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이화대학교회 장윤재 담임목사 설교] "여호와는 나의 목자"

2025년 5월 11일 무용예배

jangyoonjae
(Photo : ⓒ베리타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시편 23편

설교문

시편 23편은 우리가 성서에서 가장 사랑하는 시편입니다. 성서의 어느 구절이 이 시편만큼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시를 사랑합니다. 어린아이들도 이 시를 암송합니다. 임종하는 순간에도 병상의 환자는 이 시를 입술에서 떼지 아니합니다.

시인은 아무런 단서(但書)도 붙이지 않고 다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말합니다. 담백하고 직설적인 그의 말 안에 확고한 신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구약성서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를 표현하는 여러 은유(隱喩, metaphor)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의미심장한 것이 '목자와 양의 은유'입니다. 구약의 족장들은 양 떼와 가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드로의 양을 치던 목자였던 모세를 불러 그의 백성을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건져 내는 목자로 만드셨습니다. 본래 목동이었던 다윗도 이스라엘의 목자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왕은 목자로 생각되었습니다. 특히 앞으로 오실 메시아, 곧 다윗을 표본으로 하여 미래에 나타나리라 기대되던 메시아는 특별한 목자로 알려졌었습니다.

구약성서에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스스로 목자라 말씀하시는 구절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23편에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목자라는 말에 '나의'(my)라는 단어 하나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라고 노래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나의'(my)라는 말은 단독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목자'란 말의 꼬리에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중요한 접미어입니까!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목자인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바로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말은 얼마나 특별한 말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는 진술(陳述)에서 시인은 곧바로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다"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게 다입니다. 너무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내게는 아무 부족함이 없다는 결론이 바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이신 것으로 이미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이 직설화법 안에 시인의 믿음이 오롯이 드러나 있습니다.

넉넉하시고 관대하신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은 양들을 위해 세 가지 일을 하십니다. 첫째로, 그는 우리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합니다. 중동 지역에서 푸른 풀밭은 결코 찾기 쉬운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 목자는 나를 위해 최고의 풀밭은 찾고 그래서 나는 언제나 먹을 것이 풍족합니다.

둘째로, 그는 우리는 물가로 인도합시다.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신선한 물이 흐르는 곳으로 인도합니다. 거기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영혼'은 '생명'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생명을 소생시키신다." 쉴 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는 쉼과 생명을 주는 물로써 양의 생명을 회복시켜 다시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셋째로, 그는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합니다. 의의 길은 안전하고 곧은길을 의미합니다. 양들 앞에는 좁고, 굽고, 돌투성이거나 사나운 동물들이 웅크리고 있는 위험한 길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롭고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당신의 이름에 배치되는 일을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어둡고 침침한 골짜기'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우리는 어둡고 침침하고 위험한 지역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 나오는, 그 강도 만난 사람이 가야했던 길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위험한 곳에서도 내가 "해를(악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옆에서, 내 앞에서, 내 뒤에서, 내 아래에서, 그리고 내 위에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둡고 침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되더라도 목자는 그의 지팡이로 공격자를 물리치시고 그의 막대기로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져 내주십니다.

이 여행 중에, "42.195km"의 마라톤과 같은 인생의 긴 여정 중에 우리는 두려움과 굶주림의 순간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두려움과 굶주림의 순간에 나의 목자는 내게 넉넉한 식탁을 베풀어주십니다. 말할 수 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 갑자기 길 한 가운데에 믿을 수 없이 훌륭한 음식이 그리고 바위에서 솟아난 신선한 물이 또한 하늘에서 내려진 빵으로 가득 찬 호사스러운 식탁이 내 앞에 차려집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곧 내 원수들 보란 듯이 잔칫상을 차려주십니다. 이 얼마나 눈물겹고 감격적인 일입니까.

뿐만이 아닙니다. 이 여행 중에, 인생의 긴 여정 중에, 내게는 늘 부족함뿐이라고 체념할 때에, 넉넉하신 나의 목자는 내 머리에 그 귀한 기름을 부으십니다. 시편 23편 기자가 살던 때의 기름은 말할 수 없이 귀한 것입니다. 내 삶에는 늘 여유가 없고 빠듯하기만 하다 여겼는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하늘에서 내립니다. 그러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관대하심으로 인해 내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이 너그러우심과 풍요로우심을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직접적인 말로 표현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여정은 이제 내가 사는 환경을 바꾸어 버립니다. 광야가 집이 됩니다. 외로움 대신 동반자가 채워줍니다. 부족함 대신 넘침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시작한 시인은 두 가지 결론을 맺습니다. 첫째는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입니다. '반드시'입니다. 선하고 인자하신 나의 목자는 '반드시' 나를 따르고, 나를 좇아오고, 나를 붙잡고, 나를 꼭 잡아줍니다. 여기서 '따르다'는 매우 강력한 능동사입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이 나를 좇아오고, 붙잡고, 잡아줍니다. 내가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 해도 불가능합니다.

둘째로 시인은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나는 결코 하나님과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역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나를 놓치지 않으시고 항상 같이 계시기에 이제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이 풍요로운 사랑과 은혜 안에서 생명과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라토너입니다. 42.195km, 그 끝을 알 수 없는 먼 길을 달리는 마라토너들입니다. 이 긴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낙오하기도 합니다. 탈락하기도 합니다. 홀로 남겨지기도 합니다. 벗겨진 신 발 한 짝이 덩그러니 남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거기서 그렇게 마냥 울고 있을 때, 거룩하고 부드러운 하나님의 손길이 마치 바람처럼, 물결처럼 내 영혼을 덮으십니다. 그리고 높은 하늘 위에서 환한 소망의 빛이 어둡고 침침한 내 영혼 깊은 곳으로 떨어집니다. 내 영혼은 다시 일어나 "주의 날개"를 달고 다시 힘차게 달립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입에서 성서의 가장 아름다운 시편, 시편 23편의 기도가 끊이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암송하고 노래하고 그리고 병상에서도 읊조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편 23편의 거룩한 노래를 아름답게 형상화 한 무용이 평생 잊지 못한 감동의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이 감동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 "주의 날개로!" 힘차게 인생의 여정을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42.195, 주의 날개로!" 무용의 막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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