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남북관계, 정치게임 틀에서 벗어나야 해결가능”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 교회의 입장’ 대토론회 열려

진보와 보수 기독교계가 남북관계 개선 문제에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30일 오후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 교회의 입장’  대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첫 실험을 진행했다.

진보에서 보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기독인사들은 이날 모임에서 남북평화를 전제로 자기만의 색깔을 담은 주장을 폈지만, 서로 상충되지는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각각의 의견들이 상호 보완적 성격을 띄기도 했다.

이날 모임이 연착륙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본격적인 토론회에 앞서 그리스도의 평화 사상을 강조한 오프닝 설교의 영향이 컸다. 설교를 전한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그리스도의 ‘사랑’ ‘화해’ ‘용서’ 등을 들며 남북관계 개선 토론회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김명혁 목사는 “서로 의심하고 서로 경계하고 서로 두려워하는데 어떻게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겠느냐”며 “한 가지 길이 있다면, 우리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남한의 목사들과 장로들과 신자들이, 우리 남한의 그리스도인 정치가들이 십자가에 나타난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복음을 조금이라도 우리 몸에 지닐 수 있다면 남북의 관계는 곧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십자가 사랑에 미치는 대신 돈에 미치고 경제에 미치고 정치에 미치고 부귀와 명예에 미친 우리 한국교회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길 바란다. 또 우리가 십자가를 우리 몸에 지니고,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의 용서와 사랑과 화해를 남한과 북한, 아시아와 세계에 나타내 보이면서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고 덧붙였다.

ⓒ김진한 기자

이어서 열린 토론회에선 김병로 한반도평화연구원장이 ‘통일 문제는 정파성을 넘어서서 전체 민족의 이익 관점에서 다뤄져야 합니다’, 주도홍 기독교통일학회장이 ‘김정일 위원장 건강이상설과 관련,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을 과장되게 강조하기보다 협력지향적으로 대응하기 바랍니다’, 허문영 평화한국 대표가 ‘미국 오바마 정부 선출과 관련, 한반도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주시기 바랍니다’를, 박영환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사무총장이 ‘통일한국을 위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를, 정종훈 연합신학대학원 교수가 ‘일부 탈북 및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는 중단되어야 합니다’를, 배기찬 유니프레이어닷컴 해외사업팀장이 ‘북한은 <통미통남> <통민봉관> 정책을 <통미통남> <통민통관> 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를, 이문식 남북나눔운동 사무처장이 ‘정부는 인도적 대북지원을 즉각 재개하고, 정부예산의 1%를 한반도 통일을 위해 사용할 것을 촉구합니다’를 주제로 발제했다.

◆ 통일문제는 정파성을 넘어 전체 민족 이익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합니다

경제난과 더불어 북핵 위기 및 국론 분열 등 국내·외적 어려움을 잘 해결하고, 민족의 숙원인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뤄가기 위해서는 난제 해결의 우선 순위를 잘 설정해서 추진해야 합니다. 지금은 국내 경제회복에 주력하면서 대북정책 관련 국민화합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북한 및 통일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견해들을 존중하되, 하나의 조화된 견해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화합을 토대로 대외 협력과 남북 협력을 이뤄가야 합니다. 따라서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민족 전체 운명에 관계되는 중대 사항들을 이념 대결적이고 낮은 단계 정치게임의 관점에서 해석되고 보도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정부의 고충을 안타깝게 헤아리면서도,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정파성과 정치게임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견들을 어우르며 민족전체 이익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해석하고 다루어 줄 것을 촉구합니다.(김병로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 김정일 위원장 건강 이상설과 관련,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을 과장되게 강조하기보다 협력 지향적으로 대응하기 바랍니다.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을 철저하게 대비하는 일은 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보호하고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준비하는 정부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해 집착하거나 공론화하는 태도는 지혜롭지 못합니다. 급변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정부는 북한 지도층과 주민이 대한민국과 협력하여 통일된 새 나라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북한주민의 기본적 삶의 문제에 공을 들여 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주도적인 통일의 길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주도홍 교수, 기독교통일학회 회장)

◆ 미국 오바마 정부 출현과 관련, 한반도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신정부가 북핵 폐기 3단계 협상과 한반도 종전선언, 평화협정, 북미수교와 북미경협 등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가능성이 큰 만큼, 우리 정부도 <통미봉남>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변화되어가는 한반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줄 것을 촉구합니다. 오바마 신정부는 부시정부의 일방주의와 힘의 외교를 벗어나 국제협력과 직접대화를 통해 대북관계를 풀어갈 것입니다. 정부는 북한의 태도에 지나치게 구속 받지 않고, 여유 있고 먼저 다가서는 자세로, 정부가 이미 천명하고 있는 <상생과 공영의 대북 정책>을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허문영 박사, 평화한국 상임대표)

◆ 대북정책과 관련, 차별화 보다 균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주력하기 바랍니다.

현 정부는 이전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차별화에 너무 집착하여,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고 퍼주지 않겠다는 원칙만을 고수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각 정부마다 당면한 역사적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감당해 왔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새로운 역사적 과제인 선진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집중해 주기 바랍니다. 북한이 미국과 수교하여 국제사회에 진입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정착되면, 북한 내부에도 거부할 수 없는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북한의 내부 변화를 목표로 하는 대결 유발적 정책을 강행하기보다는 북핵 폐기와 북미·북일 수교, 경제 협력과 평화체제 정착 등 보다 유연하고 포괄적인 접근을 균형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박영환 교수,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사무총장)

◆ 일부 탈북 및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일부 탈북 및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로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되었고, 개성공단도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는 납북자 송환과 북한 인권 개선 등 일견 이해할 만한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인해 야기되는 남북관계 악화는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운명에 관계되는 중대 사항으로, 일부단체에게 위임된 일이 아닙니다. 현 정부가 중시하는 <남북기본 합의서> 1장에는 <상호 비방과 중상 금지> 원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원칙은 남북한 정부뿐 아니라, 남북의 개별국민에게도 그 효력이 미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이 신성한 안보의무에 입각해서 진중하게 검토하고 결정해야 할 중대 사항을, 국민과 국회의 동의 없이, 일부 단체들이 강행하는 것은 더 이상 방임되어서는 안 됩니다. 북한주민이 변화되는 것은 대북 전단이 아니라 차분하게 진행되는 개성공단 등 남북교류협력에 의해서라는 점도 유념해 주기 바랍니다. 정부는 대한민국 전체 국민에 대한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줄 것을, 일부 단체들은 전체 국민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하는 남북관계 악화행위를 중단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 북한 당국 또한 남북 이산가족의 인도적 문제에 대해 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줘야 하며, 북한주민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서도 더욱 경청하기를 촉구합니다.(정종훈 교수, 연합신학대학원)

◆ 북한은 <통미통남> <통민봉관> 정책을 <통미통남> <통민통관> 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북한이 대한민국 정부를 대하는 태도에는, 미국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성의와 인내심을 발견하기 힘듭니다. 북한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국민의 선택에 의해 정권이 교체될 수 있고, 새로운 정부가 이전과 다른 통일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부와 다른 방식으로 북한을 상대하고 있지만, 현 정부 또한 북한이 남북관계 시금석으로 삼고 있는 <6.15>와 <10.4>선언의 구체적 실행을 위한 회담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지나치게 경직된 자세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평화와 통일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북한은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조치들을 즉각 중단해야 하며, <통미봉남> <통민봉관> 정책을 <통미통남> <통민통관> 정책으로 전환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함께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할 것을 촉구합니다.(배기찬 교수, 유니프레이어닷컴 해외사업팀장)

◆ 정부는 인도적 대북지원을 즉각 재개하고, 정부예산의 1%를 한반도 통일을 위해 사용할 것을 촉구합니다.

현재 남북관계는 실사구시, 역지사지에 기초한 상호이해보다는 자가당착적인 기 싸움으로 인해 변질되는 양상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인도적 지원까지 중단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변수에 의해 영향 받지 않고 실행하겠다고 천명해 온 만큼, 북한의 선지원 요청이라는 조건을 달지 말고, 이 추운 겨울의 문턱에서 인도적 대북 지원을 즉각 재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북녘의 우리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죽어갑니다. 우리는 같은 동족입니다. 종교의 사상·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북녘 동포를 살리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정부는 매년 정부예산의 1%를 별도 배정하여, 이를 인도적 대북지원 및 개발협력 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 정식으로 입법 추진하여 줄 것을 촉구합니다.(이문식 목사, 남북나눔운동 사무처장)


참석자들은 토론회 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교연합'의 발기인 대회를 갖고, 내년 3.1절을 즈음해 남북 통일 문제와 관련해 기독교계의 입장을 담은 통일 선언문을 발표하기로 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평화와통일을위한기독교연합(가칭·이하 평통위)은 지난달 21일 진보와 보수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목회자들의 입장을 담은 ‘계속되는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기독인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평통위에는 9.9선언실천위원회, (사)평화한국, (사)참된평화, 성서한국, 공의정치실천연대, 기독교통일학회, 한국기독교통일포럼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엔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이만열 장로(전 국사편찬위원장),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등은 예배 순서자로 유관지 목사(감리교북한교회연구원), 정지웅 박사(통일미래사회연구소), 신덕수 고문((사)평화한국), 윤환철 국장(한반도평화연구원), 안부섭 대표(TNF 비전아카데미), 윤은주 국장((사)평화한국), 이승균 편집장(뉴스앤조이) 등은 논평자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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