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세계는 투쟁의 장이고 역사는 원운동일 뿐인가?"
[신년 인터뷰②-上] 혜암신학연구소 김균진 소장

입력 Jan 09, 2023 12:51 PM KST

계묘년 새해를 맞아 한국교회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신학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혜암신학연구소 김균진 소장(연세대 명예교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내적으로는 정체성의 위기, 외적으로는 기준점을 붕괴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으로 아포리아 상태에 빠진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묻기 위해서였다. 김 소장이 독일 방문 중이므로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다. 인터뷰 1부에서는 교회 내적인 정체성의 위기를 타파할 방법에 관해 논했다면 마지막 2부에서는 교회 외적인 도전, 즉 포스트모더니즘 사조가 몰고 오는 문화적 상대주의, 허무주의 앞에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세계관, 역사관, 인간관, 가치관을 구축해 나가야 할 지를 논했다. 지면 관계상 2부를 상,하로 나눠 전재한다. 상에서는 세계관과 역사관을 다룬다. - 편집자주

-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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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김균진 연세대 명예교수(혜암신학연구소 소장)

세계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매우 포괄적 질문입니다. 그 까닭은, 세계에 대해 우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정치적, 경제적 관점에서 얘기할 수도 있고, 사회학적 관점, 생물학적, 진화론적 관점, 물리-화학적 관점, 생태학적 관점, 심리학적 관점 등, 다양한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또 각 사람의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얘기될 수도 있는데요. 뉴턴의 고전 물리학적, 기계론적 세계관과 오늘의 양자론의 세계관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세계가 무엇인가를 한 마디로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내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는 죽지 않고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투쟁의 장()으로 생각됩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생물들의 가장 기초적 본능은, 죽지 않고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본능인데요. 죽지 않고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세계는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힘을 얻으려는 경쟁과 투쟁의 장이라 하겠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 같은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진화론에 따르면 세계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경쟁과 투쟁의 장입니다.

여기서 땅 위의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 존재로 파악됩니다. 인간은 물론 땅 속에 있는 미물들도 먼저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고, 이에 필요한 힘을 얻으려는 이기성을 그들의 본성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기적 본성이 이 세계 모든 생명체의 기본 본성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데요. 먼저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고 자기의 세(힘)를 확장하려는 이기적 본성으로 말미암아 시기와 질투, 거짓과 기만, 경쟁과 투쟁이 일어나고, 싸움과 전쟁이 일어납니다. 갖가지 죄악들이 이기적 본성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되는데요. 근대에 일어난 제국주의,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 두 차례의 세계대전, 대전 이후 동서 양 진영의 냉전, 지금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 모든 것이 자기를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연 생물들의 세계에서도 먹고 먹히는 치열한 투쟁이 일어납니다. 이 같은 세계를 가리켜 성서는 "어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한복음 1장 참조).

그러나 이것이 세계의 전부가 아닙니다. 땅 위의 모든 생물들에게는 이기적 본성이 있는 동시에 이웃과 상부상조하며 공존하고자 본성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태어난 지 수개월밖에 안 되는 아기에게서 이것을 볼 수 있는데요. 아기가 자기 또래의 아기를 보면 방긋방긋 웃으며 가까이 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좀 크면 친구를 찾아 친구와 함께 놀려고도 하는데요. 성인들도 친구를 갖고자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의 짐승들도 무리를 지어 함께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한 마디로 사랑이 모든 생물들의 삶을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본성은 어디서 오는가? 이 본성은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세계와 그 속의 모든 생명들을 지으셨고 그의 "법"을 새겨두었기 때문에, 세계 만물은 상부상조하며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랑의 본성을 가집니다.

종합해 보면 세계는 이 두 가지 본성, 곧 먼저(!)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기적 본성과 상부상조하며 함께 살고자 하는 사랑의 본성이 싸우는 장(場)으로 보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려고 싸우고 투쟁하면서도 함께 공존하고자 하고, 함께 공존하면서 먼저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것이 모든 생명들의 생명의 세계입니다.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공존하고자 하면서도 먼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이기적 본성과 사랑과 공존의 본성의 갈등에서 야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공존의 본성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세계를 파괴하는 세력도 강하지만, 이 세계를 구하려는 세력도 약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세력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공존과 싸움, 싸움과 공존, 파괴와 건설, 건설과 파괴, 전쟁과 평화, 평화와 전쟁의 악순환(Kreislauf)을 반복합니다. 이것이 세계의 현실인데요.

성서에 따르면, 세계와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시 24:1). 세계는 하나님을 말미암아 있게 된 것, 곧 하나님의 창조이기 때문인데요. 타락한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이로 말미암은 인간의 욕망과 죄악의 세력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이들보다 더 강합니다. 그는 무, 곧 없는 것으로부터 만유를 있게 하였고(creatio ex nihilo),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예수의 부활) 그러므로 세계는 건설과 파괴, 전쟁과 평화의 영원한 반복이 아닙니다. 묵시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계의 마지막(종말, eschaton)은 죄악의 세력으로 말미암은 대 파멸도 아닌데요. 그것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 통치의 완성일 것입니다, 달리 말해 만물이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 안에서 공존하는 세계라는 말인데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계를 희망하고 기다립니다. 그들은 악의 세력의 승리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승리를 믿습니다.

- 그리스도인의 역사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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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혜암신학연구소 제공)
▲혜암신학연구소 김균진 소장

역사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세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과 함께 이미 주어진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란 세계가 진행하는 과정을 뜻하기 때문인데요. 마르크스는 세계의 역사, 곧 세계사를 가리켜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물론 마르크스의 이 생각은 타당성을 갖지만, 그것은 하나님 없는 인간 세계의 한 측면에 불과합니다. 좀 더 깊이, 좀 더 넓게 생각할 때, 세계는 이기적 본성과 사랑과 공존의 본성의 양면성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공존과 싸움, 건설과 파괴, 평화와 전쟁이 반복되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20세기의 역사에서도 우리는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1945년에 끝난 세계 제2차 대전에서 세계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참화를 당했는데요. 그 후에 약 77년 동안 평화가 있었습니다. 77년의 평화가 지난 오늘, 세계는 제3차 대전의 위험을 직면하고 있는데요. 핵폭탄의 무서운 결과 때문에 3차 세계 대전이 쉽게 일어나기는 어렵지만, 동서 양 진영을 대신하는 대리전이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많은 학자들이 역사를 가리켜 "원운동"(Kreislauf), 혹은 "윤회"라고 말했던 거 같습니다. 공존과 싸움, 건설과 파괴, 평화와 전쟁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원운동 혹은 윤회의 과정이 역사란 입장인데요. 이같은 역사관을 보여주는 대표적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신화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가져다 줍니다. 이에 대한 벌로, 그는 코카서스 바위산 꼭대기에 강력한 쇠사슬로 묶여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는데요. 그는 불사신이기 때문에, 간이 재생합니다. 재생하면 독수리가 또다시 날아와 간을 쪼아먹습니다. 간이 되살아나고, 독수리에게 쪼아먹히는 영원한 반복, 영원한 원운동, 이것이 인간 세계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알베르 카위의 시지프스의 신화도 이 같은 역사관을 보여주는데요. 세계사는 무거운 바위를 높이 쌓아 올리고(건설), 그것이 무너져 내리는(파괴) 영원한 반복이라는 것입니다. 20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Toynbee)도 세계사는 "도전과 응전", "생성과 발전과 쇠퇴"의 영원한 반복이라고 정의합니다.

동일한 법칙이 지배하는 원운동에는 "목적"이 없습니다. 시작(알파)도 없고 끝(목적, 종말, 오메가)도 없습니다. 생성과 소멸, 공존과 싸움, 건설과 파괴, 평화와 전쟁의 끝없는 반복이 있을 뿐입니다. 목적이 없으면 의미도 있을 수 없는데요. 우리의 삶에 아무 목적이 없을 때, 우리의 삶은 무의미에 빠지게 됩니다. 노력하고 투쟁하고 이루어야 할 대상이 없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더이상 이룰 것이 없거나 이룰 수 없는 연령이 되면, "인생이 허무하다",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생물적 생명을 이어갈 뿐인데요. 이를 잊으려고 사치와 허영과 섹스에 빠지고, 알코올 중독과 마약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더러는 우울증과 자살에 빠지기도 하는데요. 한 마디로 목적이 없는 세계와 역사의 마지막은 허무주의로 귀결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니체가 말한 허무주의(nihilism)는 단지 "인생이 헛되다"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의미와 가치, 곧 목적이 "없다"(nihil)는 것을 말하는데요.

허무주의를 우리는 현대인의 의식과 삶의 태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세계와 역사가 지향해야 할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학자들도 이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데요. 누가 이것을 질문한다면, "무슨 쓸데 없는 것을 질문하느냐?"고 오히려 핀잔을 받을 것입니다. 지향해야 할 목적 없이, 의미 없이, 전쟁과 평화, 평화와 전쟁, 파괴와 건설, 건설과 파괴의 끊임없는 윤회 내지 반복 속에서 "세상은 늘 그런 것이 아닌가!"라는 허무주의적 자포자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오늘 우리의 세계일텐데요. 때문에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세계를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없습니다. 의미 없이, 목적 없이, 주어진 하루의 생활에 바쁜데요.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헛되다"고 한탄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세계는 인간의 이기성과 탐욕으로 말미암은 역사상 초유의 대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구 온실화", "이상 기후", "기후 재앙", 해수면의 상승과 해안지대의 침수는 이 위기를 요약하는데요. 이외에도 51,000기가 넘는 핵폭탄 역시 세계사 초유의 위기 상황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한 기의 핵폭탄은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보다 1,000배 이상의 위력을 가진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역사의 마지막 목적은 온 세계의 파멸과 폐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역사의 마지막 승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죄와 죽음의 세력일 것이고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도 헛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에 따르면 예수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죄와 죽음의 세력을 꺾으셨는데요. 이것은 죄와 죽음의 세력보다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기심과 미움과 증오보다 사랑이 더 강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 죽을 자식도 살리지 않습니까! 이 평범한 삶의 진리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이 세상을 이기는 것은 이기심과 죄와 죽음의 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결국 악의 세력을 이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 "이제는 죽음과 슬픔과 울부짖음과 고통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역사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역사는 생성과 소멸, 건설과 파괴, 전쟁과 평화의 영원한 원운동 혹은 회전운동이 아닙니다. 또는 묵시론자들이 예언하는 이른바 세계의 대 파멸을 향한 과정이 아닙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새로운 피조물의 세계를 향한 변증법적 과정인 것입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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