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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장식인가? 욕망에 지배 받는 한국교회"

[신년 인터뷰①] 혜암신학연구소 김균진 소장

새해를 맞아 한국교회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신학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혜암신학연구소 김균진 소장(연세대 명예교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내적으로는 정체성의 위기, 외적으로는 기준점을 붕괴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으로 아포리아 상태에 빠진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묻기 위해서였다. 김 소장이 독일 방문 중이므로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다. 인터뷰 내용은 2부로 나뉘어 전재한다.- 편집자주

- 지난 한해를 돌아볼 때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사적으로 남을 만한 사건 중 하나는 한 대형교회가 크기와 규모를 추구하는 세상의 욕망의 논리에 저항해 자발적으로 교회를 29개 교회로 나눈 일입니다. 종래의 대형교회 상당수가 교회를 마치 주식회사처럼 여기고 자녀 세습 등으로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움직임과는 상반된 모습인데요. 분당우리교회의 일만성도파송 결단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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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혜암신학연구소 제공)
▲김균진 혜암신학연구소 소장(연세대 명예교수)

"분당우리교회의 교회 쪼개기 운동은 목회자 이찬수 목사님이 인간적, 세속적 욕심을 버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를 자기 가문의 소유물처럼 자기 아들에게 넘겨줌으로써 개신교회의 신뢰성을 실추시킨 일부 대형교회 목사님들에 반해, 개신교회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일이요,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운동이라 하겠습니다. 교회가 대형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 않는가라고 어떤 분은 말합니다. 전도하지 않아도 교인들이 소문에 소문을 타고 교회 예배에 참석하여 은혜받고 대형교회가 되어버리는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목회자의 유혹이 있습니다. 교회가 커질수록 더 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돈이 더 들어오고, 자기의 목회성공을 증명할 수 있고, 교단에서 권세를 행사할 수 있고, 어디를 가든지 존경을 받을 수 있고, 사회적 명망을 받는 VVIP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문에 명예가 되기 때문에, 목회자는 교회의 대형화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교회 건물은 목회자 자신의 영광과 명예가 되어버립니다. 목회자가 가만히 있어도 교회는 저절로 돌아갑니다. 총선, 대선 때가 되면, 입후보자들이 예배에 참석하여 교회와 목회자의 명예가 더 올라갑니다. 인천 지역에서 교인 약 1,000명을 가진 어느 친구 목사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교인 수 300명이 넘으니까, 누가 누구인지, 교인들이 어떤 형편에서 사는지 잘 알 수 없게 되고, 500명이 넘으니까 교회는 모든 것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업처럼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형제자매들의 공동체"가 되어야지, 세상 영광을 자랑하는 기업처럼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어떤 분은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규모를 가져야 규모 있는 사업을 할 수 있지 않느냐, 교인 200명 이하의 교회는 목회자 월급 주고 자기 유지하기에 바빠서 봉사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해, 규모 있는 사업을 하기 위해, 교회도 큰 규모를 가진 교회, 대형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교회의 규모 있는 사업은 또다시 교회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 데 이용됩니다. 목회자는 "내 교회가 이만큼 규모 있는 일을 한다"고 자기의 능력과 목회 성공을 자랑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나"를 위한 인간의 욕망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정말 교회가 하나님을 위해 규모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자기 교회의 이름을 내걸고 할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단의 이름으로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와 목회자가 마치 자기자랑하듯이 이른바 규모 있는 일을 하기 때문에, 교회에 아무 덕이 되지 않고 사회인들의 손가락질만 받는 것입니다. 이찬수 목사닝은 이같은 현실을 잘 아시기 때문에, 교회 건물도 짓지 않으시고, 교인 쪼개기 운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회의 빛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안타까운 사건 사고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10.29이태원 참사가 대표적일텐데요. 참사를 대하는, 다시 말해 고통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자세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아직도 죄와벌의 논리에 따른 정죄감 표출이나 고통의 실제성을 외면해 버리고 상처를 덧내는 위로의 방식이 횡행하고 있는데 고통을 대하는 성숙한 메커니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태원 참사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젊은 생명들의 죽음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슬픔을 함께 나누고,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에 속한 일입니다. 죄에 대한 벌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가족에게 제2차 고통을 가하는 몰상식한 짓입니다.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지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해 일일이 벌을 내린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태원 참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 아니라, 인간의 실수로 인한 결과일 뿐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실수"란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참사가 일어난 골목길 일부에 불법 증축을 한 호텔 주인의 범죄 행위, 불법 증축된 건축물을 내버려두고 과태료만 물게한 용산구청 공무원들의 방만함과 업자와의 결탁, 사고 유발에 대한 경찰의 부실한 대비라고 하겠습니다. 이같은 "실수들"로 말미암아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최측이 부재하기 때문에, 사전 대비를 할 수 없었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 이전에도 대형 인파가 이태원에 집결하는 일이 여러번 있었고, 이에 대해 경찰이 충분한 대비책을 세우기도 했으니까요.

이 문제를 정치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태원 지역 소속의 경찰과 구청 공무원들의 책임을 묻는 것은 필요지만, 전 국토와 국민의 안전 문제를 책임진 행안부 장관의 탄핵, 대통령 퇴임, 심지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상식을 어긋나는 일이리 생각합니다. 모든 일에 도를 지켜야지, 도를 넘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야당 지지 세력이 대통령 퇴임을 요구하지만, 대통령 지지도가 오히려 상승하는 것은 이것을 증명합니다. 국가의 해당 기관이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해당 지역 담당 공무원을 문책하고, 향후의 안전 대비책을 철저히 세우도록 요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국민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이태원 참사 문제에 개입하려는 것 역시 상식을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로 또다시 국민 세금을 빨아먹는 "전문 데모꾼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상식을 지키는 국민, 상식을 지키는 정치인들이 되길 바랍니다. 민족의 미래를 위해 자기의 사욕을 버리고, 바른 길을 걸어가길 바랄 뿐입니다.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을 당 대표가 지배하는 비민주적 관행도 개혁되어야 할 것입니다."

- 자유주의 진영의 교회는 인권운동가들의 언어로 지배되어 교회 정체성의 위기가 도래했고 보수주의 진영의 교회는 시장경제 논리에 근거해 교회를 소비자의 욕구를 채우는 쇼핑상가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교회의 본질은 인권운동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인간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로,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데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바울서신은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교회를 인권운동, 정치운동의 장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어떤 특정한 정당의 이중대 역할을 하는 것은 가능한 피해야 합니다. 목회자나 신학자가 인권운동, 정치운동 하다가 정권이 바꾸어질 때, 정부의 높은 자리를 얻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목회자로, 신학자는 신학자로 자기의 사명이 있고, 자기의 자리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인권과 정치에 무관심해야 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이웃과 민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권 문제에 개입할 수 있고, 정치적 이슈에 대해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개입은 신앙의 기초 위에서 증언으로 끝나야지 직업적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의 제1기 민중신학자들도 증언을 하였을 따름입니다. 상황의 필요에 따라 저항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여 목회자나 신학자가 직업적 인권 운동가나 정치가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나 신학자는 목회자, 신학자로서의 사명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민족의 살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과학자가 과학 연구에 열중하지 않고, 인권운동, 정치운동에 투신한다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의 시장화", 이것은 한국 개신교회의 전체적 분위기 내지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인들의 종교적 욕구를 채워주는 대신, 헌금을 받아 목회자 월급 주고, 교회 자신을 유지하며, 가능한 더 큰 교회를 만들어 교세를 신장하려는 이것이 한국 개신교회 전체의 경향으로 보입니다. 물론 예외적인 교회도 있습니다. 존경스러운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가 마치 돈을 벌기 위한 사업장처럼 되어버린듯한 느낌입니다. 그 원인은 목회자의 인간적, 세속적 욕구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가능한 더 많은 교인을 얻어 더 많은 돈을 획득하고, 목회자의 월수입을 올리고, 자기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교단 내에서 세력을 얻어 교단 총회의 각종 위원장, 노회장, 총회장도 되어보고, 사회적 명성과 영광도 누리고 싶어하는 인간적 욕망 때문에 교회가 일종의 사업장처럼 되는 것이지요.

과연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예수의 정신은 사라지고,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 같습니다. 돈을 섬겨서는 안 된다고 설교하면서, 교인들에게 수많은 종류의 헌금을 요청합니다. 은행 빚을 짊어지고 십일조 내기도 어려운 교인들이 많은데, 장학헌금, 선교헌금, 건축헌금, 각종 감사헌금, 절기헌금 등, 가까운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교회 나가십시오"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한 마디로 인간적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예수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참 본질과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 본질과 목적에 부합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목회자들도 책을 좀 읽으시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교회 장로들도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장로직을 세속적 명예직, 권위직으로 생각하지 말고, 장로 되었다고 출세하였다고 생각치 마시고, 자기를 교인들을 섬겨야 할 봉사자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자기가 중심에 서려는 인간적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장로는 수십년 동안 재정장로 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실권을 이 장로가 쥐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언젠가 떠날 분이기 때문에, 교인들은 재정장로의 눈치를 봅니다. 장로들은 이같은 류의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장로직을 민주화해야 합니다. 장로직을 임기제로 하고, 젊은 청년이들과 여성들도 장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가 젊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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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혜암신학연구소)
▲스승인 몰트만 박사(좌)와 동석한 김균진 소장(우). 몰트만 박사는 혜암신학연구소 명예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우리 사회, 우리 교회의 현실은 층층켜켜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역갈등, 이념갈등, 세대갈등, 계층갈등, 노사갈등, 젠더갈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갈등이 있는데 갈등을 넘어 화합으로 나아가려면 어떤 최소한의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우리 사회의 지역갈등, 계층갈등, 세대갈등, 이념갈등, 노사갈등, 젠더갈등 등, 모든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정치가도 아니고 사회학자도 아닌 한 신학자가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드릴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 어느 누가 이 모든 갈등들에 대한 시원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신학자로서 나의 생각을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사회적 갈등은 인간이 자기를 낮추지 못하며, 비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자기를 낮추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 관용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고, 상대방과 대립하고 충돌하게 되는 것이지요.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고 세력을 쥐려고 할 때, 대화와 양보와 관용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기초적 공동체는 가정 공동체입니다. 가정 공동체 안에서도 각종 갈등이 일어납니다. 고부 간의 갈등, 부부 간의 갈등, 부모와 자녀들의 세대적 갈등이 일어납니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길은 무엇인가? 자기를 낮추고 비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들이 서로 자기를 낮추고 비울 때, 대화와 양보를 통해 일치점에 이를 수 있고, 서로를 관용하면서 가정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가정은 쪼개져버립니다. 가정 공동체의 이 법칙은 우리 사회의 모든 공동체에도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꿈 같은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서로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낮추지 않고, 상대방에게 "너만 낯추어라", "너만 양보하라"고 요구한다면, 공동체는 분열되는 길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데 구원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얼마 전 한국리서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여전히 낮게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개신교 신자 스스로 평가한 호감도 조차 낮았는데요.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시고 개선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국 개신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한국 개신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인가"를 대답할 때, 저절로 주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교회다운 교회,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속적 사업체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정신은 보이지 않고, 돈 욕심, 명예 욕심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개신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는 한 마디로 성직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인간적, 세속적 욕심과 욕망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속적 욕심과 욕망을 모두 포기했는데, 그 예수의 모습을 닮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교회 예배실 정면에 달아 놓았지만, 사실상 예수의 십자가는 교회 안에서 사라지고, 인간적, 세속적 욕심과 욕망이 교회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세속적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교인들이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세속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 세속 사람들보다 더 비상식적인 일들을 행하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먼저 교회 주변의 지역 주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교회가 되도록 하십시오!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신뢰를 받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먼저 지역 주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지역 주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이미 실패한 교회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교회가 지역 주민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제 인터뷰를 읽는 분들 모두가 잘 알고 있닥 생각되어, 대답을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또 한국 개신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교인들이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있습니다. 자기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데 있습니다. 그럼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도 독자님들의 판단에 맡기고 싶습니다."(계속)

김진한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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