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이 이야기를 쓰면서 ‘개’라는 헬라어 ‘구네스’(들개)가 아니고 ‘쿠나리온’(집안에서 키우는 애견)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렇지만 개라는 동물을 들어서 말할 때는 상대방을 모욕하고 무시하는 말이 된다.
근래의 한국 교계 주간신문에서 보도하기를 오늘날 한국사회의 비기독교인들 중에는 한국의 개신교 기독교를 ‘개’의 종교집단으로 부르고 있다고 하였다. 그들이 개라는 말을 쓴 것은 들개와 애견을 구별하지 않고 쓴 것이겠지만 만일 우리가 오늘날 중병에 걸려서 신음하는 한국 개신교의 이 병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한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보시고 그 이방 여자에게 하신 대답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를 ‘쿠나리온’이라고 부르실 지 혹은 ‘구네스’라고 부르실 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동안 한국 개신교계의 중병을 보고 모두 회개하자고 이구동성으로 부르짖었는데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회개할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본당 바깥에서 우글거리고 있는 이방인 신자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 사람 앞에서 한국 개신교의 자랑을 쏟아내고 있다. 성일 준수, 십일조, 세계적인 크기의 대형교회들, 새벽기도, 선교대국, 자선활동 등등.
그러나 입을 모아 회개하자던 한국 교계의 목사들과 자칭 또는 타칭 교계지도인사들의 성욕과 금욕과 명예욕 등등의 타락과 범죄를 비롯한 불미한 소식들, 이를테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분쟁, 감리교회의 감독선거, WCC 총회 한국 개최에 대한 시비, 찬송가 출판권 싸움, 이단수색인들이 피우는 잡음, 국가 정부 시책과 싸우는 정치투사들의 소음, 국가 재판소에 모여들어 싸우는 교회들의 소란 등등이 교계 신문과 언론매체를 통하여 보도되고 있다.
참으로 교계 신문 받아 보기를 싫어하게 될 만큼 되었으니 오늘날 한국 개신교도들은 주님의 식탁에 나란히 앉아서 그와 함께 먹고 마시며 구원을 노래하는 주님의 권속의 위치에서 떨어져서 그의 상 아래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어야 할 ‘쿠나리온’의 신세가 아닌가 하고 자성할 필요가 있다.
어쩌다가 우리 교회가 개와 같다고 모욕을 받게 되었는지 원통하고 분한 심정으로 이방의 그 여자처럼 우리도 예수님에게 우리 교회의 중병을 고쳐달라고 애원해야 하겠다. 옛 시인처럼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종일 저희들이 우리를 조롱하고 있어서 칼이 우리 목에 들어오는 것 같다고 항변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고, 우리가 언제 하나님 앞(주님의 식탁)에 이르리이까라고 우리 자신들을 향하여 항변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교회와 부질없는 자랑거리를 버리고 겸손한 신앙을 가지고 자성하는 항변을 토하면서 가슴을 치고 통회할 때이다.
실로 요즘은 우리가 목사의 신분이나 신도의 신분을 사회인들 앞에 떳떳하게 밝힐 용기가 나지 않을 정도이다. 더구나 예수 믿으라고 또는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하기가 민망한 때이다. 옛날 예레미야 선지자가 자기 백성을 위하여 눈물을 양식으로 삼고 하나님께 호소하였으나 오히려 핍박과 치욕을 받았을 때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이다”고 하나님께 항변했지만 자기의 중심은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쳐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여전히 그는 여호와를 바랄 수 밖에 없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우리 개신교 신도들은 좀더 겸손한 신앙으로 우리 자신들을 향하여 항변하며 자성하여 거듭나서 적어도 주님 식탁 아래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라도 먹고 사는 ‘쿠나리온’이라도 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겸손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는 참으로 목사다운 목사와 신도다운 신도들이 없지 않다. 이들이 한국교회의 ‘남은 자들’이 되어서 한국교회를 재건할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