인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가 최근 '인간기술공생네트워크'(HTSN)의 초청과 '한-미 인문분야 특별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방한해 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연세대학교 기독교문화연구소 그리고 인간기술공생네트워크와 더불어 학술 컨퍼런스와 세미나 일정을 가졌다.

특히 연세대학교 기독교문화연구소의 초청과 김정형 교수의 주관 하에 열린 "생태사물신학 국제컨퍼런스"에서 박일준 교수는 "물(物)과 함께 살아가기: 연장력(extendibility)으로서 인간 - 여인(與人)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발표했으며 이어 캐서린 켈러 교수는 "권력, 묵시적 종말론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후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박일준 교수는 '지렁이가 인간문명을 발족시켰다'는 찰스 다윈의 말을 인용하면서, 생명의 존재들은 언제나 비생명의 존재들, 즉 비유기체적 존재들과 얽혀 살아가고 있음을 주지시켰다. 일반적으로 균류는 인간이 회피하거나 퇴치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실상 우리 몸은 음식물을 소화하기 위해 박테리아, 미생물들과 공생하고 있으며, 성만찬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도 곰팡이 균류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 음식인 김치 혹은 치즈 등을 만들 때도 곰팡이 균류와의 '함께-만들기'(sympoiesis)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특히 나무의 경우에는 뿌리와 이 균근류 사이의 '함께-만들기'가 없다면 존재를 장담할 수도 없다. 나무는 광합성을 통해 생산한 탄소 생산물을 균근류에 나누어주고, 대신 균근류로부터는 광물에서 채취한 미네랄과 같은 필수영양분들을 공유받기 때문이다. 또한 숲속 나무들이 서로를 향해 소통할 때, 뿌리와 뿌리를 이어주는 이 균근류 네트워크는 나무들의 삶에 필수적이다. 이는 존재란 홀로 자립하거나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함께 존재와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 존재 역량이 인간에게는 다른 존재로 연장해 새로운 존재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는 '연장력'(extendibility)으로 나타나며, 이를 통해 '포스트휴먼' 혹은 '자연적으로-태어난 사이보그'를 가능케 한다. 고려문인 이규보는 이것을 '여물'(與物, staying with things)이라고 표현하였으며, 박일준은 이것을 기후변화와 생태위기 시대를 위한 종교철학적 담론으로 연장하여 '여인'(與人)으로 표현하고 있다. 계속해서 박일준은, 인간이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를 통해 창발하는 것이며, 그래서 '인간'이란 생물유기체의 속성이 아니라, 관계의 역량이며 이를 통해 주변의 다른 존재들과 어떤 관계성을 엮어 나가는지에 따라 그 존재 네트워크는 인간(人間), 즉 '사람-사이'를 실현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캐서린 켈러는 "권력, 묵시종말론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이란 제목의 발표에서 기후변화와 범지구적 재난의 발생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면서 점차 '아포칼립스'의 종말론적 상상력에 지배당하는 우리 시대의 모습을 '하나님으로부터-버림받음'(Godforsakenness)의 상황에 놓인 십자가 상의 예수의 모습을 통해 신학적으로 성찰했다. 그에 따르면 고난과 고통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 '버림받음'(godforsakenness)의 경험, 즉 심지어 하나님조차 '나'를 외면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과 두려움과 불안을 뼈저리게 겪게 된다. 오늘날 SF 영화들이 더 이상 미래의 찬란한 진보문명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망해 폐허가 된 지구의 모습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아마도 문명적으로 이 '버림받음'의 경험을 문화적 증상으로 체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캘러 교수는 "기후위기, 생태위기, 팬데믹의 위기들을 겪어가면서 문명과 세계와 우리들 각자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이 '버림받음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며 "하지만 그 버림받음의 경험이 존재와 삶의 포기와 체념으로 나아가는 대신 새롭게 작용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우선 그 최악의 순간에 겪어야 했던 그 버림받음과 비통함을 (외면하거나, 환상으로 대치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마주함을 통해 가능하다. 그 '버림받음의 경험'이 우리의 온몸을 통해 오장육부로 전해져 느껴질 때,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는 다른 존재들의 그 처절한 고통과 고난을 반향할 수 있으며, 이 고통의 함께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그 '버림받음의 순간'에 겪으셨을 그 고난과 고통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제국 권력과 결탁한 자본과 종교의 형상을 용, 짐승, 큰 음녀의 모습으로 그려내면서, 아포칼립스가 지구 혹은 세계의 끝이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하늘과 새땅을 열어나가는 새로운 시작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켈러 교수는 이 새하늘과 새땅의 새로운 시작이 com/passion, 즉 '고통에-함께-하는-열정'(com-passion)으로 열리며, 이는 곧 십자가에서 '신으로부터-버림받음의 상태'로 진입하는 하나님의 경험 속에서 열리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하나님의 참모습라는 것이다. 아울러 켈러 교수는 이 사랑의 능력과 잠재력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아미포텐스'(amipotence)를 제안한다. 여기서 사랑은 최종의 해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랑이 절망을 치유할 수 있으며,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힘을 지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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